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비우고 내려놓기, 거리를 두고 천천히 살피기, 파도 같은 감정이 나를 제멋대로 몰고 가지 않게 중심을 잡기. 그런대로 노력하고 있다. 어느 정도 성과는 있다. 낫 마이 폴트, 낫 마이 비지니스. 이 자세는 내가 상황에 덜 동요하게끔 만들어주었다. 묵직한 추가 되어 감정의 중간 지점을 지키도록 도왔다. 그러나 오늘은 실패했다. 그냥 실패가 아니고 장렬하고 참혹한 실패다.
낫 마이 폴트, 낫 마이 비지니스라고 단호하게 외칠 수 없는 상대가 하나 있으니 그건 바로 꼬마다. 이제 32개월, 한국 나이로 4세에 접어든 꼬마는 최근 들어 조금 이상해졌다. 뭔가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구 소리를 지른다. 눈물 콧물은 펑펑 터져 나온다. 장소가 어디든 주저앉아버리고, 거기서 더 심기가 불편해지면 고대로 눕는다. 실내의 공공장소라면 그대로 들고 장소를 이동하지만(인형뽑기의 달인처럼 망설임 없이 단호한 태도로) 들려나가는 와중에도 힘찬 발버둥을 친다. 실외라면 그 울부짖음이 제풀에 멈추도록 조금 떨어져 기다리는데 그래도 울음은 멈출 줄 모른다. 찬바람 쌩 일으키며 자리를 좀 더 뜨면 다시금 울음 폭탄을 터트리며 따라온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빛, 안쓰럽다는 표정, 지긋한 웃음 같은 것은 덤이다. 가끔 사탕을 쥐어주시는 분도 있다. 그럼 사탕을 손에 꼭 쥐고 더 크게 울어버린다.
아, 이건 병이구나. 그냥 병 아니고 지랄병. 왜 미운 네 살 아니 미친 네 살이라 하는지 이제야 알겠다.
잠깐의 소강상태에 슬쩍 거리를 좁힐라 쳐도 눈치를 잘 봐야 한다. 눈물이며 콧물로 범벅된 얼굴을 좀 닦아주려 하면 '눈물이랑 콧물 질질 흘리고 싶어요!' 하며 소리친다. 쌍콧물로 입술을 적시는 와중에 눈빛만은 형형하다. 구겨진 미간과 올라간 눈꼬리에는 반항기가 제법 어려있다. 진짜 사춘기라면 무슨 대사를 하려나. '나한테 간섭하지 말아요! 나 좀 내버려 두세요!' 하며 문이라도 쾅 닫으려나. 닫힌 문을 두고 서로의 감정을 식히고도 싶은데 14살 아닌 4살은 그것도 허락하지 않는다. 제 눈에 보이는 곳에 내가 있어야 하고, 자신의 요구 사항을 정확한 문장으로 만들어 쉬지 않고 반복한다. '소방차 들고 어린이집 가고 싶어요! 소방차 들고 어린이집 가고 싶어요!' 그나마 '소방차랑 놀려고 어린이집 안 갈 거예요.' 의 단계는 막 지난 셈이다. 아침 9시 반. 지랄병 발병 30분째다.
어제 장난감 도서관에서 크고 무거운 저 소방차를 왜 빌려왔을까. 자기 전까지 소방차의 사면을 구석구석 살피며 여긴 왜 이렇게 생겼어? 여긴 왜 버튼이 있어? 질문을 계속 쏟아내더니 결국 이 사달이 난 거다. 소방차는 무거워서 어린이집에 들고 갈 수 없어, 나는 감정 없는 목소리로 반복해 말한다. 그러면서 아 그냥 들려 보낼까? 머리를 굴려본다. 그러나 들고 가면 뻔하다. 또래 애들로 바글거리는 그곳에서 소방차는 만인의 장난감이 될 거고 그럼 그게 또 속상해서 울어댈 테니 그렇게 크고 존재감 있는 장난감은 애초에 안 들려 보내는 게 수다. 어린이집 다녀오면 소방차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지금 실컷 가지고 놀고 조금 천천히 가자. 그래도 된다. 나름의 좋은 협상 조건을 제시했는데도 소방차는 거들떠도 안 보고 울고 불며 농성 중인 꼬마다. 결국 소방차는 집에 두고 손에 쥐고 나선 것은 검은색 볼펜이다. 볼펜 쥔 손을 흔들며 씩씩하게 걸어 어린이집 앞에 도착했는데, 거기서 또 무슨 수가 틀렸는지 다시 병이 재발하고 만다. 안 들어가겠단다. 안 들어가고 싶단다.
