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은 겨울의 고장이라 표현해도 어울리는 곳이다. 드넓은 철원 평야에 솜이불처럼 깔린 눈은 추운 날씨인데도 포근함을 느끼게 한다. 북한의 강원도 평강에서부터 시작되는 한탄강은 철원과 연천의 임진강으로 합류한다. 궁예가 강 주변의 현무암을 보고 나라가 망할 것 같다고 한탄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은 낭설이다. 한탄강은 ‘한여울’이라고 불리었고 여울 탄(灘) 자를 쓴 한탄강(漢灘江)이라고 쓰인 것이다. 한(漢) 자는 한나라 한인데 은하수를 뜻하는 의미도 포함한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한탄강에는 은하수교가 놓여있다.
이번 철원 여행의 첫 목적지가 바로 은하수 다리이다. 한탄강 물윗길이나 잔도길을 모두 지나려면 4시간 이상이 걸리는데 하루 간 철원의 여러 곳을 둘러보아야 하는 이유로 물윗길에 머무는 시간은 1시간밖에 할애할 수 없었다. 한탄강의 풍경에는 미안하지만 나는 ‘이 물이 저기서부터 온 물이고 저기까지 갈 물’이니 이곳만 걸으면 된다는 말도 안되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았다.
은하수교 아래서부터 여정은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동행한 사람들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얼음 위로 길이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얼음 위에 쌓인 눈은 마치 은하수처럼 햇빛에 반짝였다. ‘이 강이 은하수라 불릴 만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가 양쪽에는 용암이 분출되어 굳은 주상절리가 병풍처럼 절벽을 이룬다. 각기 다른 암벽의 형태는 이정표가 되어 주기도 한다. 이곳의 주상절리는 지표면에 나와 식어가는 속도가 느려 분출 당시 형상을 간직한 유선형과 아치형을 유지하는 것이 많다. 강가에는 제주도에서 볼 수 있는 현무암이 정원석처럼 줄을 섰다. 제주도의 것보다는 작지만 무게는 무겁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공원이나 정원의 현무암은 대부분 연천과 철원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길의 끝에는 직탕폭포가 있다. 3m 높이로 키는 작지만 80m의 폭을 자랑한다. 세상에서 가장 안정감 있는 폭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폭포는 시간이 흐르면서 강바닥 주상절리 마디를 떼어내며 조금씩 뒤로 밀려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연천의 재인폭포에서 뚜렷하게 볼 수 있다. 오래전 사진을 보아도 확인할 수 있지만 원래 재인폭는 강가에 형성된 폭포이다. 지금은 350m나 뒤로 후퇴해 있다.
점심을 위해 직탕폭포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직탕식당”과 “폭포식당”이 이곳 여행객의 식사를 맡아주고 있다. 우리는 직탕식당으로 들어갔다. 매운탕은 아무래도 직탕이 맛있을 것 같았다. 맑은 물에서 자란 메기를 넣은 매운탕은 비린내, 흙냄새 등의 냄새가 전혀 없었고 정말 최고의 맛이었다. 약간의 메밀묵과 감자전도 주문했는데 식당 주인은 사람 수에 맞게 더 많이 음식을 챙겨 주었다. 친절함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매운탕은 직탕식당이었다.
철원에 내가 운영하는 문학과 여행팀이 15명이나 온 가장 큰 이유는 겨울 철새 두루미를 보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곳에 오기까지 두루미는커녕 철새 한 마리 나타나지 않았다. 그 넓은 철원 평야 사이를 휘휘 저어 왔는데 말이다. 사람들은 두루미 옷 입고 평야에나 나가라며 저를 놀려대고 압박하기 시작했다. 3호차 기사는 오늘 느낌이 쎄~ 하다며 눈치 아닌 눈치를 주었죠. 나는 “쎄~”가 “새”로 들려왔다. 이렇게 자신 없어지는 순간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게다가 예약했던 두루미 탐조 코스도 취소가 되었던지라 두루미는 2027년에나 봐야 하나 생각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대안이 있었다. 두루미 탐조대가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내비게이션에 그곳을 입력하고 차로 달렸다.
