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에 반하다

"제가 지켜드릴게요. 혼란스럽지 않게. 무섭지 않게."

by 한성

이 대사는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에게 하는 말이다. 심지어 한국 드라마에서! 사실 처음으로 매거진을 시작한 후, 두 번째로는 한국 드라마의 인물을 소개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봐도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엘리멘트리>의 조안 왓슨만큼 남자 주인공과 비슷한 비중, 역할을 하는 경우 혹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경우는 찾기 어려웠다. 많은 고민 끝에 고른 인물은 <순정에 반하다>의 김순정(김소연)이다.

<순정에 반하다>의 김순정. (출처: https://mnews.joins.com/article/17468062#home)

<순정에 반하다>는 냉혈했던 사업가 강민호(정경호)가 심장을 이식받은 이후 감성적이고 뜨거운 순정남으로 변하게 되면서 겪는 이야기다. 여기서 김순정은 강민호가 복수하고자 하는 강현철 회장의 비서다. 강현철 회장은 강민호의 숙부로, 강민호의 아버지가 세운 회사 헤르미아를 빼앗아 강민호의 가족을 망가뜨린 인물이다. 김순정의 아버지가 강민호의 아버지를 배신한 탓에 강민호는 헤르미아를 망하게 만들기 위해 헤르미아로 들어온 후 김순정을 비서로 선택한다. 그러다 심장을 이식받고 여러 일을 겪으면서, 복수를 위해 오로지 이익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인생이 허무하다는 것을 깨닫고 헤르미아를 다시 살리고자 한다.

김순정은 이런 강민호의 복수-변화를 모두 지켜보면서 그의 옆에서 비서로서의 업무를 해낸다. 자신의 아버지가 저지른 과오를 피하지 않고 강민호의 비서가 되어 그의 온갖 행패(...)를 감당해내지만, 동시에 헤르미아의 직원으로 회사를 위한 선택을 하기도 한다.

http://tv.jtbc.joins.com/clip/pr10010349/pm10029727/vo10069053/view

또한 심장을 이식받은 뒤 마음과 머리가 생각하는 것이 달라져 혼란스러워하는 강민호에게 자신이 지켜주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정말로(!) 그를 지킨다. 강민호가 위기를 맞았을 때, 회장의 비서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리더의 입장에서 회사의 상황을 바라보며 위기를 극복할 방법을 생각해낸다.

제가 지켜드릴게요.
혼란스럽지 않게. 무섭지 않게.
제가 도와드리고 지켜드리겠습니다. 진심입니다.

https://tv.naver.com/v/373134

위 대사가 적힌 장면은 클립으로 남아 있지 않아, 강민호가 헤르미아를 지키겠다고 결정한 후 김순정이 그를 지키겠다고 다시 말하는 영상을 붙인다. (출처 : 네이버 TV)

물론 보조적인 역할에서 그친 것은 아쉽다. 드라마의 전개가 강민호를 중심으로 진행된다는 것, 그리고 교통사고로 죽은, 김순정의 애인과 관련된 사건이 강민호와 이준희(윤현민)의 갈등 요소로 쓰이는 동안 김순정은 사건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 또한 그의 직업이 주인공을 보조하는 비서라는 것도 아쉬운 부분 중 하나다.

그러나 김순정은 이런 한계점에도 그저 끌려다니는 삶을 살지 않는다. 비서라는 직업에 대한 프라이드, 그리고 직업윤리에 따라 행동한다. 자신이 곤경에 처할지라도 말이다. 오랜 기간 헤르미아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는 모습은 여자 주인공이 위기상황에서 무기력하게 해결해주기를 기다리는 다른 드라마들과는 다르다.

심장이식 후 성격이 바뀌는 설정과 아버지의 회사를 빼앗아간 삼촌에 대한 복수라는 내용은 <순정에 반하다>를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약간은, 거부감을 들게 만든다. 너무나 익숙하고 뻔하므로. 그러나 <순정에 반하다>의 마니아층이 두터웠던 것에는 뻔한 설정에도 신선한 전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여자 주인공 김순정이 펼쳐나가는 이야기가 한몫을 했다. 비서이면서 복수의 대상이지만 누군가에게 끌려가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김순정은 이전까지 한국 드라마에서 쉬이 볼 수 없었던 모습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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