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배움의 열정
백조 생활 49일차 22.04.13(수)
합격&실업크레딧 — 한 줄기 희망에 비친 사회의 장벽
벚꽃이 흩날리는 4월, K-디지털 교육 합격 소식이 찾아왔다. 잠시 설레는 마음으로 외환전문역 보수 교육을 인터넷으로 수강하던 중, 뜻밖의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실업크레딧.’ 낯선 단어 속에는 국가가 실업 기간 동안 국민연금 보험료의 75%를 지원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담겨 있었다. 마치 봄날의 단비 같았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상담원의 설명이 이어지며 현실의 벽이 드러났다. 주택임대사업자 등록으로 인해 별도의 지역 국민연금을 추가 납부해야 했던 것이다. 최저 금액만 해도 9만 원. 임대사업자 반납조차 불가능한 상황에서, 실업크레딧 신청을 유지하는 것이 옳은지 혼란스러웠다.
한때 계획적이던 나의 삶이 예측 불가능한 변수를 만나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 낯설고 버거웠다.
“숨 쉬는 것도 돈이 든다”는 말이, 오늘은 유난히 세속적인 문장이 아니라 냉혹한 현실로 다가왔다.
하지만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이것이야말로 인생이 건네는 새로운 수업임을 깨달았다.
연금은 개인의 짐이자 동시에 사회와의 약속, 미래를 위한 공동의 준비였다. 지금의 부담은 단순한 계산서가 아니라, 더 큰 배움과 성장을 향한 길목이었다.
앞으로 시작될 K-디지털 교육에서 만날 동료들과의 협업을 떠올리며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나이는 걸림돌이 아니라 경험의 자산. 배움의 열정과 팀워크의 시너지가 내 삶을 지탱할 또 하나의 힘이 될 것이라 믿는다.
PS. 당신은 인생이 건넨 ‘예상치 못한 계산서’를 통해 어떤 배움과 용기를 얻으셨나요?
백조 생활 50일차 22.04.14(목)
사모운용전문인력 - 나를 위한 투자, 팀을 향한 준비
시간을 헛되이 흘려보내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인공지능 강의가 시작되기 전 ‘사모운용 전문인력’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회사에 다닐 때는 교육비가 회사 지원으로 자연스럽게 해결되었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내 책임이다. 같은 강의라도 개인 부담으로 다가오니 무게가 달랐다.
순간, 과거의 기억이 겹쳤다. 학생 시절엔 시간이 많아도 돈이 없어 여행을 망설였고, 직장 시절엔 돈은 있어도 시간이 없어 떠나지 못했다.
언제나 결핍을 탓하며 살아왔지만, 결국 모든 것은 나의 선택이었다.
어떤 선택이든 후회는 남는다. 그렇다면 덜 후회할 길을 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지금 나는 빠듯한 상황 속에서도 배움을 선택한다.
이 시간은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니라, 현실의 무게를 견디며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시너지가 되기를 바란다. 후회 없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나는 또 한 걸음 내일을 향해 나아간다.
PS. 당신은 언제 자신에게 투자하는 것이 곧 함께를 위한 준비가 된다고 느끼나요?
백조 생활 54일차 22.04.18(월)
수료 - 내 돈 내고 열공
사모운용전문인력 과정을 수료한 날. ‘진작 들을 것을’이라며 바쁘다는 핑계로 미뤘던 순간들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직장에서는 회사 지원 덕에 당연하게 들었던 교육이었지만, 이제는 20만 원 넘는 비용을 직접 감당해야 했다. 이 출혈은 오히려 더 큰 몰입을 불렀다. 며칠간 도서관에서 9시 출근, 6시 반 퇴근을 반복하며 강의에 매달렸고, 하루를 몽땅 삼켜버린 시험 끝에 수료증을 받아들었을 때 뿌듯함과 함께 사라졌던 자존감이 서서히 되살아났다.
