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아침에, 동그란 환약 하나. 먹는 게 좋은 걸까?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네요.
수능 한파라고 할 정도로 수능을 볼 때쯤이 되면 기온이 급격히 떨어집니다. 쌀쌀해진 날씨에 찾아 보니 어느새 곧 수능이 되었습니다.
수능에 대한 여러 가지 기억 중 하나는 우황청심원입니다. 수능을 앞두고 신기할 정도로 많이 팔리는 한약제제가 바로 우황청심원입니다. 하지만 그런 수능 시즌의 인기와 달리 우황청심원을 왜 먹는 걸까?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게 됩니다.
우황청심원은 사람이 갑자기 쓰러지거나 하는 응급질환에 사용하던 약이었습니다. 그래서 형편이 넉넉한 집안에선 비상용으로 꼭 갖추고 싶어 하는 약으로 귀하게 취급되었습니다. 특히 조선의 우황청심원은 명이나 청의 고관대작도 갖고 싶어 하던 명품 한약제제였습니다.
물론 현대에는 진단기술과 치료 약제의 발전으로 우황청심원이 무조건 좋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훨씬 섬세한 진료가 가능해졌기 때문이죠. 그래서 사람이 쓰러졌다고 해서 우황청심원을 무작정 먹이거나 하는 것은 절대로 추천하지 않습니다. 특히 스스로 삼키지 못하거나 사레가 들리는 사람은 억지로 뭔가를 먹이는 것 자체가 위험한 행위입니다.
현대의 우황청심원은 처방 구성이 과거에 비해서 상당히 바뀌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제약회사나 제품에 따라 다른 우황청심원을 팔고 있습니다. 현재 유통되고 있는 우황청심원 한약제제는 모두 8가지 종류로 99개 품목이 허가되어 있습니다. 물론 정확한 숫자는 다를 수 있고, 허가만 받았을 뿐 생산하지 않는 제형이나 품목도 있어서 실제 종류는 훨씬 적습니다.
그리고 현재 생산되고 있는 대부분의 우황청심원 한약제제는 약국에서 판매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약제제의 전문가는 한의사와 한약사입니다. 한약제제의 비전문가인 약사가 판매하는 한약제제를 구입할 때는 부작용에 대해서 구입하는 사람이 스스로 충분히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약제제는 환자가 스스로 주의하기 어렵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가급적 한의원에서 처방받아서 복용하시는 것을 권장하는 편입니다. 물론 약국에서 구매하는 경우엔 훨씬 편리하게 구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우황청심원의 적응증 허가사항은 ‘뇌졸중, 고혈압, 두근거림, 정신불안, 급만성경풍, 자율신경실조증, 인사불성 등’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증상이라고 해서 우황청심원을 먹어도 좋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한약제제는 적응증 뿐 아니라 '증'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데 이 '증'은 설명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편입니다. 우황청심원이 효과적인 경우는 주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 오르고 화끈거리면서 혈압이 높아지거나 가슴이 많이 두근거리거나 하는 등의 증상입니다. 우황청심원의 청심(淸心)은 '열을 식혀 준다'는 의미기 때문에 열이 많이 생기지 않으면 우황청심원을 처방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물론 불안에 의해 두근거리거나 얼굴이 붉어지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항상 그런 건 아닙니다. 불안할 때 얼굴이 붉어지지 않는 사람이 아마도 더 많을테니까요.
다른 사람이 먹고 효과를 봤다는 말이 자신에게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의미가 되지는 않습니다. 통계적으로 유의하다는 것도 제법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확률적으로 효과 볼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비록 통계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모든 사람에게 그렇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특히 수능 보는 날, 우황청심원을 복용하는 것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직접적인 연구가 없고, 연구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수능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수능을 보는 당일에 어떤 약을 주고 안 주는 연구 설계 자체가 윤리적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수능을 볼 때 도움이 되는 약으로 증명된 약은 사실 없는 셈입니다.
