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3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김재원 의원님과의 추억

'언제 어디에서 다시 만날지 모르는 게 인연이다.'

by 한나Kim Jan 19. 2025

  남편 아는 분이 인도 대사관에서 일을 하는지라 작년 10월 1일, 연세대학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사랑 인도 문화 축제'에 초청을 받아 참석하게 되었다. 인도 전통 춤을 볼 수 있는 귀한 기회라기에 오랜만에 둘이 데이트도 할 겸 둥이는 할머니 집에 맡겨놓고 참석을 했다.


  축제가 시작되기에 앞서, 이런 자리에 빠지지 않고 서는 분들이 계시다. 바로 구청장 및 국회의원과 같은 정치인들. 밤낮, 주말, 공휴일 할 것 없이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라면 늘 인사를 오는 그들을 보며 이 일도 참 보통 일이 아니네 라는 생각을 했다.


   먼저 주한인도대사관의 대사님이 말씀하시고, 그다음 구청장, 이어서 몇몇 분들이 축사를 한 후, 마지막으로 짧은 쇼커트에 보라색 재킷을 입은 여성이 올라왔다. 국회의원이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튀는 모습이라 눈에 띄었다. 또한 그녀가 하는 말이 전형적인 국회의원의 축사는 아닌 듯했다.


  "저는 모험가 아버지를 따라 인도에 20번을 넘게 방문했던 사람입니다. 또한 저는 인도와 피를 나눈 형제이기도 합니다. 제가 인도 아유타야 출신인 허왕후의 자손, 김해 김씨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고 이 부분을 바로 영어로 얘기했다. 이때 인도분들에게 엄청난 환호를 받았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녀는 인도 노래를 무반주로 크게 불렀다.


  저런 사람이 국회의원일 수 있구나..

  뭔가 신선했다.


  약 1시간의 공연이 끝나고, 높으신 분들과 댄서들이 모두 무대 위로 올라와 서로 축하를 하며 인사를 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들을 보고 있는데, 당찼던 보라색 재킷을 입은 의원도 무대에서 대사님 및 댄서들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무 생각 없이 그들을 보고 있는데... 아니 잠깐만... 저 사람 혹시 '리아' 아냐?? 아무리 봐도 리아 언니 같은데.... 싶은 생각이 들어서 네이버에서 김재원을 찾아봤다. 와우 정말 그 Ria인 것이다.


...


  내 젊은 시절 Ria를 빼면 설명이 안될 만큼, 나는 그녀의 팬클럽에서 정말 열심히 활동했던 사람이다. 그러다 리아 팬클럽의 회장까지 더랬다. 덕분에 언니 생일날 진행하는 콘서트의 무대에 케이크를 들고 올라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기까지 했던, 그렇다. 나는 그녀의 열혈 팬이었던 것이다 ㅎㅎ


  내가 리아를 좋아했던 이유를 잠깐 설명하자면, '네 가지 하고 싶은 말'이라는 곡 때문이다. 중3 때 오빠가 너무나 허무하게 하늘나라로 가버린 후, 부모님이 무너질까 싶어서 나의 슬픔은 전혀 표현하지 않고 밝은 척만 하며 지내다가,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리아의 '네 가지 하고 싶은 말'이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영혼이 위로를 받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큰 위로를 준 곡이었기에 이런 노래를 하는 가수가 궁금해졌고, 그러면서 그녀의 팬클럽에 가입하여 활발한 활동을 이어간 것이다.


  모든 것은 이렇게 작은 우연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다시 생각해 보면 이것이 과연 우연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


  심장이 두근거리며 냅다 무대로 올라가 상기된 목소리로 "리아 언니!!! 저 한나예요. 예전 리아피아 회장이었던 한나입니다!! 저 언니 콘서트에 케이크 들고 올라가서 생일 축하 노래도 불러드렸었는데ㅎㅎ 여기서 이렇게 만나게 될 줄 몰랐어요!! 언니 너무 반갑고 또 자랑스러워요!!!"


  언니도 깜짝 놀라며 친근하게 근황을 물었다.

  "어~ 얼굴 보니 기억난다!! 한나 진짜 오랜만이다! 요즘 뭐 하며 살고 있니?"