이 과정은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니었다. 냉혹한 현실을 홀로 감당하면서 내면의 근육을 단련하는 시간이었다. 잃었던 자존감은 그렇게, 나를 다시 믿게 만드는 과정 속에서 회복되었다. 그래서일까. 무모해 보일 수도 있는 6월 시험 준비조차 두려움보다는 도전의 기회로 다가왔다.
‘너무 많은 일을 벌이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과 ‘이번에도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이 공존했다.
쉼 없이 달리던 습관은 상황이 달라져도 쉽게 변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 습성이 단순한 아등바등이 아니라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곧 시작될 K-디지털 교육에서는 혼자가 아니다. 홀로 다진 집중력과 회복된 자존감이 팀원들과의 협업 속에서 시너지로 확장될 것이다.
나를 단련한 이 시간이 결국 팀워크의 초석이 되리라는 믿음으로, 나는 오늘도 내일을 향해 나아간다.
PS. 당신은 언제 개인의 성장이 팀의 시너지로 이어졌다고 느끼셨나요?
백조 생활 56일차 22.04.20(수)
당근마켓 첫 등록 – 나를 세상 밖으로
전 회사를 떠난 지 두 달이 되어간다. 오늘은 코스콤 동료들과 IT 외주 최대리와 점심을 함께했다.
반가운 얼굴이었지만, 전해진 소식은 무거웠다. 2~3월 오픈 예정이던 프로젝트가 여전히 표류 중이고, 5월 말에는 그들마저 회사를 떠난다고 했다. 금융 프로젝트에서 일정은 곧 고객과에 신뢰의 문제였다. 혼자 감당하기엔 벅찬 구조였음을 떠올리며, ‘퇴사하길 잘했다’는 안도와 쓸함이 동시에 스쳤다.
이제 나의 하루는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
오늘은 처음으로 당근마켓에 상품을 올렸다. 입지도 않은 옷과 신발, 서랍 속 외장 배터리와 구형 휴대폰까지 꺼내 사진을 찍고 가격을 정했다. ‘과연 누가 이런 걸 살까?’ 하는 의문이 있었지만 막상 등록을 마치니 의외의 성취감이 밀려왔다.
내겐 무용지물이던 물건이 누군가에겐 합리적 선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그 과정을 거치며 깨달았다. 지금의 나는 방구석에 잊힌 물건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버려진 물건이 새 쓰임을 얻듯, 언젠가 나 역시 다시 선택받을 것이다.
오늘도 한 컷, 한 줄에 정성을 담아 세상 밖으로 나를 드러낸다. 그것이 다시 일어서는 나의 방식이다.
PS. 당신은 언제 ‘나를 세상 밖으로 드러내는 용기’를 내셨나요?
백조 생활 58일차 22.04.22(금)
유튜브 - 새로운 용기, 작은 시작
국비 교육 등록 절차를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한 발을 내딛는 듯했다. 한 달 가까이 정체와 도태의 불안 속에 갇혀 있었지만, 이 시간을 채워줄 새로운 도전을 떠올렸다.
무심히 지나쳤던 지하철 스크린도어 속 시문이 불현듯 떠올라, 시낭독과 해설, 그리고 자작시를 소개하는 유튜브를 시작해보기로 한 것이다.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늘 두려웠지만, 주어진 시간이 오히려 용기가 되었다.
첫 낭독은 이방원의 「이런들 어떠하며」와 정몽주의 「이 몸이 죽어죽어」였다. 특히 정몽주의 결의는 다시 일어서려는 내 마음과 겹쳐졌다.
부모님이 눈치챌까 드레스룸에 숨어 핸드폰을 들고 수십 번 녹음을 반복했다. 3분도 채 안 되는 시를 녹음하며 발음과 호흡을 고쳐 나갔다. 처음엔 어색했으나 점차 목소리에 힘이 붙는 걸 느꼈다. “내가 이런 것도 할 줄 아네!”라는 작은 자부심이 피어올랐다.
오늘의 시도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다시 세상과 연결되는 다리였다.
두려움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그 위를 건너는 힘은 내 성실과 목소리에서 비롯된다.
