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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노의 가르침'

'삶을 사는 자세와 철학 & 노력의 중요성'

by 한나Kim

세이노 님을 알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2년 전 유튜브에 세이노 작가의 인터뷰가 떴었는데, 코 아래쪽만 보이며 인터뷰하는 모습이 신기해서 클릭을 했다. MC가 그에 대해 설명하는 걸 들어보니 세이노 작가는 1000억대 부자이고, 20년 전부터 동아일보에 칼럼을 제공했으며, 2023년에 그 모든 칼럼을 모아서 '세이노의 가르침'이란 책을 발행했다고 한다.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하면서 인터뷰를 보다가 댓글들을 읽어보니 그는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있는 유명인이었다. '와 세이노님의 인터뷰를 보다니. 작가님의 지침서가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세이노님 존경합니다. 내 인생의 레전드 책입니다' 등 댓글의 대부분이 그에 대한 찬양이었다.


더 신기한 것은 그분이 최초로 인터뷰에 응한 이유가 '곽상도 전 의원 50억 무죄판결'이 너무 부당하다고 생각되어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나왔다고 했다. 일단 1000억대 부자가 사회의 부조리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기 위해서 인터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신선했고, 굉장히 남다르다는 생각을 했었다.


또한 그가 인터뷰에서 곽상도 씨의 220쪽짜리 판결문을 내밀었는데, 그것을 보고 이분 약간 돌은자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무슨 사시공부를 한 것처럼, 그 두꺼운 판결문을 열심히 읽은 티가 났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가 읽은 판결문을 설명하며 이 판결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조목조목 따졌다. 그리고 자기가 이것을 비난하는 이유는, 세이노가 말했던 최선을 다해 노력하라고 하는 삶의 본질을 그가 기만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시에 참으로 신기한 분이다 싶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는 내 기억에서 잊혀졌다. 그의 책을 읽은 후, 이것이 그가 말한 integrity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 한 달 전, 시티 도서관에서'세이노의 가르침'을 본 것이다. 먼 뉴질랜드에 이분의 책이 있다니 반가운 마음에 빌려서 읽게 되었다. 일단 책이 엄청 두껍다.



.......


책의 초반은 굉장히 거친 마초 상남자의 느낌이 난다. 솔직히 말해서 표현이 너무 거칠어서 읽기가 쉽지 않다. 맨 첫 장에 에미넴의 삶을 그린 영화를 설명하며 그의 엄마가 아들의 동창생과 동거를 하면서 그 동창생이 오럴 섹스를 안 해 준다고 에미넴에게 호소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첫 페이지부터 너무 당황스러워 앞으로 펼쳐질 내용이 쉽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그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세이노 작가의 팬이 되어버렸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그의 표현 방식에 스며들었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다.


이 책은 부자가 되고 싶은 젊은이들에게 건네는 조언이지만, 직접적으로 돈을 불리는 재테크 방법 등은 나오지 않는다. 대신 부자가 되기 위해 가져야 할 마음 가짐, 삶의 태도, 철학 등이 나오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이 모든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지침서라는 생각이 든다.


세이노 작가의 아버지는 이북에서 월남한 의사였다고 한다. 의료인 아버지 밑에서 여러 가르침을 받으며 살다가 아버지가 사기로 전 재산을 잃은 후, 사망하셨다고 한다. 그 후 어머님도 사망을 하며 고등학생 시절부터 고아로 자라면서 엄청난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때 삶이 너무 힘들고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져서 몇 번의 자살 시도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손목에는 2개의 자상이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런 경험들이 그의 가치관에 ‘자립정신’을 강조하는 철학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세이노 작가가 좋아지기 시작한 장면이 있어서 공유한다. 그의 거친 모습이 이런 성장 배경에서 나왔음을 알게 되며 그의 인간적인 면모에 깊은 애정이 가기 시작했다.


