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나Kim Aug 23. 2021

방랑 벽의 끝, 결혼 (1)

'인생의 동반자, 멕시코에서 만나다.'

2006년 봄, J-1 비자를 안고 South Carolina에 있는 Hilton Head Island로 인턴쉽을 떠났다. 그간 배낭여행으로 25개국을 떠돌던 나에게 그까짓 것쯤이야 껌이었다. 외국에 대한 두려움도, 막연함도 없었고, 그저 호기심과 흥분만이 있을 뿐이었다. '다 잘 될 거야. 닥치면 다 하게 돼있어.'


영원히 머물지 않고, 호기심으로 세상을 떠돌 것만 같았던 내가,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인생의 동반자를 만난 것은 그즈음,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27살 9월의 어느 날이었다. Comfort Inn 프런트 데스크에서 열심히 일하고 2주 휴가를 받았던 그때. 모두들 위험하다고 말리던 멕시코로 홀로 여행을 가겠다고 비행기 티켓을 끊었던 나에게. 그렇게, 그가 나타났다.



세계에서 위험한 도시 1위를 기록하는 멕시코시티에는 낭만이 있었다. 버스를 타고 있으면 기타를 맨 노숙자들이 들어와 노래를 한곡 뽑고 돈을 받고 내린다. 길거리의 아이, 성인남녀 심지어 거지들도 모두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곳이 진정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가 맞을까 싶은 의문이 강하게 들었다. 사람들은 수줍게 친절했고, 밥은 맛있었고, 눈물이 날 정도로 멋진 문화유산과 역사가 있었다. 당초 멕시코시티에서 3일만 머물 예정이었던 나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도시의 매력에 흠뻑 취해 5박 6일이 지나있었다.  



'어서 아름다운 비치가 있다는 오하카(Oaxaca)로 가야지.'


멕시코는 치안이 좋지 않기 때문에 관광객들은 대부분 1등급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나 역시 나 홀로 배낭족이었으니 1등급 버스터미널로 갔는데, 아뿔싸 5분 전에 버스가 떠났다는 것이 아닌가. 오하카행은 2시간 후에나 있다는 얘기를 듣고, 고민 없이 2등석 버스터미널로 갔다. 근데 운이 좋아서 그런 거였는지, 그곳에는 십 분 뒤 출발하는 오하카행 버스가 대기하고 있더랬다.


2등급 터미널에는 온통 멕시코 전통복장 또는 머리스타일을 한 승객들로 가득했고, 나를 원숭이 새끼 마냥 뚫어지게 쳐다보는 시선들이 조금 부담스럽기는 했다. 하지만 무슨 용기에서인지 그냥 오하까행 티켓을 끊었다. 스페인어를 읽을 줄도, 할 줄도 모르고, 가이드북 하나 없는 나에게 이번 행동은 조금 무모하다는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2시간을 기다리느니 이거라도 타자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


막상 버스에 앉아서 출발하기를 기다리니 중간에 휴게실에서 멈출 때는 어찌해야 할지, 화장실은 어떻게 찾아야 할지, 쉬는 동안 뭐를 먹어야 할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더랬다. '에이 닥치면 겠지.'라는 마음과 불안함이 공존하던 그때였다. 큰 배낭을 짊어진 여자 1명과 남자 2명이 내가 앉아 있는 버스로 쑥~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여행을 하다 보면 국적과 피부색, 나이,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 그냥 나와 같이 여행하는 사람이구나 라는 반가움이 더 크달까. 그들을 보자마자 안심이 됐다. '살았다~'라는 깊은 안도감이 드는 순간. 그들이 성큼성큼 걸어와 커플인 듯 보이는 남녀는 내 건너편 좌석에, 그리고 멀대같이 큰 남자는 바로 내 옆에 앉았다.


...


우리는 예상치 못한 순간,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인연이 깊은 듯. 그렇게 만났다.

그가 나의 동반자 '로버트'이다. 그날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 서울에서 쌍둥이 아들을 키우며 잘 살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방랑 벽의 끝, 결혼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