나는 이제, 배움과 시도의 기쁨 속에서 새로운 길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PS. 당신은 언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배움을 시작해 스스로를 놀라게 한 적이 있나요?
백조 생활 60일차 22.04.24(일)
오색실의 의미 – 낯선 경험 속 마음의 안식
우리 집은 친가는 천주교, 외가는 불교다. 종교가 달라도 서로의 신앙을 존중하며 살아왔다.
이날은 엄마의 권유로 강화도 보문사에 함께 갔다. 아침 일찍 도착했는데, 운 좋게도 용왕전 점등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회사를 그만둔 뒤 새로 접하는 경험들이 많아졌다. 예전 같으면 그저 지나쳤을 풍경들이 이제는 더 크게 다가왔다.
점등식이 시작되자 마당은 이내 인파로 가득 찼다. 스님이 오색실을 던지자 사람들은 손을 뻗어 앞다투어 잡았다. 나도 오색실을 손에 쥐었고, 그 의미를 엄마께 물었다. 청색은 법을 구하는 마음, 황색은 변치 않는 의지, 적색은 정진, 백색은 깨끗한 마음, 주황은 꾀임을 이기는 힘이라 했다.
그 순간, 힘든 시절을 함께 버틴 불자 후배가 떠올랐다. 성실했던 그녀에게 복이 닿기를 바라며 오색실을 소중히 챙겼다. 작은 봉투에 오색실을 담으며, 후배에게 그 복이 전해지기를 빌었다.
나 또한 부처님께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도록 인도해 주시길, 또 안정된 삶을 되찾게 해 달라 기도했다.
낯선 의식이었지만 마음은 고요해졌다.
이 순간은 단순한 구경이 아니라, 다시 배움의 길을 열어 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PS. 당신에게도 삶의 전환점에서 마음을 울린 작은 상징이나 경험이 있었나요?
백조 생활 59일차 22.04.23(토)
주말 강의 이클립스 - 배움의 열정, 도전 속의 성장
신논현역 6번 출구, 국비교육 파이썬 과정의 첫날이었다. 오전 9시부터 저녁 5시 40분까지 이어질 수업과 매주 토요일 왕복 세 시간의 통학은 시작부터 큰 부담이었다. 그러나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려는 의지가 나를 이끌었다.
수업은 예상과 달리 쥬피터 노트북이 아닌 이클립스로 진행되었다. 낯선 환경, 빠른 강의 속도, 잦은 오류는 나를 당황하게 했다. 하지만 파이썬이라는 기반은 같으니 결국 도움이 되리라 믿기로 했다.
점심시간, 혼밥을 꺼리던 나는 결국 근처 카페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로 허기를 달랬다.
따스한 햇살 속 활기찬 거리를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내 모습도 저들 눈에 그렇게 보일까?”
오후 수업은 졸음과의 싸움이었다. 믹스커피 한 잔에 의지해 겨우 버티며 강의를 따라갔고, 부족한 영타 실력과 낯선 에디터에 애를 먹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집으로 향하는 길, 몸은 지쳤으나 마음은 단단해졌다.
낯설고 불편했던 하루는 나를 위축시키는 시간이 아니라, 배움의 열정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오늘의 도전은 내 성장을 이끌 디딤돌이 될 것임을 믿는다.
PS. 힘든 여정 속에서도 당신을 계속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백조 생활 61일차 22.04.25(월)
빅데이터 교육 첫날 - 설렘과 긴장 공존.
아시아경제 교육센터 첫 수업 날. 가슴이 두근거렸다.
퇴사 후 불안을 안은 채,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고 싶어 충무로역으로 향했다. 세 번 환승 끝에 7시 30분, 닫힌 학원 앞에 서 있었다. 친절한 직원의 안내를 받아 강의실에 들어서니 텅 빈 자리가 낯설었지만, 질문하기 편한 통로 자리에 앉으며 배움의 설렘을 품었다.
