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되지 못한 나날들 - 전염병 시대를 위한 즉흥곡
일렁이는 물결 위에
배 한 척이 떠 있다
인적 없는 후미에 한줄기 쇠사슬이
어두운 해저 무거운 뻘 속에 묻혀
녹슨 닻이 모습을 숨긴 채 의무를 다하고 있다
네가 모습을 보일 때는 네가 쓰이지 않을 때
네가 쓰임을 다 할 때면
아무도 너를 보지 않고 신경도 쓰지 않는다
돛이 펴지고 고동이 울린다
저기 나의 벗이, 나의 사랑이 사라져 간다
뒤돌아 선 채 돌아보지 않고 멀어진다
그때, 우리가 서로의 가슴에 드리운 채 잊어버렸던 녹슨 닻이
삐그덕 거리며 끌려 올라온다
그 사실이 무척이나 두꺼웠다는 것을
그 무게가 이토록 묵직했다는 것을
그때서야 다시 떠올린다
닻 (2020.05.18. 해강 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와 내가 다시 만난 것은.
내가 다시 그곳에 가게 된 것은 몇 개의 개인적인 사건들로 말미암아 연락이 끊긴 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고, 그동안 우린 각자의 공간에서 서로를 인지하지 못한 체 천천히 각자의 일상 속으로 흩어져 버렸다. 18살부터 20살에 이르는 시간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더욱 먼 과거의 일이지만 그와 나의 진정한 시작은 이 시기즈음 이었을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다시 연락이 닿은 것은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서였다. 그도 아닌 그의 누나로부터 연락이 먼저 왔다. 과거의 일이 어느 정도 그 사건의 가치가 무뎌졌을 시점, 그녀와는 페이스북을 통해 가끔 연락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올 수 있느냐는 급한 용무와 함께 그가 암에 걸렸고 경과가 좋지 않다는 말을 전했다. 오랜만에 들은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내가 기억하고 있던 그 목소리였다. 이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코로나로 공연과 공연 취소가 반복되던 타 지역 투어 일정을 마치고 만신창이가 된 체로 지쳐 있을 때였다.
소식을 듣고 무언가에 조바심이 난 나는 답답함을 느꼈다 그렇지만 내일 당장 해야 하는 공연을 앞둔 시점이었다. 그렇게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한 초여름 옥탑방 안에서, 나는 어떤 방식으로 그를 다시 마주 해야 될지 혼란스러웠다. 이제 그는 다른 세상으로 떠나려 하고 있다.
나는 우선 극단에 양해를 구하고서 코로나 바이러스로 밀리고 밀려 쌓인 일정들을 뒤로한 체, 그가 살고 있는 산청으로 향하였다. 2일 동안 6만 원을 지불하고 레이를 빌려 타고 그가 있는 곳으로 넘어갔다. 나의 옥탑방에서 그가 있는 곳까진 120km가 떨어져 있었다.
정확히 6년 만이었으리라. 다시 찾아간 그곳엔 처음 본 엄청난 크기의 2층 목조 건축물이 있었다. 그와 연락이 끊기기 전 주춧돌을 놓고 있던 건물이었다. 당시 2층 건물이라고 이야기해줬던 그 건물의 기둥과 들보는 한 치의 틈도 없이 완벽하게 꿰어져 있었고, 한 사람의 설계로 만들어졌다고 믿기 힘들 만큼 조형적으로 뒤틀림이 전혀 없었다. 그는 뛰어난 손재주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어린날에 보기엔 그가 정말 못하는 일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리고 차를 대고 마당에서 처음 만난 사람은 그의 가족이 아닌 함께 산악 여행을 떠났었던 H였다. 시간이 흐르고 이젠 아이의 아빠가 되어 있었고, 그는 때마침 그의 집에 놀러 와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집 안뜰을 조금 돌아가자 그의 가족들이 있었다. 간만의 만남이었기에 반갑게 다들 나를 맞이해주었다. 아직 그가 낮잠에서 깨지 않았기에 우린 모두 1층에서 부엌의 식당에 앉아 차를 마시며 그동안 밀렸던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그의 병에 대해서 듣게 되었다.
겨울이면 감기에 잘 걸렸던 그는 자신의 몸이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부비동 염으로 의심되는 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갔다가 암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리고 수술을 해 이 암 덩어리들을 제거했다. 하지만 암은 낫지 않았다. 마치 마른 장작에 불이 붙듯 암은 빠른 속도로 전이되기 시작했고, 병원에서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현대 의학이 손댈 수 없는 그의 병은 이제 개인의 영역으로 넘어왔고, 그렇게 그는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자가 치료를 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왔다. 몇 번의 대체 요법 끝에 그는 그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듯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고, 매주 시를 쓰며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2층으로 올라가니 그는 해먹에 누워 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2층은 밖의 무거운 공기와는 다르게 제법 시원했었고, 나무 마루가 정갈하게 깔려 있었다. 그리고 옆으로는 구들방이 두 개 있었다. 그는 나를 보고 반가워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알고 있는 눈빛 그대로지만 체격은 삐쩍 말라 절반이 되어버린 그의 모습을 보자 이제야 나는 그가 어떤 상태이며 어떤 병과 싸우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입 안 가득 종양으로 발음이 좋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양해를 구하고 그와 나와 H는 해가 질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한 사람이 아프다는 것을 빼면 이전과 다를 것이 없는 친구들 간의 유쾌한 대화였다.
