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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피 지망생 Aug 17. 2022

우리는 같은 곳을 봤지만 다른 것을 봤다

숨은 제주를 발견하는 재주 1-2.



우연히 딸의 그림 일기장을 봤다.

[ 강정해안도로에서 도시락을 꺼내 먹고 노을을 보러 갔다. 나는 (일부러) 눈을 감고 걸었다. 다 왔다고 동생이 말해서 눈을 떴는데, 노을의 굵고 붉은 빛이 화살로 변해  가슴을 뚫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 노을을 보고 있었다. 집에 갈 때 계속 노을이 생각났다. 오늘 강정해안도로에서 본 노을은 최고였다 ]                      Writen by 단비



딸의 일기를 읽으며 잠시 감상에 젖었다가 의아한 점을 발견했다. 단비의 그림은 일몰보다는 일출에 가까워 보였다. (나의 비판적 사고력은 딸의 그림 앞에서도 낄끼빠빠를 할 줄 모른다) 이상하다? 우린 그날 분명 일몰을 봤는데... 단비가 뜨는 해와 지는 해를 구분 못하는 걸까?


아니다. 우리는 같은 곳에서 같은 것을 봤지만 다른 걸 봤.

일몰은,

내게끝이었지만 단비에게는 시작이었다. 서쪽 하늘 저 너머의 세상을 밝히는 '시작'. 

일몰은,

내게는 잠시 후 어둠에 잡아먹힐 빛이었지만, 단비에게는 희미하나마 여전히 세상을 비추는 빛.

2020.4.14


지금 내 곁에 빛이 없다슬퍼하지 말자. 안보인다고 없는 건 아니니까. 아예 빛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니까. 지금 빛을 잃고 어둠 속에 있다면, 내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찾아올 해를 기다리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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