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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언 Jan 04. 2024

고시원 라이프 : 그래도 사람 사는 곳 01

식샤를 합시다 : 음식, 식사, 요리.

 지금은 고시원을 나와 다른 곳에서 생활하고 있으나, 이 공간에서 쌓은 기억을 잊기 전에 기록하고자 나를 돌아봅니다. 


 독자님. "고시원"이라는 단어를 눈으로 읽거나 귀로 들었을 때에 어떤 느낌을 받으시나요? 연상되는 풍경이 있으신가요? 이 단어에 어떤 추억이 깃들어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나는 그 작은 방에서 느꼈던 고독감과 함께했던 작지만 확실한 자유로움이 떠오릅니다. 그 속에서 나름대로의 행복도 발견했었죠. 그 환경이 나에게 남긴 건 어쩌면 그렇게 쾌적하지 않은 여건에서도 삶은 무궁무진하게 피어날 수 있다는 깨달음 한 조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재의 편안한 생활과는 다르게 당시의 고시원 생활은 간소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마치 나만의 작은 성장의 여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서울로 학교를 다니며 2년가량 고시원에서 살았습니다. 당시 나는 잠이 없고, 돈이 없고, 여유가 없었습니다. 월세 40만 원의 고시원이었습니다. 침대 하나, 책상 하나, 옷장 하나, 수납장 하나, 미니 냉장고 하나, 팔 한쪽 쭉 뻗을 수 없는 작은 화장실 하나. 창문은 복도 쪽으로 난 작은 창이 전부입니다. 불을 끄면 한낮에도 깜깜한 어둠만이 자리합니다. 건물 벽 안쪽의 배관 파이프에서 나는 물소리가 무척 잘 들리는 방이었습니다. 






 고시원에 기거하며 끼니는 늘 1분 거리의 편의점에서 7000원 이하로만 금액대를 맞추어 먹거나, 배달 음식을 시켜 이틀에서 사흘을 먹었습니다. 


 나는 본디 요리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고시원의 공용 주방은 무척 협소했습니다. 통로는 한 명의 사람만이 지나갈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는 화구는 단 하나뿐입니다. 점심이나 저녁 시간이 되면 같은 층의 사람들이 각자 식사를 하기 위해 그 협소한 주방에 셋넷이 몰리는 적도 빈번했죠. 변명도 덧붙이자면 고시원 방에 딸린 미니 냉장고도 곧잘 제기능을 하지 못하고 온도가 오르고, 식자재를 보관하기에도 너무 작은 크기였습니다. 


 그럼에도 요리를 해보겠다고, 야심 차게 향신료 몇 가지와 개인 냄비 몇 개를 본가에서 가져옵니다. 하루이틀뿐이었습니다. 요리를 할 때마다 그 모든 향신료 통과 식재로, 냄비를 들고 주방까지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일이었습니다. 완성된 요리를 예쁘게 접시에 담아내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식사가 끝난 시간에 주방에는 자기 몫의 설거지를 하고자 기다리는 사람 한 둘이 있으니, 가급적 프라이팬 하나로 만들 수 있는 요리를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취미였던 요리를 마음껏 할 수 없게 되고, 고시원의 비좁은 방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이전의 생활에 비해 많지 않았습니다. 자연스럽게 침대 위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침상 테이블을 하나 두고 아이패드로 유튜브를 보거나 책을 읽고, 공부를 했습니다. 식사도 침대 위에서 했습니다. 처음에는 이리저리 그 좁은 공간에서 참 많이도 자리를 바꿔보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고시원 생활을 하며 느낀 가장 큰 불편함 하나는 어떻게 해도 해결할 수 없더군요. 


 환기가 되지 않았습니다. 팔뚝만 한 크기의 복도창 하나가 전부인 방이었습니다. 


 방 안에 화장실이 있다는 건 장점이었으나, 환기가 되지 않는 방에서 그건 나름의 단점이 되었습니다. 샤워 후 습기가 차거나 음식을 먹고 냄새가 풍기면 저는 방문을 활짝 열고 미니 선풍기를 틀어둡니다. 복도에 어딘가의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조용하게 문을 닫았다가, 인기척이 사라지면 다시 문을 열어둡니다. 