그는 그의 죽음과 몸의 변화를 소재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유쾌하게 죽음이라는 사건을 그의 삶에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을 어떻게든 멋지게 장식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랬다 그는 어린 시절 내가 느끼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그는 그 어떤 것에도 굴복할 마음이 없었고, 실제로도 그래 왔고 죽음을 앞에 두고도 그랬다.
해가 지고 저녁을 함께 나누고 나서 그는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눌 체력이 되지 않았다. 우린 그를 쉬게 두고 부엌으로 내려와 차를 마시며 그의 가족들과 함께 다시 지나간 이야기를 나눴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우리가 서로 연락이 닿지 않았던 시기의 서로 간의 미싱링크를 연결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리고 자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갔을 때 어둠 속에서 그가 누워 있는 해먹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최대한 조심히 들어가려고 애썼지만 그는 내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깬 듯했다.
- 왔나?
- 응. 안 잤어?
- 이제 막 자려고 했다
- 잘 자. 내일 보자.
- 응
그리고 나는 조용히 내가 이틀간 묵을 방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만남에서 온 반가움과 즐거움은 침묵 속에서 모두 사라지고, 방 바깥에서 그가 입안을 가득 메운 종양에서 나오는 진물을 그릇에 뱉어내는 소리, 그리고 불편한 신체의 불길함을 날려버리려는 듯한 한 숨소리를 들으며 나는 긴 시간을 잠에 들지 못했다. 물론 그에겐 말을 걸지 못했다. 우리 사이엔 이미 아주 큰 벽이 서있는 듯 했었고, 그는 나를 의식하지 못하는 듯했지만 나는 그를 의식했다. 그리고 어느 세 나는 답답한 무언가가 나를 짓누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내 입안 가득 종양 덩어리가 느껴지는 듯했다. 나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나는 죽어가고 있는 한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깨어나 보니 아침이 되어 있었다.
악몽으로 시달리던 지난밤과는 별개로 기분은 괜찮아졌다. 그리고 평안해 보이는 그가 나를 해먹에서 맞이했다. H는 내가 잠들어있던 새벽 일찍 떠나갔다. 나도 미뤄놨던 일들이 잔뜩 있었기에 오후에 넘어가야 했지만 최대한 그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저녁을 먹고 떠나기로 했다. 우린 사소한 이야기를 나눴고, 시간은 금방 지나가 이제는 내가 가야 할 때가 되었다. 그는 기운을 내서 움직였고 내가 막 짐을 넣은 차 앞으로 다가왔다. 마중을 위해서 나온 것이었다. 이때는 실감 나지 않았다. 그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었던 체력이 남아 있던 귀중한 순간이었다는 것을.
- 갈게
- 그래 건강 잘 챙겨라 혹시 이가 아프다거나 부비동쪽 아프거든 참지 말고 병원 꼭 가고
이 말은 유머였다. 자신을 대상으로 삼고 있는. 나는 그를 안아 주었다. 이전에 느끼던 그의 몸이 아닌 듯했다. 그의 육체는 모든 양분이 빠져나간 야윈 줄기만 간신히 남아있는 나뭇가지처럼 느껴졌다.
-아무래도 내가 먼저 넘어갈 것 같다. 혹시 아나 그쪽에서 훈련하다 보면 네 꿈에 나타날 수 있을 지도.
-그래 그러면 좋겠네…
문득 우리가 산행을 같이 하던 때 빗속에 갇혀 나눴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때 우린 호기롭게 봉화의 청옥산 산행을 갔다가 좁은 텐트 안에서 하루 종일 폭우 속에 갇혀 보냈던 적이 있었다. 비는 다음 날 새벽에야 그쳤다. 그때 그는 이제 불로불사를 연구해 봐야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인간의 수명은 너무나 짧지만 반면 하고 싶은 것이 많다는 것이다. 그의 나이 22살이었고 내 나이 19살이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 불로불사 연구해본다며 왜 벌써 가려고…. 혹시 모르잖아 어느 날 갑자기 나아 버릴지도.