이내 어린 교육생들이 들어섰다. ‘잘 어울릴 수 있을까?’ 두려움이 스쳤지만, 강사님의 열정적인 소개와 네 권의 두꺼운 교재는 그 두려움을 설렘으로 바꾸었다.
점심시간, 혼밥을 망설이던 내게 교육생 한 명이 먼저 다가왔다. 매콤한 쭈꾸미 볶음을 함께 나누며 그녀의 도전 이야기를 들었고, 그 속에서 내 젊은 날이 겹쳐졌다.
우리는 종종 ‘나’를 향해 누군가 먼저 손 내밀어 주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고립된 섬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은, 나이가 많든 적든, 직함이 있든 없든, 내가 먼저 밥 한 끼를 제안하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오후, 파이썬 기초 강의가 시작됐다. 에러가 잇따랐지만, 미리 공부한 덕에 ‘Hello, World!’를 띄웠다. “아직 할 수 있구나!” 뿌듯함이 불안을 덮었다. 제페토 아바타 의상을 설계하듯, 배움도 한 줄씩 쌓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작은 성공이 새로운 열정을 깨운 것이다.
지하철 창에 비친 내 모습은 지쳤지만, 마음은 빛났다. 그날 나는 ‘배움의 첫 빛’을 품었다.
PS. 당신의 첫 배움은 어떤 순간으로 기억되나요?
백조 생활 65일차 22.04.29(금)
중도 포기 - 떠남과 남음, 다시 세우는 다짐
교육과정이 시작된 지 일주일. 강의실에는 작은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워하던 나이 지긋한 교육생은 끝내 가장 먼저 교실을 떠났다. 웹툰 PD가 옆에서 정성껏 도왔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그의 뒷모습에서 도전의 열망과 동시에 포기의 쓰라림이 전해졌다.
그리고 오늘, 내게 큰 힘이 되어주던 웹툰 PD 김재미마저 그만둬야 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점심 식사를 함께하며 꿈을 나누었던 순간이 선명히 떠올랐다.
붙잡고 싶었지만 각자 삶의 길에는 고유한 무게가 있음을 알기에, 응원의 말만 남길 수 있었다.
짧았지만 깊은 인연이었다.
남은 자리에서 홀로 앉아 스스로를 묻는다. “나는 과연 이 과정을 끝까지 버틸 수 있을까?” 한 사람씩 떠날 때마다 마음은 흔들리지만, 그럴수록 ‘포기하지 말자’는 다짐이 또렷해진다.
작은 성취라도 이어가며 끝내 결실을 맺기를,
그리고 언젠가 좋은 모습으로 다시 만나기를 조용히 희망한다.
PS. 당신은 배움의 길에서 어떤 이별을 겪었나요?
백조 생활 66일차 22.04.30(토)
아픈 투자 - 뼈아픈 교훈, 다짐이 되다
토요일 아침, 신논현으로 향했다. 평일에는 충무로, 주말에는 신논현. 배움의 길은 고되었지만, 오전 파이썬 수업만 듣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퇴사 후 은퇴 준비를 위해 투자했던 부동산 총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를 대동한 채 총회장에 들어서자, 수십 명의 고성과 불만이 뒤엉켰다. 수익률이 좋을 때 정리하지 못한 나의 선택이 떠올라 가슴이 무거워졌다. 매달 빠져나가는 원금과 이자는 후회와 한숨을 키웠고, 옆에 앉은 엄마를 바라보며 죄송함이 더 깊어졌다. 다 큰 딸의 잘못된 선택에까지 발걸음을 보태셔야 했으니.
그러나 그 자리에서 배운 것이 있었다.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양보와 협력이 없다면 해답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결국 믿음을 담아 한 표를 던지고 자리를 나왔다.
책상에서가 아닌, 발품을 팔아 얻는 현실의 배움이야말로 진짜 내 힘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결심했다. 후회는 짐이 아니라 다짐의 거름이 될 수 있다.
아직 배울 수 있는 지금이 기회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 삶의 새로운 줄을 한 칸씩 채워가리라.
PS. 당신은 어떤 후회 속에서 다짐을 세웠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