가는 길에 두루미 몇 가족이 멀리서 먹이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달리는 차 안에서는 사진을 찍거나 자세히 볼 수가 없었다. 편도 1차선 도로에 주차할 공간이 없는 것도 한가지 이유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두루미가 있었으니까.
탐조대에 도착했다. 두루미 세 마리가 그려진 건물의 벽화가 반가웠다. 혹시 두루미를 만나지 못할까 봐 벽화를 심도 깊게 촬영했다. 입장권을 사고 탐조 부스로 향했다. 매표소 직원에게 무언가를 밀거래 하듯
"두루미 있어요?"
라고 하니 깔깔대고 웃는다. 가진 자의 웃음이었다. 두루미가 있다는 웃음이겠지 생각하고 들뜬 마음으로 탐조대 부스로 향했다.
볏짚으로 만든 담벼락 뒤에서 두루미 소리가 조금씩 들렸다. ‘스피커를 틀어 놓은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볏짚을 젖히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작은 섬 위에는 두루미뿐만 아니라 이름 모를 오리, 게다가 백조라 불리는 큰고니까지 새들의 천국이었다. 자료사진에서는 멧돼지가 새들과 함께 먹이를 먹는 모습도 찾을 수 있었다. 두루미가 반갑기보다 즐거워할 사람들을 생각하니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약 30분간 두루미를 탐조했는데 영역 다툼하는 모습, 두루미가 구애의 춤을 추는 모습, 떼로 날아오르며 하늘의 맹금류를 방어하는 오리 떼의 모습 등 많은 생태의 모습이 펼쳐졌다.
철원 노동당사로 향했다. 전에는 뒤뜰과 건물 안에도 들어갈 수 있었는데 지금은 보수공사를 해놓고 정면만 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예전보다 감흥은 덜 하지만 오래도록 보존할 수 있다니 그걸로 되었다.
인근의 철원역사문화공원에 들렀다. 이곳에는 철원 문학관이 들어설 준비를 하고 있다. 원래는 수년 전에 “이태준 문학관”이라는 이름으로 건립이 되기로 했었다. 상허 이태준 선생은 우리나라 단편소설의 선구자다. 성북동 수연산방에서 쓴 “달밤”이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다. 그러나 지역에서는 그가 월북했다는 이유로 문학관의 건립이 지연되었다.
그리고 지금 와서 보니 문학관 명칭도 “철원 문학관”으로 바뀌어 진행되고 있다. 지역 이름만으로 간판을 내건 문학관은 처음 이다. 물론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게라도 이태준 선생이 고향에서 작품을 펼치는 것은 잘된 일이다. 철원 역사문화 전시관 안에는 철원의 과거 모습이 전시되어있다. 남북한을 오가는 철로가 걸음을 멈추어 세웠다. 금강산까지 다시 철길이 닿기를 기원하였다.
철원의 북쪽은 철책으로 둘러싸여 있다. 우리는 백마고지 전적비로 향했다. 밤낮으로 주인이 바뀐 백마고지와 그보다 북쪽에 있는 산봉우리 김일성 고지가 한눈에 보였다. 포화로 산에 나무가 모두 불타 하얗게 변했는데 그 산의 모습이 백마와 닮아 백마고지라 불리는 곳이다. 이곳에는 아직도 군 초소가 자리 잡고 있다. 잠시 안보 교육을 받은 후 한참 동안 북한을 바라보았다. 설치된 망원경으로 저 멀리 북한의 건물도 흐릿하게나마 볼 수 있다.
펄럭이는 태극기의 행렬이 북한에 이어지고 광장의 평화의 종이 북쪽까지 울려 퍼지기를 한없이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