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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리한 Oct 19. 2024

일반 학교에 간 둘째 놈!

운동회 꼭 내가 참여해야 했...구나!

둘째 놈은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유치원부터 시작해서 어느새 벌써 2학년이 됐다. 세월이 빠르다고 느끼는 건 내 나이 먹는 것보다 내 아이들이 컸다는 것에서 실감하게 된다.

2년 전엔 유치원 학부모로서 운동회에 참여했다. 한두 종목만 참여하는 유치원 아이들에게 운동회라는 건 생소했을 듯하고 학교에 간 첫 운동회라서 당연히 참석했어야 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는 30년도 전 운동회라는 추억 속에 들어가고 싶어서였다.


나 때는 말이다...각 학년마다 11반 정도 있었고 각 반별 학생은 40명은 넘어갔다. 운동회를 하면 보통 천명을 넘겼고 주변에서 제일 넓다는 우리 학교 운동장도 꽉꽉 채워졌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부모님들이 도시락을 싸들고 와서 돗자리 펴고 잔치 수준으로 시끌벅적했다. 당연히 솜사탕, 엿 그리고 기타 등등을 교외에서 판매하는 분들에게 열심히 사 먹기도 했다.


그런 추억들을 상상하며 둘째 놈의 유치원 때 참석한 운동회에선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하며 내 운동회의 추억이 모조리 사라졌다. 각 학년별 2~3개 학급 정도이며 한 반에 많으면 20명 정도의 아이들이 있었다. 기껏 200명 남짓으로 운동장이 이렇게 휑해 보이는 낯선 운동회에 아쉬움이 적잖았다. 인구가 감소한다지만 눈으로 본 채감은 그야말로 충격적 이였다.


학교는 연마다 행사가 다르다. 1년은 운동회, 1년은 예술제를 해서 작년엔 예술제에 참여한 둘째 놈이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데 아주 오바 육바 칠바....세상 저런 가식이 추가된 둘째 놈이 너무 낯설었다. 


올해엔 운동회를 한다고 아내한테 문자가 왔다. 통지문을 보면서 유치원에서 2학년이 된 둘째 놈의 운동회엔 부모참여가 추가됐다. 하지만 2년 전 규모가 작디작은 운동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 같아 이번엔 내가 참여하는 게 맞을까 고민하게 됐다. 심지어 오전에 행사가 끝나고 점심도 학교에서 제공하고 부모들은 돌아가는 형태이다 보니 더욱더 내가 굳이 참여할 필요가 있을까 하며 귀찮은 마음만 더 커졌다.


"아빠! 나 운동회 하는데 아빠 올 거지?"

"으...으응..가야지 뭐!"


뜨드미지근한 대답이지만 둘째 놈은 아직 감정을 읽기보단 아빠의 참여가 더 중요했다. 아내를 보내고 싶었지만 이제 출근한 지 10개월이고 운동과는 거리가 좀 먼 사람이라 내가 가는 게 맞긴 하지만 가고자 하는 마음이 내키진 않았다.

운동회 날짜는 언제이며 무슨 옷을 입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는 둘째 놈에게 그래서 운동회 몇 시에 시작하냐고 물어봤더니 중요한 시작시간조차 모르고 그냥 들떠있었다.


운동회 시작은 9시부터인데 부모는 몇 시까지 가야 하냐고 물어보니 자기는 8시 40분에 가니까 아빠는 알아서 시간 맞춰 오라고 한다. 무슨 시간을 맞춰서 어떻게 가냐고 물어보니 모른다고 아주 당당하게 대답하는 저 둘째 놈이 답답했다. 물론 정보는 다 알고 있지만 둘째 놈에게 한번 확인받아보려 했던 내 잘못이지 뭐!


운동회 날, 자기 주도적인 삶의 시작이 됐다. 스스로 일어나 잔소리할 필요 없을 정도로 빠르게 밥 먹고 씻고 옷까지 알아서 척척 입었다. 되려 내가 해야 할 잔소리를 지가하고 있었다.

'어휴... 너 누구 닮아 이렇게 잔소리가 많.... 아! 나 닮았구나.'

내가 저렇게 잔소리했던 걸 잠시 반성했지만 1년 중 딱 한번 자기가 빨리 준비했다고 잔소리하는 저 아이의 신남에 그냥 묵묵히 아빠가 잘못했다며 서둘러 준비했다.


