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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Kim Aug 20. 2021

방랑 벽의 끝, 결혼 (3)

'그렇게 우리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로버트와 나는 오하까(Oaxaca)로 가는 버스 안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친해졌다. 그러면서 그가 나에게 자연스럽게 오하까에서의 일정을 물어보았던 것 같다


"나는 스케줄이 없어. 그냥 45일 동안 느낌 가는 대로 혹은 발길 닿는 대로 지낼 예정이야."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자기들이랑 합류하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늘 어느 곳을 여행하나 좋은 사람을 만났던 나는, 오하까에서도 운이 좋구나 싶은 생각을 하며 그들과 함께했던 것 같다.


우리는 오하까 버스 터미널에서 내려, 해변으로 바로 가기보다는 '몬테알반(Monte Alban)' 유적을 보기 위해 산에 위치한 마을에서 1박을 하기로 했다.


몬테알반 유적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그런지 그리 덥지도 않았다. 그곳은 문화적으로 마야 문명과 쌍벽을 이룬다는 곳이었지만, 멕시코시티 근처에 있는 테오티우아칸을 이미 봤던 터라 감흥이 그리 강렬하지는 않았다. 그냥 마음이 잘 맞는 독일 친구들과 함께한 여행이라 즐거웠다는 정도.



유적 탐방을 끝내고 산 마을에 위치한 숙소로 돌아와 4인실 도미토리에서 '유리드와 그녀의 남친 로버트(6년째 함께 살고 있던 커플이었고, 현재는 결혼해서 딸 3명과 함께 즐겁게 살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내 남편인 로버트, 이렇게 4명이서 각자 잘 준비를 마쳤다. 산 위에 위치한 '몬테알반'을 당겨온 나는 비누로 발을 씻었다. 근데 그 모습을 본 3명의 독일인은 눈을 크게 뜨면서 "발을 왜 씻어?"라고 물었고, 난 그들을 보면서 "발을 왜 안 씻어?"라고 반문을 했다. 희한하게 이 순간이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_-


2층 침대 각자의 자리에 누웠다. 산속 마을이라 그런지, 9월의 멕시코라 하기에는 어색할 정도로 많이 추웠다. 그리고 긴 버스 탑승 후에 바로 땡볕의 유적지를 다녀와서 그랬는지, 로버트가 밤중 내내 추워서 벌벌 떨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 날 그가 피곤해하며 나에게 함께 숙소에 머물기를 요청했다. 유리드와 그녀의 남친은 다른 곳으로 유적 탐방을 떠난다고 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로버트와 함께 있기로 했다. 둘이서 숙소 근처 마을을 구경하면서.


마을을 잇는 작은 오솔길을 따라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산 속이라 그런지 곳곳에 안개가 껴있었던 기억이 난다. 조용했고,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그때 둘이 다니며 별 말은 안 했던 것 같다. 그래도 어색함 없이 참 편안했다는 기억이 있다. 다 돌아다니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  앞에 있던 해먹에 둘이 앉았다. 특별할 것 없는 그냥 천으로 만든 작은, 낡디 낡은 해먹이었다.




그곳에 앉아서 무심히 앞을 보고 있을 때 그가 조용히 속삭이며 나에게 키스를 했다.


"I would like to know you."



...


뭐가 이렇게 심플하면서도 솔직한 말이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I love you라고 했다면 이처럼 편안하진 않았을 것이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상황에 저 말을 한다는 건 그저 장난에 불과하다는 거겠지 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I like you라고 했어도 마찬가지다. 뭔가 가볍잖아.


뭐 인연이 되려고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난 그냥 'I would like to know you.'라는 말이 좋았다. 어찌 보면 나는 저 문장 딱 하나만으로 로버트가 진실된 사람이라고 판단을 했는지도 모른다. 남녀 관계를 떠나 모든 인연을 시작함에 있어 육감은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그치만 나만이 느낄 수 있는 느낌이랄까.


어쨌든 '우리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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