 고시원 생활이 길어질수록 일련의 행위들이 귀찮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좁은 주방에서 고시원 주민들과 스쳐 지나며 인사하거나 안부를 주고받는 일은 즐거웠으나,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예전처럼 만들어낼 수 없어 아쉬운 마음도 컸습니다. 나는 학교와 아르바이트, 외주를 병행하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에 체력적으로 지친 상태여서, 직접 음식을 요리해 먹는 것을 거의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결국 매 끼니를 편의점에서 때우는 습관이 들어버렸습니다. 편의점 음식은 싸고, 조리 시간이 짧고, 먹은 후에는 설거지를 할 필요도 없이 분리수거하여 바로 점포 내 쓰레기통에 버리면 되니 얼마나 편했는지 모릅니다. 그 시기에 내가 살이 빠졌었는지 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고시원에는 체중계가 없으니 알 턱이 없었죠. 당시는 체감상 살이 빠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애초에 먹는 양이 많은 편도 아니었거니와, 식사를 제때 챙기지 않거나 아예 거르거나, 잠들기 직전에서야 뭐라도 챙겨 먹고 곧바로 잠드는 날이 빈번했기 때문입니다.


 식습관이 바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화불량에 역류성 식도염을 달고 살게 되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속이 쓰리고, 음식을 먹으면 소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이건 내 고시원 환경보다는 당시 생활 패턴의 불균형이 더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이었습니다. 


 일부러 밥을 거르고자 한 적은 없었습니다. 이쯤에서 제 하루 일과를 정리해 봅니다. 원체 아침식사는 먹지 않고 거르는 편이라 오전에 실기 수업이 없는 날은 빈 속으로, 실기 수업이 있는 날에는 작은 팩에 든 죽을 식사 대용으로 조금 섭취합니다. 점심에는 학교 사람들과 함께 근처 음식점에 가거나 편의점에서 간단히 식사를 합니다. 오후 수업이 끝나면 바삐 아르바이트 출근을 하러 갑니다.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빵이나 구운 계란 같은 것을 사둡니다. 일을 하다가 배가 고파지면 잠깐의 휴게시간 동안 오면서 산 주전부리로 허한 속을 달랩니다. 그리고 퇴근입니다. 퇴근길에 편의점에 들러 식사를 하고 고시원으로 들어갑니다. 그럼 음식 냄새가 나지 않는 침대에서 쾌적하게 여가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외주 일이 들어와 현장에 나가야 하는 날에는 가방 속에 그런 주전부리를 넣어두었다가도 일에 집중하느라 입맛이 떨어져 손도 대지 않고 집으로 가져옵니다. 나쁜 습관이라면 나쁜 습관입니다. 


 그런데 당시 저에게 생겼던 제일 나쁜 습관은 따로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이 것을 말하기에는 너무 부끄럽고 면이 서지 않는 일이지만 솔직하게 이어서 적어보겠습니다.


 너무 고되고 지친 날, 번아웃을 닮은 무기력증에 시달리며 배달 음식을 시킵니다. 돈을 아껴야 하는 상황에서 비싼 배달 음식을 시키는 일에 마음의 가책을 느꼈으나 내 컨디션 난조를 변명으로 들이밀며 음식을 먹었습니다. 음식은 맛이 없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감흥이 일지 않았습니다. 옛날의 나는 음식의 조리과정과 정성에서 스스로 재미를 찾고 즐거움을 느끼는 타입이었는데, 터치 몇 번에 문 앞까지 배달되는 음식에서는 그만한 정성과 맛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머리로는 자연스레 음식의 코스트를 계산하고, 비싼 서울 물가에 한숨을 내쉽니다. 돈 값을 못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다 보니 내 안에서 음식이 갖는 가치를 차츰 떨어트리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한 즐거움에서 취미로, 취미에서 필수 행위로, 필수 행위에서 그저 행위로... 내 안에서 음식이 갖는 가치가 낮아진다는 것은, 내가 그것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는 것과 같은 말이지요. 


 배달음식을 시키면 사흘은 먹는다고, 위에서 한번 얘기했습니다. 먹다 남은 음식을 작은 냉장고에 넣으려면 작은 통에 그것을 소분해야 하고 일회용기는 씻어서 버려야 합니다. 몸을 움직일 기운이 조금도 없어 배달음식을 시켜 먹은 사람에게는 마찬가지로 귀찮고 힘든 일입니다. 냉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는 방. 까짓 거 상온 보관해서 먹어버리자.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음식이 상하기 직전까지는 그렇게 식사를 때웠습니다. 


 바로 조리가 되어 배달온 음식의 상태는 여러분이 아는 그것과 같습니다. 따뜻하고, 신선합니다. 식재료가 냉동인 경우는 신선하다 말할 수 없지만, 이 상황에서 얘기하는 신선함이란 이런 것입니다. 산화하지 않고, 부패되지 않은 것. 젓가락에 잡혀 들어 올리기도 전에 끊어지는 불어 터진 면이 아닌, 밀도 있는 면. 


