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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한상 Jun 11. 2022

기초의원, 차라리 추첨으로 뽑아?!

엉뚱한 또는 신박한 상상 

2022년 1학기는 수요일 수업이 유탄을 맞았다. 예전과 달리 대학의 학사관리는 철저해졌다. 15주 수업 중 한 주라도 어영부영 빼먹었다가는 사달이 나기 쉽다. 그런데 이번 학기 수요일에는 대선과 지방선거가 있었다. 두 번이나 빠진 수업을 보충하느라, 가뜩이나 정신없는 학기말이 더 분주해졌다.


어차피 정해진 몫의 일을 하는 것이니 불평 거리는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소중한(?) 수요일을 반납할 만큼 나의 선거는 의미 있었나를 생각해 보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으로서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최고의 권리이자 마땅한 의무라고 배우지 않았던가. 나 같은 사람조차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피와 땀을 흘리신 동서양의 선조들을 생각하면, 선거의 가치와 의미에 대한 회의는 그 자체로 불경한 생각 아닐까.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는 선을 넘은 느낌이다. 대통령 선거라는 높다란 산을 넘어 깊이 파인 골짜기 같은 분위기의 선거이기는 했지만, 관심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도지사와 시장 선거야 누가 나오는지, 공약이 어떤지 살피기는 했지만, 지방의원 선거는 광역, 기초 불문하고 관심이 너무 없었다. 한 선거구에서 2명 이상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로 치러져서 더 혼란한 기초의원 선거에서는 우리 선거구에서 몇 명을 선출하는지도 알아보지 않고 투표를 했다. 나만의 부끄러운 고백일지 모르겠지만, 공감하는 사람도 (비록 소수이겠지만) 더러 있을 것이다. 


"시장, 도지사 말고는 누가 누군지 하나도 모르겠다"


이럴 거면 기초의원 정도는 선거가 아닌 추첨으로 뽑는 것이 어떨까 하는 엉뚱한(또는 신박한) 생각이 들었다.  버나드 마넹이 1997년에 쓴 "선거란 민주적인가-대의 정부의 원칙들"에 추첨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하게 나온다. 이 책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는 추첨을 괴상한 관습 정도로 여기고 있지만, 민주주의의 원조인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추첨이 효과적인 공직자 선발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이 시절 추첨에는 나름 합리적 보완 장치가 있었다. 먼저 추첨으로 뽑힌 대표의 임기는 1년이었으며, 동일한 직책에 반복해서 임명될 수 없었다. 임기가 끝난 다음은 물론이고 임기 중에도 결산 보고서를 제출하거나 불신임 투표의 대상이 되는 등 엄격한 책임을 져야 했다. 무거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공직자가 될만한 능력과 자질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만이 추첨함에 자기 이름을 집어넣었다. 터무니없는 사람이 공직자가 될 위험을 '자기 검열'이라는 장치를 통해 제어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아테네 사람들은 민주주의라면 선거가 아닌 추첨이 핵심 제도여야 한다는 신념 같은 것이 있었다고 한다. 선거는 일반 시민보다 탁월한 사람을 선출하게 마련이고, 이런 소수의 사람들이 반복해서 선출되며, 심지어 대를 이어 선출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그래서 선거는 과두정치나 귀족정치에 어울리거나 그러한 정치체제를 만들어내는 효과를 갖는다고 생각했다. 민주주의라면 (오늘날과 같이) 대표자를 뽑는 데에 있어서 투표권의 평등만으로 부족하며, 원하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대표자가 될 수 있는 '기회의 평등'까지도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모든 공직자가 추첨으로 뽑히지는 않았다. 장군이나 회계 담당관과 같이 전문성이 필요한 관직의 경우 선거를 통해 뽑았다. 이들에게는 연임 제한도 없었다. 역시 예상대로 이들은 반복해서 여러 해 동안 같은 관직을 독점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그러나 이 정도 영역에서는 선거가 불가피한 것으로 보았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와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은 매우 다르다. 나랏일은 훨씬 더 복잡하고 예민해졌으며, 사람들은 아테네 시민만큼 여유가 넘치지도 않고, 균질하지도 않다. 얼토당토 한 사람이 선출되어 분탕질을 치게 될 경우 발생할 위험은 그때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크지 않은 권한을 행사하는 기초의원 정도는 누가 뽑히는지 관심도 없는 선거보다는 추첨으로 선발하고, 엄격한 책임을 전제로 딱 1년 정도만 맡기는 것은 제법 솔깃한 아이디어 아닌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시민의 탁월함은 잘 다스리고 잘 복종함으로 나타난다."라고 했다. 요즘 식으로 이야기하면 리더십과 팔로우십은 함께 성장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훌륭한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리더십을 훈련할 기회를 얻어야 한다는 말이다. 기초의회 정도는 평범한 시민들이 리더십을 경험하고 공적 책임을 훈련할 기회로 남겨두는 것이 어떨까? 그렇게 된다면 민주주의는 뿌리부터 단단해지고 건강해질 희망이 약간은 커지지 않을까?


추첨제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기에 많은 난관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추첨에 대한 사람들의 심리적 거부감은 상당한 것 같았다. 그러나 4년 후에도, 10년 후에도 정치현실이 과거와 같고 또 지금과 같다면, 지방선거일은 점점 더 부질 없고 의미 없는 수요일로 전락해 갈 것이다. 


어쩌면 민주주의의 운명은 시민들의 상상력에 맡겨져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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