먼저 학교로 출발한 둘째 놈, 그리고 9시까지 가야 하는 난 매우 천천히 준비하고 즐길 여유 다 즐기고 9시 10분에 도착했다. 평소 약속을 잘 지키는 편이지만 가기 싫은, 아니 별로 가야 할 이유가 없으니 지각을 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도착해 보니 역시 2년 전과 같은 규모였고 구령대 쪽으로 자리를 이동해 둘째 놈을 찾아봤다. 

여기저기 고개를 돌리며 누군가를 찾고 있는 아이를 보며 펄쩍 뛰어 손 흔들었더니 그새 웃으면서 앞에서 하라는 체조 안 하고 손 흔드는 둘째 놈을 보니 뭐가 저리 좋다고 웃을까. 그저 오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끌려온 나인데 아이는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그냥 아빠가 왔다는 것에 신나 할 뿐!

사물놀이가 시작됐고 예술 중학교에서 정말 완성도 높은 사물놀이를 했다. 중학생인데 전혀 중학생 답지 않은 몸놀림에 감탄사만 연신 나왔다.

운동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둘째 놈의 학년이 시작할 때마다 아이는 꼭 나를 보고 손 흔들었다. 운동회가 끝날 때까지 계속 나올 때마다 나를 보며 손 흔드는 아이를 보며 몇 번 흔들다 말겠지 했는데 정말 끝까지 나올 때마다 흔들었다. 왜 저렇게 계속 아는 척할까 하다가 기억이 고스란히 30년 전 내 초등, 아니 국민학교 시절로 돌아갔다.


우리 땐 스마트폰이 없었으니 그날의 날씨는 신문을 보거나 부모님이 비가 온다 안 온다 하며 우산을 준비해 줬다.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거의 실시간 급 날씨를 확인할 수 있으니 까먹지 않는 한 우산을 잘 챙겨줬다.

하지만 그땐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에 대처할 정보가 부족해서 마른하늘에 소나기가 올 때도 많았고 그럼 건물 1층 실내화를 갈아 신는 곳에는 우산을 들고 기다리는 부모님들을 보며 아이가 뛰어가며 엄마! 를 외치면 우산을 펼치며 웃으면서 맞이하는 엄마들이 꽤 많았다.

아쉽게도 엄마가 오지 않는 아이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있었겠지만 엄마가 온 아이들은 행복하게 집에 돌아갔고 나도 다행히 어머니가 와서 우산을 쓰며 갔었다.

학교에 부모가 나쁜 일이 아닌 이상 오는 건 반가웠다. 물론 우리 어머니는 딱 한번 내가 큰 잘못을 해서 불려 온 적은 있지만 그걸 제외하곤 비 와서 우산이 필요하거나 운동회 때는 빠지지 않고 오셨다.


어머니가 싸 준 김밥 먹고 그 옆에서 음료수 먹으면서 운동회에 참여하다가도 부모님이 어딨는지 살펴봤던 내 모습이 고스란히 둘째 놈을 통해 생각났다.

그땐 나도 부모님 어디에 있는지 찾았다. 달리기에서 1등 하면 부모님에게 자랑하며 다시 운동회에 참여했다. 그게 지금 생각해 보니 인정받고 싶은, 아니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언제 어디서나 든든한 지원자인 부모가 보는 앞에서 뭐든 잘하고 싶었기에 상시 부모님 계신 곳을 바라봤었다.


'아! 둘째 놈도 그냥 내가 행복해하는 걸 좋아하는 거였구나. 그냥 부모님 오는 것 자체가 좋은 것이구나!'


운동회가 끝나고 아이들은 다시 교실로 올라가야 하는 시간에 둘째 놈에게 갔다.

"재밌었어?"

한마디를 건네며 머리에 손을 올렸는데 얼마나 춤을 열심히 췄는지 땀에 아주 흠뻑 젖었다. 순간 이걸 또 언제 목욕시키냐 라는 이성적인 마음이 잠시 왔지만 매우 행복해하며 신나보이는 아이의 얼굴에 그냥 오늘 하루도 즐겁게 보내고 오라고 하며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잠시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칭찬을 번갈아가며 했다.

귀찮아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 그래도 그 모습을 보며 행복해하는 아이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운동회에 참여한 나 자신에 대한 칭찬!


그래! 비록 한 건 없지만 운동회 가길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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