그래서 수능을 앞두고 온갖 비윤리적인 광고들이 범람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집중력을 향상시켜 준다거나 불안을 해소해준다거나 하는 것들입니다. 실제로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지 말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돈을 들여야 한다거나 이상한 것을 먹는다거나 하는 건 추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익숙한 느낌이 들게 해주는 것이 불안의 해소와 집중력 향상에는 더 도움이 됩니다. 그러니 하나라도 더 해주려고 너무 애쓰지는 마세요.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우황청심원을 수능 보는 날 아침에 친구들끼리 사먹거나, 선물로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황청심원은 약효가 상당히 빠르고 뚜렷하게 나타나는 한약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효과를 보는 사람은 빠르게 효과를 볼 수 있는 대신, 부작용이 나타나는 사람은 훨씬 빠르게 부작용에 시달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약을 수능 보는 날 아침에 복용했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꽤 고생한 경험담들이 제법 있을 겁니다. 특히 우황청심원의 부작용으로 호소하는 증상들 중에는 일시적인 더 심한 두근거림, 식은땀, 손떨림, 오한, 졸림, 나른한 기분 등으로 시험을 보는 순간에 경험하기에 상당히 치명적인 부작용들도 있습니다.
한의사들 중에도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우황청심원을 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는 이미 우황청심원을 비롯 여러 가지 한약들 중 자신과 잘 맞는 한약을 시험을 보기 전에 미리 테스트를 해본 뒤에 복용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경험적으로는 우황청심원을 선호하는 사람 보다 다른 한약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황청심원이 가장 잘 알려진 이유는, 무엇보다 일반적으로 구입하기 가장 편리한 한약제제가 우황청심원이기 때문입니다. 약국에 가서 사면 되니까요. 그래서 수능 보는 날 아침에 갑자기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황청심원이 더 많이 알려졌을 뿐, 우황청심원이 완벽한 약은 아닙니다. 특히 이전에 복용한 경험 없이 수능 보는 날 아침에 갑자기 생각나서 먹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람에게는 학습 능력이 있습니다. 우황청심원이 오로지 부작용만 보였다면 아직도 수능을 앞두고 많이 팔릴 리는 없었겠죠. 개중에는 효과를 본 사람이 분명 있지 않았을까요?
네. 실제로 효과를 봤다는 경험담도 부작용을 경험했다거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만큼이나 자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윤리적 문제로 수능시험 당일 임상시험을 할 수는 없지만, 간접적인 연구들은 있습니다.
사람이 긴장하거나 불안하게 되면 심박수가 증가하고 심박변이도가 변하게 됩니다. 그래서 심박을 측정하는 것으로 긴장이나 불안한 정도의 변화를 추정할 수 있습니다. 우황청심원을 복용하고 일정 시간이 지나 측정하면 교감신경을 반영하는 지표가 복용 전에 비해 유의하게 감소한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수능에도 우황청심원이 과도한 불안감의 완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러나 이런 제한된 근거 수준으로 수능 당일 아침에 먹어 보라고 추천하기는 역시 어렵습니다.
게다가 같은 이름의 우황청심원 한약제제라고 해도 허가 항목이 8종이나 되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래서 같은 우황청심원이지만 제품에 따른 가격차이가 상당히 크게 납니다. 싼 것은 몇 천 원부터 한방의료기관에서 사용하는 몇 만 원대의 제품까지 있습니다. 물론 성분 구성이나 성분 함량도 가격에 따라 차이가 나게 됩니다. 그래서 미리 테스트 삼아 모의고사를 보거나 할 때 우황청심원을 복용해 보고 효과를 본 경우에는 그냥 우황청심원으로 찾을 것이 아니라 제약회사와 정확한 제품명을 함께 기억해 두고 그 제품을 그대로 복용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수능이 정말 얼마 안 남은 지금 시점에 갑자기 평소에 안 하던 것을 해보는 것은 그것이 약이 아니라 무엇이든 사실 그리 권장하기엔 힘듭니다. 충분한 여유가 있을 때에는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지만 지금은 갑작스런 새로운 시도 보다는 오히려 평소처럼 생활하는 것이 좋습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취약해지기 쉬운 컨디션 관리를 하고 최대한 생활패턴을 일정하게 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됩니다.
충분히 불안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불안해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불안해해도 괜찮습니다. 그래도 됩니다. 평소 불안장애 등으로 일상생활이 곤란했다거나 하지 않아도 수능시험 당일 아침에 불안해하고 긴장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불안한 마음에 어떤 것에 의지하고 싶은 것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그동안 쌓아 온 자신의 공부가 결코 헛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노력과 자신을 믿고 깊은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따뜻한 음료를 마시면 좀 더 나을 것입니다.
정말 수험생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면 평소에 안 먹던 한약을 갑자기 주는 것 보다 평소에 해왔던 노력에 대한 따뜻한 말 한 마디가 담긴 격려가 아닐까요.
2015년 수능, 모두 노력만큼의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