P324

20대 중반에, 나는 약수동 언덕 위로 한참 올라가야 하는 개인주택의 차고를 월세 몇만 원에 빌려서 약 4년 동안 그곳에서 살았다. 나는 내 몸을 편히 누일 수 있고 책을 읽을 수 있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이라면 아무리 교통이 불편하고 작고 허름하여도 행복해하였다. 정말이다. 처지에 맞는 공간을 찾아라. 아 물론 내 말이 '라떼'로 들리기도 할 것이다. "당신이 그런 곳에서 살았다고 해서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해?"라고 말이다. 내 대답: "그렇다. 개뿔도 내세울 것이 없다면 당연히 거지 수준으로 살면서 시간을 아끼고 능력을 키워 나가며 돈을 모아야 한다. 그래야 가난에서 탈출할 수 있다. 지금 그렇게 살기는 싫다고? 그렇다면 평생 그 모양 그 꼴로 계속 살아라."

차고를 빌렸을 때,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가 많았다. 그 차고를 있는 그대로 빌리는 조건이었기에 주거 공간 비슷하게라도 만드는 것은 내 몫이었다. 돈이 너무 없던지라, 결국 내가 모든 것을 직접 해야 했다. 스티로폼 판 4개 모퉁이에 시멘트 못을 하나씩 박고 실로 연결하여 그 위에 도배를 했다. 셔터 쪽에는 스티로폼에 포장용 면테이프를 군데군데 붙이고 바느질을 하여 떨어지지 않게 한 뒤 면테이프에 돼지표 본드를 발라 철제셔터에 붙였다. 바닥에는 스티로폼 판을 깐 뒤 비닐 장판을 덮었다.


P326

차고에서 4년째 살고 있을 때 한 번은 동태찌개가 먹고 싶어서 약수 시장에서 동태를 사 왔다. 뚜껑이 밀폐되는 스테인리스 김치통에 찌개 재료와 동태를 함께 넣고 곤로 위에 위에 올려놓은 후 번역에 몰두하던 중 1~2시간 이상 지났을 때쯤이었다. 김치통을 바닥에 놓고 밀폐 장치 3개 중 2개를 풀었을 때, 내부 압력 때문에 펑 하면서 뚜껑이 날아가더니 뜨거운 동태찌개 국물이 내 얼굴은 물론이고 차고 내부 전체에 뿌려졌다. 그때 그동안 살면서 억누르고 있던 눈물이 저절로 계속 쏟아졌다.

그전에도 울었던 적은 있었다. 메릴랜드대학교 분교에서 정말 무식할 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했음에도 한 과목에서 B를 받자 너무나도 실망하여 바지에 똥까지 쌀 정도로 술을 처먹고 울었던 것이다. 동태찌개로 울었던 때는 이미 공부 방식을 바꿔 성적을 A로 도배하며 과외와 번역 등으로 얻는 수입을 악착같이 모으고 있던 시기였다. 나는 동태찌개 냄새가 온몸에서 진동하던 나 자신에게 그만 울어라 위로하였다. 나를 위로하고 이끌어 나가야 할 사람은 나뿐이었으니까.



그는 돈이 전부가 아니므로 내가 선택하는 방향에서 행복을 느낄 경우 그렇게 진행하면 된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세이노 작가는 진정 자신만의 철학을 가진 사람이란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P329

토머스 제퍼슨은 "행복의 추구는 양도할 수 없는 권리"라고 했다. 그 권리를 누리려면 스스로의 변화를 먼저 주도하라. 남이 하면 따라 하고 남이 좋다면 따라서 좋다고 박수 치는 그런 삶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 뿌듯하여질 수 있는 주체적 삶을 찾아라.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삶은 이미 생명이 죽은 삶이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삶에 익숙해져 있다. ... 당신이 돈을 얼마나 벌든 간에 삶에 변화가 없고 뿌듯함이 없다면 결코 행복을 느낄 수 없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당신이 자기 자신의 가치를 변화시키고 증가시키는 노력을 할 때 행복은 매일같이 주어지는 법이며 덤으로 뿌듯함마저 느끼게 된다. 문제는 여기서 그 변화의 방향을 어느 쪽에다 두는가에 있다. 그 방향은 오직 두 가지뿐이다. 그 하나는 이 사회에서 대가를 더 많이 받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일에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지식을 추구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다른 하나는 이 사회에서 대가를 받는 것과는 관련 없이 인간으로서의 성숙함을 지향하는 것이다. 참선을 하면서 자기를 바라본다거나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인생을 배운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돈과 관련되지 않은 것에 그 방향을 두고 있다면 당연히 돈은 따라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변화가 주는 뿌듯함은 곧 돈 문제로 인하여 상처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독실한 신앙인들처럼 자족과 감사의 생활을 영위하며 살 '자신이 있다면'(사도 바울같이 말이다) 계속 그렇게 돈과 거리를 두고 살면서 행복을 추구하는 것도 가치 있는 삶의 한 형태라고 나는 믿는다.


