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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나Kim Aug 20. 2021

방랑 벽의 끝, 결혼 (4)

'너에게 자꾸 눈길이 간다.'

예상치 못한 순간의 키스였지만 입맞춤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뭔가.. 당황스러웠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자연스럽게 키스를 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둘이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했던 것 같다. 나는 자연스러운 척 행동은 했지만, 솔직히 그 급작스런 이벤트가 나의 이성을 마비시킨 듯했다.


조금 후에 유리드와 남친이 숙소로 돌아왔다.


우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넷이서 오하까 시내로 숙소옮겼다. 그곳은 남녀 도미토리가 나눠져 있었다. 짐을 풀고 시내에서 점심을 먹은 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길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던 학생들이랑 자연스레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로버트와 유리드 둘 다 칠레에서 교환학생을 한 경험이 있어서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잘했다.


로버트가 한 학생에게 물었다.

"내가 멕시코 노래를 꽤 많이 들어봤는데, 멕시코 음악 중에서 사랑 이외의 것을 이야기하는 노래가 있니? 내가 아는 모든 노래는 다 사랑 얘기라서 그런 게 있는지 궁금해."


그 학생이 한참을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없는 거 같아."


멕시코는 사랑에 꽃피고 사랑에 꽃지는 그런 나라인 듯하다.

내 필리핀 친구가 그런 말을 했다. 한국 드라마를 보다 보면 감정이 격해져서 가끔 보기 힘들 때가 있는데, 멕시코 드라마는 한국 드라마보다 백배는 더 열정과 감정이 넘쳐서 끝까지 볼 수가 없는 경우가 꽤 많다고..


아무튼 유쾌하게 오하까 시내에서 1박을 한 후, 우리는 드디어 오하까 비치에서 '초코라떼 아저씨'가 운영한다는 로맨틱한 숙소를 향해 출발했다. 로버트가 2004년 이곳에 놀러 와서 머물던 곳이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도 계속 생각이 나는 곳이기에 이번에 친구들과 다시 찾았다고.



기대를 하고 도착한 그곳은 정말 아름다웠다.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모래사장, 2미터가 훌쩍 넘는 큰 파도가 치는 거친 바다, 그리고 바다 앞에 귀여운 숙소가 한 채 있었다. 사장님 이름이 '초코라떼'라고 했다. 작고 거무잡잡한 피부에 히피 머리를 하고 있던 그분은 참 자유로워 보였다. 아기자기한 집을 모두 손수 만들었다고 한다. 화장실에 전등은 큰 조개로 만들어져 있었고, 바닥과 세면대는 비비드한 색깔의 모자이크 타일로 직접 꾸며져 있었다. 너무나 아기자기하고 자연스럽고 또 안락한, 자연으로 만든 집이었다.


운명의 장난인지 초코라떼 하우스에는 도미토리가 없었다. 숙소가 작아 방도 2개뿐이었던 거 같다. 세상을 다 씹어먹을 듯 혼자 배낭여행을 즐기던 용감무쌍한 나였지만, 남자와 관련되어서는 숙맥이었기에.. 그리고 왜 하필 어제 키스를 했을까... 여러 생각이 교차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로버트와 같은 방에 들어와 짐을 풀고 있었다... -_-


저녁이 되기 전까지 신났더랬다. 바닷가에서 놀고, 백사장을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초코라떼 아저씨가 직접 만든 해먹에 누워서 넷이서 돌아가며 이야기 짓기 놀이도 하고, 같이 저녁도 먹고.. 참 즐거웠다.


그러다 점점 밤이 다가왔다.


이놈이 나 덮치는 거 아냐? 하는 걱정. 왜 우리는 남자랑 한 침대에 누우면 무조건 오케이 한 거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으며 크지 않았던가. 혹은 남자는 성욕이 생기면 어찌 됐든 풀어야 한다.. 라든가... 그간 많이 들었던 이야기들. 내가 미쳤지.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어찌 같은 방을..이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지만, 내 나름대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을 했다고 생각한다. 필시 그랬을 것이다.


어색함을 뒤로한 채 우리는 밖으로 나갔다. 집채만 한 파도 옆을 걸으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깜깜한 하늘이 얼마나 깨끗한지 손에 닿을 듯, 내 위로 마구 떨어질듯한 별들 바로 눈앞에 있었다.


"Can you see the Mily Way?"


나는 Milky Way란 단어를 그때 처음 들었다. 그럼에도 단번에 이해했던 은하수.. 와 저게 은하수구나. 이리도 이쁘네. 바람도 선선하게 불었고, 시원한 파도소리에..  까맣지만 밝은 밤하늘..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은하수까지. '이곳이 천국이구나. 나는 지금 천국에 있다.'


로맨틱한 분위기에 휩싸인 채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그러다 키스를 했고... 어찌어찌 스킨십을 한 거 같다. 그치만 더 이상은 원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나의 의사를 전달하자 로버트는 바로 멈추고 나를 존중해줬다.


시간이 지나고 로버트한테 이 부분을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때 참기 힘들지 않았냐고. 그랬더니 그는 섹스를 하느냐 마느냐의 의사는 전적으로 여자에게 달려있다는 답변을 했더랬다. 나는 왜 그 결정이 남자한테 있다는 생각을 했을까. 돌아보면 그때 나는 꽤 어렸고, 또 어리석었다.


아름다운 오하까 해변에 위치한, 로맨틱한 숙소에서, 나름 괜찮은 남자가 원하는 사랑의 행위를 나는 거부했다. 뭐 사람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니까. 나는 이 남자랑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그저 여행지에서 만나고 헤어질 사이일 텐데 뭐하러 감정을 만드나 라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지금은 결혼한 사이지만,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나는 그와 잠은 자지 않으리. 이건 분명하다. 왜냐면 나는 극 보수적인 사람이니까.. (솔직히 다음 생에는 좀 가벼운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다.. ㅠ _ㅠ)


그렇게 우리의 아름다운 첫밤이 지나갔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자꾸 그에게 눈길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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