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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희 Dec 28. 2023

기획자의 메모리노트 5 :

우리가 봤어, 내가 봤어

 인정욕구. 타인에게 자신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받으려 하는 욕구.      


  나는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부모님이 나를 늦게 보셔 아주 금지옥엽으로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하지만 당시 동시대 부모님들에 비해서는 자식을 늦게 본 케이스였다. 나의 어머니는 말 그대로 현모양처 스타일이었는데 손재주가 뛰어나셔 바느질, 요리 등 일반 가사노동을 전문가처럼 수행하시는 수준급의 실력자셨다. 어머니는 약속이나 시간을 엄격하게 지키는 분이셨고, 정해진 시간에 하기로 한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마쳐야 하는 과업에 엄격한 분이었다. 칸트처럼 정해진 그 시간에 꼭 산책을 한다거나 가기로 한 것은 꼭 가고, 안 가기로 한 것은 절대 안 가셨다. 이러한 어머니 덕에 나는 시간에 대한 강박이 좀 심한 아이로 자랐다. 지금도 그 영향으로 예를 들어 월 단위로 운동을 한다했을 때 폭설이나 폭우가 내려도, 목에 칼이 들어와도 미련하게 출석을 하는 사회인이 되어 버렸다.       


  어머니는 그 시대의 다른 어머니들과 마찬가지로 본인이 못다 한 공부에 대한 아쉬움 플러스 하나뿐인 자식에 대한 본능적인 교육열로 인해 나에게 무척 공을 쏟으셨다. 그런데 어머니는 학교에서 내가 이룬 성취에 대해서는 웬만해선 칭찬을 해주지 않으셨다. 처음에는 10등 안에 들면 칭찬을 받을지 알았는데,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3등 안에 들면 해주겠지 했는데 또 반응이 시큰둥했다. 오기가 생겨 칭찬을 받으려고 반에서 1등, 전교 1등도 해보았지만 어머니는 씩 웃는 정도가 최대치였다. 다른 친구들은 90점만 받아도 집에서 친구들과 함께 짜장면을 시켜주던 시절이었다. 야속한 어머니, 그뿐만 아니라 장기 출장을 자주 가시던 아버지 때문에 오랜만에 집에 오시면 짠하고 상장을 보여드리려고 별의별 상을 다 받아봤다. 한 번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나, 그때는 방학숙제를 부분별로 세세하게 다 시상했는데, 내가 받은 상은 총 열두 개 인가 그랬다. 호명했다 하면 내 이름만 불러서 자리로 들어오지 않고 아예 단상 옆에 서 있어야 할 정도였다.      


  부산에서 강남으로 상경하신 어머니는 맹모삼천지교를 투철하게 실천하시는 분이었다. 덕분에 나는 초등학교만 6군데를 다녔다. 1년에 한 번씩 옮긴 꼴이니 매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고, 친구들도 친해지면 헤어짐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 무슨 대회만 개최했다 하면 일단 상을 타고 보는 식으로 학교생활을 해나갔다. 친구들에게 나를 알리는 방법으로는 수상자에 호명되는 일이 가장 빨랐다. 오죽하면 그 시절 초등학교 동창들이 훗날 만났을 때, 나는 네가 정말 큰 성공을 할 줄 알았다고 고백했을까. 아예 처음부터 수상을 목적으로 전략적인 접근을 한 것이니 뭐라도 하나 안타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어쩌면 내가 어떤 사업이건 공개경쟁이나 제안공모분야에 두드러진 성과를 내온 것은 나의 학창 시절에 답이 있는 것 같다. 그랬다. 가장 나를 가까이서 온몸으로 돌봐 오신 어머니 한 사람에게 크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 나는 인정욕구가 강한 사람이었다.      