P412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가장 나쁜 요소는 돈이 없는 사람들을 야단치는 듯한 분위기를 띠고 있는 점이다. 게으름을 꾸짖는 것이 아니라 가난의 원인을 투자에 대한 무지로 몰면서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게 하는 인상을 강하게 준다. 설령 기요사키식의 금융지능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미련하거나 열등한 삶이라고 매도할 수는 없다. 이것은 나의 철학이다. 게다가 가난의 원인은 금융지식의 부재에 있는 것이기보다는 일을 통하여 이 세상에서 더 큰 대가를 얻어 내는 방법을 모르는 무지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덧붙여 말하자면 사람이 생을 살아가는 형태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부자로 사는 삶만이 유일한 삶의 형태로 숭배되어서는 안 된다. 나처럼 부자로 살겠다고 작정을 하고 덤빈 삶도 인간의 삶이며, 반대로 가난하지만 자연 속에서 절약하며 삶을 관조하며 사는 삶도 인간의 삶이고, 평생을 남을 위해 봉사하는 봉사자들의 삶도 인간의 삶이며,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평생 하지만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삶도 인간의 삶인 것이다.

즉, 삶의 형태에 우열은 없으며 모든 것은 각자가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보이는 내용도 있다. 사실 이 장면부터 마초 상남자로 보였던 세이노 작가가 따뜻한 옆집 아저씨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가 이 편에서 하고자 했던 말은 돈을 모을 때는 날파리들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P278-279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경영한 회사에서 사내 결혼을 한 30대 초 부부가 있었는데 남자는 1남 3녀 중 둘째로서 외아들이고 여자는 3녀 중 장녀였다. 남자 측 집안은 아버지가 안 계셨고 경제적으로 넉넉한 편이 결코 아니었다. 출가한 누나는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었고 자기 수입도 있었으나 친정을 돕지는 않았다. 여동생 부부는 둘 다 안정된 수입이 있는 장애인이었고 친정에 들어와 살고 있었지만 생활비를 내놓지는 않았다. 막내 여동생은 무직이었다. 이런 가족 상황에서 그의 수입은 모두 어머니와 가족 뒷바라지하는 데 사용되었다. 한편 나와 십 년 가까이 일했던 여자 측의 수입은 모두 친정 부모의 광신적인 종교 활동과 두 동생들의 뒷바라지에 사용되었다.

이 부부는 맞벌이였기에 수입이 웬만큼은 되는데도 돈은 모이지 못했고, 경제적으로 힘들어했다. 나는 몇 년간 그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다가 외환위기가 오자마자 그 부부의 부모에게 전화를 하였다. "사장인데 외환위기 때문에 도저히 월급을 제대로 줄 상황이 못 된다. 50%도 지급하지 못할 것 같으므로 이 못난 사장을 용서해 달라." 그러고는 그 부부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너희 두 사람 모두 깨진 항아리에 물을 부어 왔다. 방금 전에 나는 너희들 집에 전화를 해서 회사가 무진장 어려워서 월급을 절반도 제대로 못 줄 것 같으니 용서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 누구의 봉급도 깎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전화한 목적은 너희들이 집에 돈을 내놓지 않아도 되는 명분을 주기 위함이었다. 이제 집안에 무슨 일이 있건 간에 모르는 척하고 몰래 돈을 모아라. 지금이 기회이다. 너희부터 먼저 돈을 모아 기반을 잡아야 한다. 내 말을 믿어라. 깨진 항아리는 그대로 내버려 두어라. 절대 굶어 죽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는 또한 무슨 일이 주어지든 간에 최선을 다해서 해야 한다고 했다. 자기 계발을 꾸준히 하면서 하고 있는 일에 일인자가 되면 돈은 자동으로 따라온다고 했다.