 나는 상한 냄새가 나기 직전까지의 음식의 상태를 보았고, 알았고, 먹었습니다. 먹어서 탈이 나지 않고 허기를 채울 수 있다면 괜찮았으니까요. 이 단락이 불쾌하게 느껴지셨다면 죄송합니다. 이 일이 일어난 기간에 내 정신 상태가 크게 병들어있었다는 점을 덧붙이며 독자님의 너른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뒤돌아 생각해 보니 나 스스로 경악할 일이었습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먹고살기 위해서 돈을 번다'는 주의였거든요. 당시의 내가 돈을 못 벌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이건 내 인생의 신념과 크게 충돌하는 일이었습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상온에 보관한 먹다 남은 배달음식의 일회용기 뚜껑을 열었을 때, 상한 냄새와 곰팡이 핀 음식물을 보며 깨달았습니다. 이건 음식물 쓰레기다. 반나절 전에 내가 먹은 음식이 지금은 음식물 쓰레기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렇게 큰 충격을 받고서 이제는 애초에 배달음식을 줄여야겠다 마음먹게 됩니다. 귀찮아서, 손 하나 까딱할 기운도 없어서, 좋은 것을 먹으러 다닐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공부하고 연습하고 일하고 싶어서 이어왔던 내 선택이었습니다. 그 선택은 나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지 못했습니다. 전혀요. 나는 이제부터라도 나에게 매 끼니 더 좋은 것을 대접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깨닫는 것과 별개로 이미 한번 든 습관은 쉽게 벗어던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노력했습니다. 휴일에는 가급적 직접 요리를 하고, 배달 어플을 지워보기도 하고, 배달 주문 횟수를 주 3회에서 주 1회로 줄이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음식을 먹고 남은 것을 비닐봉지에라도 옮겨 담아 제대로 냉장 보관하고, 이틀이 지나면 버렸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최악에 다다랐다가 겨우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온 듯했습니다. 그리고 마침 그 시기에는 고시원을 떠나 인근의 더 나은 주거환경으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현재의 저는 꼬박꼬박 집밥을 해 먹고, 주말이면 일주일치 반찬을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두고, 배달음식은 한 달에 한번 시켜 먹고 있습니다. 집에서는 못하는 음식이 먹고 싶을 때에는 가급적 외식을 하거나 포장을 해오려는 편입니다. 1인가구치고는 선반에 향신료와 식재료도 넘쳐납니다. 이제야 원래의 제 취미생활을 찾은 듯합니다. 환경과 마음이 안정되니 다시 요리가 즐거워졌습니다. 물론 이사 직후부터 이런 생활을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이사를 오고 나서도 한동안 배달 음식이나 편의점 음식으로 식사를 했습니다. 문제는 환경만이 아니었던 걸까요? 나는 깊게 고민했습니다. 나에게 음식이란 뭘까. 오늘날의 초가공식품들이 현대인의 입맛과 뇌를 망가트린다는 의사나 과학자들이 말이 떠오릅니다. 음식을 통해 일시적인 도파민 분비 상태가 되어, 필요에 의한 섭취가 아닌 섭취를 위한 섭취를 하는 음식 중독의 경우도 떠올려봅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내가 음식을 좋아해 오고 맛있는 음식을 찾았던 이유는 그것들이 아닙니다.


 내가 음식을 좋아하는 이유는, 음식에는 그릇마다 정성이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접시 하나에 들어간 정성.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며 메뉴를 정하면 장을 봅니다. 어느 것이 더 신선한 재료인지 고민하며 더 좋은 것을 고릅니다. 식재료를 손질합니다. 손질한 재료의 모양이나 형태에 따라 요리에 쓰이는 용도가 다릅니다. 순서에 맞춰 가열할 때에도 불 세기를 조절하고 타지 않게 뒤적이는 걸 잊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완성된 한 그릇입니다. 1인가구이니 음식을 먹는 사람은 당연히 나 한 사람입니다. 요리하는 시간은 오로지 나 한 사람을 위한 시간입니다. 들어간 정성도, 오로지 나를 위한 정성이지요. 새삼스럽게 마음이 울렁였습니다. 고시원에서 생활하며, 바쁘다고 끼니를 대충 때우다 보니 이러한 사실도 잊은 채 살고 있었던 겁니다.


 음식. 그건 영양소죠. 신체 활동에 필요한 영양소를 구강으로 섭취하는 것이 식사라는 행위이고요. 그러나 음식에 대한 가치나 생각은 사람마다 제각각입니다. 제가 음식에 두었던 가치가 변했던 것처럼요. 오늘 이 글을 읽으신 독자님에게 질문 하나 드려도 될까요? 


 독자님에게 있어 '음식'이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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