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감 상실

by 문주

도시가 개발되는 과정에서, 어떤 장소는 너무 쉽게 사라진다. 그곳이 낡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비효율적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라지는 건 건물만이 아니다.


그곳에 붙어 있던 것은 개인의 추억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골목의 굽이와 걷는 속도, 그늘이 생기는 자리, 문을 열고 닫는 순서, 저녁 무렵 창마다 차례로 켜지던 불빛 같은 것들은 한 사람의 감각이 아니라, 그 동네가 오랫동안 함께 살아오며 만들어낸 생활의 리듬이다. 장을 보러 가는 길, 아이들이 오가던 동선, 이웃이 마주치고 인사하던 지점, 계절에 따라 사람들이 모이고 흩어지던 시간대—그런 것들이 쌓여 동네의 표정이 되고, 도시 안에서 그곳을 그곳답게 만드는 맥락이 된다. 그래서 개발로 장소가 사라질 때 함께 지워지는 것은 건물만이 아니다. 우리는 종종 장소상실감을 느낀다. 내가 좋아하던 풍경을 잃어서가 아니라, 그 장소가 품고 있던 공동체의 생활세계와 도시 속에서 축적된 의미가 한꺼번에 끊기기 때문이다.

출처 : Wikimedia



장소감이나 장소애는 결국, ‘어디’에 대한 감정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대한 감정에 가깝다. 그래서 장소가 사라지면 단지 풍경이 바뀌는 게 아니라, 우리가 우리로 살아온 기억이 지워진다. 개발이란 말이 사람을 설레게 하면서도 동시에 불안하게 만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새로워지는 것만큼, 사라지는 것도 많기 때문이다.


동네는 사람들의 하루를 어떤 리듬으로 조직해 왔을까. 출근과 통학의 시간표, 장을 보는 요일과 동선, 가게가 문을 여닫는 시간, 배달과 택배가 오가는 흐름처럼—이곳은 삶을 빠르게 밀어붙였을까, 아니면 골목과 마당, 작은 가게들이 만들어내는 ‘잠깐 멈춤’이 가능한 속도를 남겨두었을까. 관계는 또 어디에서 생기고 유지되었을까. 아이를 등·하교시키며 마주치던 골목 모서리, 동네 가게에서 얼굴을 익히며 안부를 묻던 순간, 작은 공원과 경로당, 교회나 마을회관 같은 공공의 자리, 재래시장과 세탁소·미용실처럼 생활이 이어지는 상점들—이런 곳들이 이웃을 ‘알게’ 하고, 안부와 돌봄이 오가게 하는 접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다움’은 결국 낡은 건물의 외형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보행 동선과 그늘, 가게와 집이 섞여 있던 구조, 임대료가 버텨주던 소상공인의 자리, 돌봄과 노동이 이어지던 반경,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서로를 확인하던 비공식 네트워크—아는 얼굴의 밀도와 급할 때 맡길 수 있는 관계—같은 것들이 겹쳐져, 도시 안에서 그 동네만의 표정과 기능을 만들어 왔을 것이다.


도시는 자본의 논리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도시는 돈으로만 살아 있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매일을 살아내며 의미를 쌓아온 생활의 장소다. 자본의 논리가 도시의 한 얼굴이지만, 도시의 전부는 아니다. 도시가 정말로 살아 있다는 건, 사람들이 그 안에서 기억을 만들고, 습관을 쌓고,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아온 흔적을 지우지 않고 집을 짓는다는 건, 어떤 일일까. 그건 무조건 ‘남기기’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무조건 보존하자는 말도 아니다. 오히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바꿀지에 대한 태도에 가까울 듯하다.


개발은 빠르고, 효율적이며, 많은 것을 한꺼번에 바꾼다. 하지만 도시가 사람에게 주는 안정감은, 대개 변화가 아니라 연속성에서 온다. 내가 익숙한 길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것, 같은 자리에 비슷한 그늘이 드리우는 것, 동네가 바뀌더라도 내가 살던 시간이 완전히 부정당하지 않은 것. 그런 것들이 도시를 ‘살아 있게’ 만든다.


도시는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 자본의 논리가 도시를 굴린다면, 삶의 리듬은 도시를 살린다. 자본의 논리가 도시의 표면이라면, 관계의 층은 도시의 몸통이다. 사람들이 쌓아온 시간의 층, 생활이 만든 흔적, 관계가 지나간 자리. 이런 것들이 도시의 근육이고, 도시의 기억이다. 우리가 살아온 흔적을 지우지 않고 집을 짓는다는 건, 새로운 것을 반대하는 일이 아니라, 새로운 것이 들어설 때에도 과거가 완전히 끊기지 않게 다리를 놓는 일일 것이다. 도시는 늘 변한다. 하지만 변하는 도시 안에서도, 우리가 살아온 맥락만큼은 너무 쉽게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게 결국, 사람들이 도시를 애정을 가지고 “거주 가능한 곳”으로 느끼게 만드는 최소한의 조건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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