P183

약 십수 년 전 기사 한 명을 새로 채용하였다. 그 시절에 나는 언제나 신경이 날카로웠다. 보통의 직원들은 사장에게서 야단을 맞으면 얼굴이 하루 종일 굳어 있다. 하지만 그는 내가 별것도 아닌 일에 불덩이같이 화를 내었어도 5분 후에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사장님, 약속 장소에 가실 시간입니다." 그는 자신이 아는 길이어도 지도를 미리 보고 샛길들을 확인하였다. 그런 태도를 보고 <막히면 돌아가라>라는 책을 사다 주었더니 그는 너무도 좋아하였다. 대부분의 기사들은 길이 막혀 차가 꼼짝달싹 못 하면 "이게 내 탓이냐?"는 태도를 보였지만 그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사장님, 저 옆 골목으로 한번 가 보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론 나는 언제나 찬성이었다.

그는 오후에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음에도 "오후에 비가 안 올 수도 있다"라고 하면서 차를 닦아 놓았다. 그것도 완벽하게 닦아 놓았다. 대부분의 자가용 기사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는 내가 권하는 책들을 다 읽었고 심심하다고 기사 대기실에서 화투를 치지도 않았다. 우선은 차량을 최선을 다해 관리하였고 남은 시간에는 나이 어린 직원들에게 도와줄 일이 없느냐고 묻는 사람이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기 돈으로 차량 정비 서적을 사서 공부하는 기사를 나는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만난 적이 없다.

1년 정도가 지난 후 나는 새로 기사를 구하고, 대다수 임직원들의 상당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를 그 당시 연 매출 400억 원대 회사의 영업부 과장직에 앉혔다. 반대가 극심하였던 이유는 내가 왜 그를 영업부 과장직에 앉히려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가 내게 아부를 잘해서 내가 그런 결정을 내린 것으로 오해하기도 하였지만, 나는 그가 너희들하고는 일하는 근본 자세가 다르다는 말만 했을 뿐이다.

3개월 정도가 지나자 모든 거래처에서 그의 사람 됨됨이를 칭찬하는 말이 들려왔다. 6개월 정도가 지나자 더 이상 회사 내에서 그의 자질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다시 1년 후, 그는 사표를 들고 나를 찾아왔다. 돈을 어떻게 버는지를 알았다고 하면서 말이다. 나는 정말 기쁜 마음으로 그를 내보냈다. 몇 년 후 그가 업소용 김치 납풍 공장을 아내와 함께 운영하고 있음을 들었다. 직원이 10여 명이 된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또한 세이노 작가는 나쁜 놈들에게는 욕을 해야 한다고 했다. 상대편이 공중도덕을 모르는 사람이거나, 돈이 있다고 으시되는 사람, 강자라고 갑질을 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욕을 하라고 적었다. 이 부분을 읽으며 엄청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면서 그의 왕팬이 되어버렸다.


P566

나는 어린 시절 내 앞에서 새치기하는 년/새끼에게 점잖게 말을 했다가 "너나 잘 지켜라, 네가 무슨 참견이냐"라는 말에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하고 속으로만 분통을 터뜨리다가 나중에 잠자리에서 분해서 씩씩대며 잠을 이루지 못한 경험이 몇 번 있었다. ... 나는 상당히 공격적인 어조로 현장에서 쌍욕을 의도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는데, 상대가 누구 건 간에 첫마디부터 미리 외워 둔 욕으로 도배를 하였다.

이를테면 "야 앞에서 새치기하는 18새끼 놈아. 여기가 네 xx xx xx이냐. 아무 데나 슬그머니 x 대가리 처박게". "뭘 째려봐, 18년/새끼야, 이 줄이 아무 x이나 들락거리는 네 xx xx xx인 줄 아냐? 당장 뒤로 돌아가, x같은 새끼/년아" 내가 하는 말씀이 네 번데기 xx 같습니까" 등등이다. 물론 상대방은 당연히 나를 인간 말종으로 알고 나와 시비 붙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렇게 하니 그 자리에서 불쾌감이 해소될 뿐만 아니라 즐거움마저 생겼는데 그 즐거움은 상대방의 기분을 얼마나 잡치게 만들었느냐는 확신과 비례하였다.