  이 인정욕구는 사회생활하면서 동료와의 비교나 경쟁을 통해 충분히 해결되었다. 깐깐하신 어머니 덕분에 나는 언제나 그보다는 덜 깐깐한 윗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곤 했다. 다행인 건, 사람과의 경쟁에서 과하게 승부욕을 부리게 되는 쪽보다는, 사업의 성공을 위한 대결구도에서 더욱 강하게 발휘되었다는 점이다. 원래 일보다는 사람을 이기기가 쉽다. 한때 장안에 독후감대회나 리뷰대회는 온통 휩쓸던 시절이 있었다. 최초로 독후감 대회에 참여하게 된 이유가 글 쓰는 능력을 인정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바로 사람 때문이었다. 우연히 어떤 책을 읽었는데 그 책의 독후감대회로 대상을 탄 수상작을 접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정도의 글 수준이면 나도 얼마든지 수상권에 들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몇 장 안 되는 원고로 상금도 받아가는 걸 보고 참 쉽게 돈 버는구나 싶어 테스트로 어떤 대회에 참가해 보았다. 처음에 3등에 해당하는 장려상을 받았다. 그 분야에도 역시 숨은 고수들은 많았다. 오프라인에서 시상식을 한다 하여 1등 한 사람이 궁금하기도 해서 나가보니 아주 젊은 처자였다. 글을 보니 어쩐지 사연이 많아 보였는데 알고 보니 그 처자는 상금이 있는 독후감대회만 골라서 참가하며 항상 1등을 받아가는 글쟁이였다. 수상작들을 읽어보면 늘 단골로 가족의 극단적인 불행사가 등장하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꼭 해당 도서의 스토리와 꼭 같은 경험을 했다는 식의 전개였다. 모든 사연이 사실이라면 그녀는 모든 가족이 장애인이거나 치매이거나 교통사고를 당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녀는 글재주로 있든 없든 가족을 팔아 소득을 취하는 이른바 생계형 리뷰어였다. 누군가는 그녀의 글에 감동을 받았을 텐데 글은 진실해야 한다는 진부한 가치는 접어두고서라도 젊은 친구가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하여 그녀의 사정을 알지 못했지만 그녀가 옳지 않다는 생각에 그녀를 이겨야겠다는 몹쓸 승부욕이 발동하게 된 것이다.      


  내 인생에서 집중적으로 다양한 분야의 많은 책을 읽은 시기가 있었는데, 그녀 덕분이었다. 크고 작은 대회에서 한 2년은 그녀의 1등을 막았고, 그녀의 필명 위엔 항상 나의 필명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1등을 하는 재미가 없어진 탓인지 그녀는 슬슬 참가를 하지 않게 되었다. 그 무렵 어느 출판사 대표가 내게 장문의 메일을 보내왔다. 이제 그만 대회에 참가하시고 당신의 글을 쓰라는 내용의 아주 정성스러운 편지였다. 나 같은 글쟁이가 자꾸 참여를 하면 일반 수준의 독자들이 참여를 안 한다고 말이다. 그 메일을 받고 나는 얼굴이 너무 화끈거렸다. 한두 번 증명했으면 되었지 무엇을 더 인정받겠다고 기를 쓰고 글을 써대었던지, 정작 그 이유가 기억나지 않았다. 궁극에 나 역시 상금의 소소한 즐거움을 놓치고 싶지 않아 전략적 글쓰기를 이어온 건 아닌가, 과연 나는 그 친구와 무엇이 달랐나 싶었다. 그날 이후 독후감은 절필했지만 그 시기 나는 글을 쓰면서 무언가를 견뎠던 것 같다. 그리고 어떤 임계점을 넘어보니 이제 인정받지 않아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중요한 건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인정하는 단계까지 도달하는 것이다. 누가 인정하지 않더라도 나 스스로가 가치 있는 존재라는 확신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대상이 없다 하더라도 상대적 비교가 아닌 애초부터 자신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힘, 그것이 바로 인정욕구의 최상위 수준인 것이다. 그리하여 남 때문이 아닌 나로서의 목표를 만들고 스스로 살아갈 맛을 느끼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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