누워 나뒹구는 사이 세 명의 어린이들이 등원을 한다. 어린이집 문을 지키는 정승이나 돌하르방 뭐 그런 게 된 기분이다. 무표정한 얼굴로 영혼 없이 자리를 지킨다. 말 한마디 거들면 그걸 꼬투리 삼아 다시금 새로운 떼쓰기로 넘어가기 때문에 말을 삼가야 한다. 그렇지만 차가운 바닥에 엉덩이 붙이고 버티는 게 영 마음이 쓰인다. 은근슬쩍 일으키려 하면 손에 힘을 주고 버팅긴다. 여기 앉아있으면 엉덩이 차가워, 일어나자. 하면 바로 꼬투리 잡히고 만다. '엉덩이 차갑게 있을 거예요!' 매섭기는 서릿발 그지없다.
결국 내 품에서 선생님 품으로 공중 이동하는 자세로 어린이집에 들어가게 된 꼬마. 그렇게 아침을 보내고 나면 진이 쫙 빠지고 만다.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게 된다. 대체 언제쯤 이 되지도 않는 실랑이를 끝내게 될까? 하면서도 데리러 갈 시간까지 꼬마의 축축한 얼굴이 눈에 밟힌다. 무사히 하원한 뒤(선생님 말씀으론 밥 엄청 많이 먹고 낮잠도 두 시간 잤다고 한다. 농성꾼의 최후다) 제법 기분 좋게 집에 돌아와 소방차와 극적인 상봉도 했다. 그럼 이제 된 거 아닌가? 싶은데 저녁 시간 다 되어 다시금 일이 터졌다. 시작은 서랍장 밑으로 굴러들어간 사탕을 굳이 먹고 싶다고 해 막대기를 이용해 구조한 다음, 먼지를 씻어 입에 넣어줬더니 안 먹고 들고 있겠다며 울음이 터졌다. 니 마음대로 해! 나도 소리를 빽 지르고 만다. 그리고 한없는 대치. 침묵 사이 압력솥 추만 칙칙 소리를 내며 돌고 있다.
휴전을 청하는 꼬마의 자세는 한결같다. 범벅된 얼굴을 하고 와서는 안아달라고 한다. 안아준 다음 적당한 틈을 봐서 눈물과 콧물을 닦아주고 나면, '아깐 조금 속상했어요.' 라고 말한다. 왜 속상했어? 라고 물어보면 세상 통틀어 가장 당황스러운 답이 나온다. '왜 속상했어요?' 자기가 왜 속상했는지 알려달란다. 나한테. 정신을 가다듬고 음, 비가 오는 날도 있고 해가 쨍쨍한 날도 있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도 있잖아. 오늘은 마음에 비가 내리는 날인가 보다. 그래서 속상한 마음이 되고 눈물도 나나보다. 작은 가슴팍을 어루만지며 나는 내심 내 대답에 흡족해한다. 우문에 현답을 한 것 같은 으쓱한 기분도 든다. 제법 화해모드가 된 것 같아 꼬마의 이마에 뽀뽀를 하며 이제 마음에 비가 그쳤어? 라고 물어본다. '계속 비가 내리고 있어요.' 라고 말한다. 쉽지가 않은 사람이다. 정말.
이게 언젠가 끝나기는 하는 거겠지? 그럼 아마 또 새로운 뭔가가 시작되겠지. 내일 일은 난 몰라요, 그저 하루를 버텨내는 수밖에. 마음의 중심이고 나발이고 오늘 하루가 끝나 그저 다행이다. 참으로 다행이다. 젖은 한숨에선 안도의 냄새가 난다. 지친 하루일랑 잊어버리고 재충전을 해야지, 하면서도 문득 문득 멈춰 오늘의 울고 웃는 사진들을 들여다 보고 있다. 이 자리가 그런 자리다. 그렇게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