P567

공공장소에서 애들이 시끄럽게 떠들며 돌아다니는데도 그 부모가 내버려 둘 경우 나는 처음에는 아주 듣기 좋은 점잖은 말로 이야기하지만 그 부모가 웬 참견이냐는 식의 반응을 보이면 즉시 "저기 번데기 x만 한 새끼들이 니 xx xx에 니 xx가 들어가 빠져나온 xx xx들이십니까"라고 말함으로써 그 부모의 기분을 확 잡쳐 버려 놓아야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깡패들에게 대들다가 얻어맞은 적도 네 번 있는데 한 번은 마흔 중반이 넘어서도 그런 적이 있다. 나 쪽팔리고 내 손해라고? 나는 나보다 강해 보이는 놈들에게 할 말도 못 하는 것보다는 얻어맞더라도 덤비는 게 더 좋다. 아프기밖에 더 하겠는가(참고:진짜 깡패들은 절대 당신 얼굴을 때리지 않는다. 내가 맞아 봐서 안다)


P568

좌우지간 나는 '욕하기 운동 국민본부' 같은 것이 생겨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공중도덕을 모르는 18새끼들과 18년들에게 너무나도 관대한 것이 우리 사회이고, 모르는 사람의 잘못을 면전에서 지적하는 것을 꺼려하다 보니 결국 못된 18년, 18새끼들은 계속 자기 멋대로 행동하고 그 결과 이 사회는 개판이 되어 왔다고 믿기 때문이다.


P573

내가 어떤 놈하고 시비가 붙었을 때 너무 싸가지 없어 보여 그만 종업원들 있는 곳에서 쌍욕을 퍼부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녀석은 딸과 변호사 사위와 룸에서 한잔 하며 식사 중이었다. 종업원들이 있었으니 모욕죄로 형사고발하겠다고 하여 그러라고 했고 그날 밤 12시 넘어서까지 강남경찰서에서 조서를 꾸몄다. 담당 경찰관은 "욕한 것을 사과하시면 될 일을 이렇게 확대시키십니까"라며 화해를 유도하였으나 나는 거절하였고 결국 얼마 후 검찰에서 연락이 왔다. "화해 안 하실 것입니까? 벌금형이 내려질 텐데요?"

그때 내가 한 말은 이랬다. "그 새끼가 군사정권 시절 장관직은 물론 장관급 이상의 감투도 썼던 자의 장남이던데 그런 새끼가 그렇게 행동하며 거들먹거렸기에 더더욱 화해할 생각 없습니다. 사내라면 무릎 꿇지 말아야 할 때가 있는 것 아닌가요? 내 나이에 어디 취직할 것도 아니고 모욕죄 벌금 50만 원 냈다는 게 무슨 대수입니까?" 나는 벌금을 납부하였고 그 후 그 500배 이상에 달하는 세금을 그 녀석 개인이 추징당하도록 선물하였다.


P571

먹고살기 바빠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절대 시비를 걸지 말라. 길거리에서 택시나 화물차, 버스를 상대로 잘잘못을 따지지는 말라는 말이다. 양보와 용서는 사정이 조금이라도 나은 자가 베풀 줄 알아야 하는 덕목이다.



그의 책 중 가장 좋았던 부분은 186쪽에 나오는 Integrity이다. Integrity란 삶의 전반에서 ‘자기 일관성’을 지키는 태도를 뜻한다. 다시 말하면, '말과 행동, 생각이 일치하는 상태'로, 단순히 말만 바르게 하는 것이 아닌,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즉,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실천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성공을 위해서는 integrity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그의 철학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책의 후반부에 그의 integrity가 돋보이는 부분이 있어 공유한다.


P530

이권이 달려 있는 허가인 경우에는 담당 공무원이 노골적으로 금품을 요구하기도 한다. 20여 년 전 어느 항구도시에서 사회간접자본 공사를 하려고 했을 때의 일이다. 비관리청 항만공사였는데 주무부서 실무자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도대체 서류를 어떻게 만들어 제출하는지조차 몰랐으니까.

