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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Sep 16. 2015

좋을 때

바로 지금,  그때 

친구 동생과 어머니가 함께 운영하는 포차에 갔다. 오늘 잠시 자리를 비운 사장님인 동생 대신 친구가 서빙을 했다. 개업을 한지 몇 달 되지 않은 아담한 가게다. 개업을 축하하러 간 후 두 번째 방문이다. 스물여섯을 먹고도 밥 먹으러 식당에 혼자 선뜻 가지 못하는 내가 오늘은 혼자 밥을 먹으러 갔다.      


이른 시간이라 손님이 없을 줄 알았는데 한 테이블에 손님들이 와 있었다. 손님이 있을 때 간 게 미안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뿌듯했다. 지난번에 먹었던 김치돼지 두루치기가 계속 생각이 났다. 친구는 일하느라 이미 밥을 먹었고, 나는 혼자 먹기에 무리한 메뉴인 것을 알면서도 김치돼지 두루치기를 시켰다. 주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군침이 도는 냄비가 내 앞에 놓였다. 분명 혼자 먹어야 하니 조금만 달라고 했지만 어머니는 오히려 더 많이 주신 것 같았다. 국물을 떠먹는 순간 행복했다. 조금 달라고 해놓고는 어느새 다 먹고 있었다.     


새로 나온 메뉴라며 닭똥집도 먹어보라고 하셨고, 나는 이미 배가 부른 상태여서 사양한다고 말해놓고는 또 다 먹고 있었다. 분명 배가 불렀지만 억지로 먹지는 않았다. 하나도 남기고 싶지가 않았다. 어느새 손님들은 나갔고, 가게에 손님은 나뿐이었다. 그런데도 가게가 꽉 찬 것만 같았다. 배가 엄청나게 불렀다. 마음도 실컷 배부른 기분이 들었다.     


두어 시간 수다를 떨다가 일어나겠다고 했다. 삼만 원이 넘게 나왔다. 지갑에서 삼만 원을 꺼내는 순간 어머니는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친구도 받지 않겠다고 하며 손 사레를 쳤다. 다 서비스라고 했다. 나는 두루치기가 먹고 싶기도 했고 조금이라도 팔아주고 싶어서 온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받지 않겠다고 했다. 돈을 놓고 도망가려는데 기어코 다시 돌려주며 오늘은 절대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사장님이 없으니 오늘은 그냥 가도 된다고 하셨다. 내가 자꾸 이러시면 앞으로 가게 못 올 거라고 했더니 다음에 또 와서 많이 먹으라고 하신다. 그래도 계속 버티니 그냥 친구에게 자장면이나 사주라고 하셨다. 내 친구는 자장면을 사줘도 먹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정말로 그럴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계속 실랑이를 했지만 어머니는 끝까지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하셨다.   

   

할 수 없이 나는 가게를 나섰고 친구에게 배웅을 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받아달라고 했다. 그래야 내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친구도 끝까지 받지 않으려고 했다. 나는 그럼 이제 가게를 안 올 거라고, 다음에 만날 때도 나가지 않을 거라며 말도 안 되는 생떼를 부리며 돈을 받아달라고 했다. 끝내 친구는 받지 않겠다고 했다. 결국 2만 원을 억지로 손에 쥐어줬다. 그래도 친구는 싫다며 돌려주려고 했다. 나는 결국 손에 2만 원을 쥐어주고 도망 왔다. 결국 먹은 만큼 다 내지 못했는데도 친구는 미안하다고 했다. 도대체 뭐가 미안한 건지.      


남들이 보면 삼백 만원도 아니고 꼴랑 삼만 원 가지고 무슨 쇼를 하냐며 비웃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친구에게도 나에게도 그 삼만 원은 적은 돈이 아니었다. 미안하고 고마운 그런 돈이었다.     


배가 너무 불러서 걷기도 힘들 지경인데 하나도 거북하지가 않았다. 걷기에 꽤 먼 거리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거리가 짧게 느껴졌다. 내 걸음이 이렇게 빨랐나 싶었다. 가는 길에 노래를 들었다. 집에 거의 가까운 골목에 다다랐는데 노래를 듣다 보니 이상하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슬퍼서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기분이 좋았는데 왠지 울컥했다.      


발걸음을 돌려서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들어갈까 하다가 그냥 집으로 갔다. 한때 그런 적이 많았다. 집에 거의 다 왔는데도 괜히 발걸음을 돌려서 혼자 여기저기를 빙 돌고 난 후에야 들어갔다. 모임이나 회식 자리에서 아무도 일어나지 않는 이른 시간에 일찍 들어간다면서 먼저 일어나 나와서는 괜히 혼자 방황을 하곤 했다. 기어코 술을 사양해놓고는 들어가는 길에 혼자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던 때도 있었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모두가 그런 경험이 있는 것 같았다. 역시 사람 사는 건 다 다르면서도 비슷한가 보다. 하상욱 시인 말대로 나만 힘든 줄 알았는데 다들 안 알랴준 거다. 다행히 오늘은 그런 우울한 날이 아니었다. 기분이 좋았다. 좋으면서 울컥한 날이었다.     


친구 가게에서 잠시 수다를 떨 때 어머니가 우리에게 그랬다. 좋을 때라고. 이상하게 오늘은 그 말이 듣기 좋았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10대를 지나고 20대가 되면서 늘 서른이 넘은 누군가에게 듣던 얘기였다. 너희 참 좋을 때라고. 근데 들을 때마다 씁쓸했다. 우리에게 좋을 때라고 말하는 어른들은 하나도 좋아 보이지 않았고, 정말 우리가 좋아 보여서가 아니라 그냥 우리 나이가, 그 숫자가 부럽다는 뜻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너희들 지금 나이가 좋을 때지만 지금 이 나이가 되면 더 좋은 일이 생긴다고, 나이가 먹으면 먹은 나름대로 사는 재미가 또 있다고 제발 말해줬으면 싶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좋을 때라고 말하는 그 씁쓸한 표정이 훗날 내가 짓게 될 표정일 것 같아서 두려웠다. 그런데 오늘 친구 어머니가 우리에게 좋을 때라고 할 때는 그런 기분이 들지 않았다. 정말 우리가 좋아 보여서 하시는 말씀 같았다. 그런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표정을 보니 어머니 나이가 되면 또 그때는 그때대로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어도 오늘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 혼자 밥 먹는 것을 여전히 두려워하고, 삼만 원으로 실랑이를 벌이고, 너희 참 좋을 때라는 말을 듣고... 그럴 수 있을까. 혼자 밥 먹는 게 당연해지고, 삼만 원으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고, 씁쓸한 표정으로 누군가에게 너희 참 좋을 때라는 말을 하게 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나는 오늘 조금 두려웠던 것 같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 좋을 때를 지나며 그 기분을 누릴 수 있다는 게 감사해서 울컥했나 보다. 힘들 때가 많지만 그래도 우리는 아직 ‘좋을 때’다. 그리고 앞으로  어느 때를 맞든지 항상 바로  그때가 ‘좋을 때’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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