  우리는 지금 중후한 척을 해야만 하는 중년이지만, 그 짧은 순간만큼은 20대 시절의 나와 그녀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이다. 국회의원으로 근엄하거나 친절한 척할 필요 없이, 중년의 여성으로 어른스러운 척할 필요 없이 그저 20대에 만났던 그 모습 그대로 말이다.


  둘 다 추억에 잠겨 있을 때 남편이 그녀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진짜 가수였어요?"  

  "네 저 가수였어요. 그것도 Rock 가수요 ㅎㅎㅎ"


...


  누가 이 기분을 알 수 있을까. 기쁘면서도 뭔가 세월의 흐름이 야속하면서도... 형용할 수 없는 다채로운 감정이 그 짧은 시간에 막 솟아났다. 내 젊음, 내 추억, 내 신선했던 20대의 경험들이 모두 한꺼번에 터져 나온 느낌.


  신기한 것은 20년 전의 일들이었음에도 바로 어제 경험한 듯 아주 선명하게 모든 것이 떠올랐다는 것이다. 뭔가 젊은 시절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듯하다.



  그녀와 생각지도 못한 조우 후, 집에 가는 내내 얼마나 많은 추억이 떠올랐는지 모른다. 팬클럽 활동을 하면서 가족보다 더 가깝게 지냈던 그때의 시절 인연들도 떠오르고, 그때 팬클럽 회장으로서 임기 1년 동안 최선을 다해서 운영을 한 후, 끝나자마자 잠수를 탔던 일도 생각이 났다. ㅎㅎ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별로 변하지 않은 점이 있다면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성격 탓에 주도하는 모임에서 무슨 일이든 혼자서 하는 경우가 많고, 또 혼자 하면서도 뚝딱뚝딱 진행이 되다 보니 조력자들은 그냥 맡겨도 되겠다 싶은 마음이 드는지 시간이 흐를수록 '너 혼자 해~'가 되는 패턴이  비슷하게 이어져왔다.


  1박 2일 또는 한 달 등 짧은 기간의 일이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지만 장기간 해야 하는 경우에 문제가 생긴다. 시간이 흐를수록 대부분의 일을 혼자 하고 있는 나를 보며, 모임에 정이 떨어지기 시작. 그렇지만 맡은 책임이 있기에 주어진 기간 동안 별말 없이 최선을 다한다. 그 후, 임기가 끝나면 잠수를 타고 사라지는 것이다..  -_-


  리아피아에서 당한 친구들이 정말 슬퍼했고, 나한테 연락하기 위해 그들이 많은 노력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다들 나를 진심으로 좋아했던 사람들이고, 나 또한 진심으로 좋아했던 사람들이었기에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들을 만난 순간부터 헤어지는 순간까지 투명하고도 진실된 마음으로 그들을 대했었기에 나는 사실 미련이 하나도 없었다.


  지금의 나라면 그렇게 철없이 사라지진 않았을 테지만, 그때의 나는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어렸기 때문이다.


  2023년에 만든 어린이 사물놀이팀은 그때와는 달랐다. 역시나 혼자서 북 치고 장구치고 하면서 끌고 갔지만, 중간에 모든 의지가 꺾일 때 넋을 놓고 있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내 아이들과 그 친구들이 함께 하고 있었기에, 또한 아이들이 사물놀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말이다. 그때 정신을 차리고 엄마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 후부터는 모임이 아주 매끄럽게 진행이 되기 시작했다.


  엄마란 이렇게 위대한 것이다. 엄마란 타이틀은 타고난 본성조차 억누를 수 있게 다.


...



  과거에 인연을 맺었던 사람을 언제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다시 만날 줄은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스쳐 지나가는 인연일지라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진심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그들과의 인연이 끝났을 때 미련이 남지 않고, 또 우연히 어딘가에서 다시 만났을 때 기분 좋게 인사를 하며 추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은 참 오묘하게 즐거운 것이란 생각을 다시 한번 했다. 리아 언니를 이런 생뚱맞은 곳에서 다시 만날 줄이야... 생각하면 할수록 유쾌하고 또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들어맞는 듯한 상황이었달까. 인생은 정말 살아볼 만한 것임을 다시 한번 느꼈다.


나의 아이돌, 리아 언니. 늘 그녀를 응원할 것이다 :)나의 아이돌, 리아 언니. 늘 그녀를 응원할 것이다 :)


작가의 이전글 어린이 사물놀이의 여정 (2)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