"감사함을 미리 표현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던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내 기억으로는 아마도 몇십만 원을 봉투에 넣어 떡값이라고 주사에게 주었고, 그 상사에게도 찾아가 "형님 좀 도와주십시오"라고 계속 읍소하였기에 어느 날 드디어 담당자가 나를 데리고 허술한 창고로 가서는 그 서류를 찾아 주었는데 웬걸 각종 도면들이 첨부되어 있어서 두께가 10 센티미터가 넘었다.

"이거 오늘 일과 전까지 다시 반납할 테니 제발 좀 밖에 가지고 나가서 복사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맨입에요?" "아, 인사는 물론 하겠습니다."

결국 그 서류를 들고나가 복사집에서 각종 도면들도 다 복사한 뒤 현금 2백만 원을 봉투에 담아 그를 그 사무실에서 다시 만났는데... 겁도 없이 그는 복도에서 그 봉투를 열어 보더니 "이게 얼맙니까" "이백입니다만..." "아니 사장님, 장난하십니까? 이백요? 에이 도로 가져가세요." ... 다음 날 나는 오백을 갖다주었다. 그리고 허가를 받기까지 더 많은 액수가 더 뇌물로 사용되었고 이게 내가 평생 살아오면서 어떤 허가를 받기 위해 뇌물을 준 최초이자 마지막 사건이었다. 왜 마지막이었는가 하면 내 기분이 아주 더러워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랄을 떨면서까지 꼭 이렇게 해야 하나 하는 그런 기분 말이다.


P587-589

한국을 비롯한 많은 아시아 국가들에서 대부분의 접대는 상대방과 이른바 "인간적으로 친하게" 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여기서 "인간적으로 친하게" 된다는 말의 의미는 십중팔구, 상대가 어떤 스타일의 여자를 좋아하는지 무슨 노래를 좋아하는지를 파악하면서 젊은 여자애들 끼고서 상대방 비위 맞춰 가며 술 처먹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접대의 정점은 상대가 여자와 2차를 나가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온갖 아부를 다 하면서 포주 노릇을 하는 이런 식의 접대를 관행으로 여기지 않는 집단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종교계 일부를 제외하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장사, 사업을 하면서 부딪친 갈등 중 대표적인 것이 이 뒤틀린 접대관행이었다. 내가 파는 물건이나 용역이 가격과 품질에서 남들 것보다 우수하다면 당연히 상대방이 구입해 줄 것으로 알았는데 세상이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가격은 비싸고 품질은 떨어져도 요령만 좋으면 팔아먹을 수 있는 게 이 세상이었고 그 요령이란 것은 다름 아니라 구매 결정자를 이런저런 방식으로 구워삶는 것이었다. ...

물건을 파는 입장에서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접대비로 사용할 금액만큼을 품질을 개선하고 가격을 낮추고 서비스를 높이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내 생각은 이러했다.

내가 파는 물건이 남들에게는 없다면 접대를 할 필요가 없다. 내가 파는 물건이 남들도 파는 물건이라면 품질이 달라야 하며 품질이 다르다면 접대가 필요 없다. ... 내가 제공하는 용역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내가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면 접대가 필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접대를 해야만 상대가 구매를 해 준다면 나는 '더러워서'그런 장사는 하지 않겠다.


.....


세이노 작가는 모두에게 "피보다 진하게 살라"말한다. 그는 과거에 자살을 시도했다가 살아났고, 그 경험 이후 "이왕 살아남았으니 손목에서 흘린 피보다 진하게 살아보자"는 각오로 살아왔다. 그렇게 살아온 결과, 지금의 자산을 이룰 수 있었다고 한다.


그의 책에는 꾸밈이 전혀 없고, 인간미가 넘쳐난다. 있는 척하거나 멋져 보이려는 허세도, ‘내가 너보다 잘났다’는 우월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그저 자신이 겪은 일들을 담담히 이야기하며, 자신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할 뿐이다. 그래서 더 진정성이 느껴지고, 그래서 더 깊이 마음에 와닿는다.


이 책에는 삶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핵심적인 조언들이 담겨 있다. 그 조언들은 모두 그가 직접 겪은 삶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더욱 값지고 진정성이 있다. 부자가 되는 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해도, 한 번쯤은 꼭 읽어볼 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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