나에 말에 그는 대답 없이 미소를 지었다. 나는 이 미소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그는 이미 마음을 정리했고, 그가 가야 할 새로운 투쟁의 장소가 결정지어진 것이었다. 그는 살기 위해서 투쟁하는 나와는 전혀 다른 영역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제 그는 고귀한 인간으로서 죽음 앞에 서기 위해 투쟁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가 죽는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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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다시 그를 만나러 간 것은 2개월이 지난 9월 무렵이었다. 아직은 여름의 열기가 가시지는 않았지만, 하늘은 청명했고 공기도 여름의 습기를 이제는 머금고 있지 않는 듯했다. 제법 괜찮은 날씨였다. 그는 20일을 훌쩍 넘긴 단식을 이어가고 있었고, 전보다 더 수척해졌으며 머리를 모두 밀고 있었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인사를 하려고 H와 나를 부른 것이다.
나와 H 그리고 그는 이전에 만났을 때처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고, 그는 몇 가지의 유산을 나와 H에게 남기고 싶어 했다. H를 위해서는 요리 레시피를 남겼고, 그가 평생 동안 써온 글들은 나에게 남겼다. 자신의 글을 받아 줄 사람이 나밖에는 없다는 말을 전하며 정신이 온전할 때 메일로 보내겠다고 한다.
- 그런 부담스러운 과제를 나한테 맡긴다고?
- 네가 아니면 내 글을 받을 사람이 누가 있겠나….
- 그래 영광이지.
한때 나는 그의 글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건대 대단한 건 맞았다. 다만 완성되지 못하고 시작은 되었지만 결론지어지지 못한 무수한 이야기들이 그에겐 있었다. 그는 굉장한 상상력의 소유자였지만 그 상상력을 문자로 풀어내는 대에는 상당히 긴 시간이 걸렸기에 죽음을 앞둔 시점엔 짧은 생각들을 풀어 완결 지을 수 있는 시를 주로 썼다. 가족들의 말처럼 이 글을 어떻게든 완결 짓는 과업을 내게 넘긴 것은 아니었다. 다만 한때는 맥이 뛰는 빛나는 육신이 써 내려간 그 글들을, 유산으로써 내가 간직하길 바랬던 것이다.
H가 잠깐 화장실을 간 사이 우리는 2층의 해먹으로 쏟아지는 가을 햇살을 받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힘이 빠져나가고 종양이 침식한 그의 입은 하고 싶은 무수한 말들을 담아내기엔 너무 힘겨웠고,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가 하는 말들을 놓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내게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는 입을 열었다.
-오랫동안 네가 계속 보고 싶었어…. 먼저 갔다고 너무 슬퍼하지 말고…. 잘 살아라.
우린 오랫동안 따스한 햇살을 느꼈다 나는 그의 깡마른 손을 잡아주었다 손에 힘은 없었지만 따뜻한 온기는 있었다.
그렇게 나와 H는 저녁을 먹고 늦은 시간까지 저물어가던 햇살을 맞으며, 그의 가족과 이웃이 손님채로 만든 산막으로 향하였다. 나와 H는 가는 동안 별 말을 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의 심정 또한 나의 심정과 비슷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H는 말했다
- 왜 곁에 있으면 평소와 같이 즐겁고 유쾌한데 벗어나면 착잡한 마음이드는지 모르겠어.
- 형도 그래?
- 응.
H와 나는 이렇게 어딘지 모르게 착잡한 마음으로 숙소로 향하였고, 그곳에 도착했을 무렵엔 해가 저물어 있었다. 우린 숙소에서 지나간 시절과 현재의 삶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무나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 또한 너무나 달라졌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두렵지 않았다. 산행을 하며 쏟아지는 비를 피해 나무 천막을 지어 비를 피하며 밤새 이야기를 나누던 그때처럼 말이다. 삶이 두렵지 않았다. 그에게 다가오는 죽음 이후, 우리의 인생 또한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듯했다. 그렇게 우린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나와 H는 다음날의 일정 때문에 그곳을 떠나야만 했다. 그에게 인사를 하고 가족들과도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각자의 길로 떠나갔다. 다시 혼자 운전대 앞에 앉게 되었을 때, 나는 어제 느꼈던 감정이 다시 올라오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이것이 그와 붙어 있을 때는 잊고 있었던 상실에 대한 두려움인지, 아니면 진짜로 이제는 그를 볼 수 있는게 마지막이라는 감정 때문인지는 알 수 가 없었다. 나는 광주로 넘어오는 길에 지리산 휴게소에 들러 잠시 쉬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을 파랗게 빛나고 있었고, 햇볕은 나무에 가려 옅게 내가 있는 곳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순간 그와 내가 꿈을 꾸던 청년 시절, 어쩌면 어린 시절부터 꿈꿔오던 그 시절의 끊을 수 없던 끈이 이제는 끊어져 버린 기분이 들었다. 이것은 그렇게 긴 시간 떨어져 있었음에도 우리 사이에 이어져 있던 연결고리였다. 나는 이렇게 그와 함께 했던 어린 날들로부터 멀어져 갔고, 그제서야 나는 그를 보낼 준비가 되었다. 이젠 그의 죽음 또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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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내가 살고 있는 도시로 돌아왔을 때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무수한 현장 노동의 연속이었다. 밀려 있던 일들은 모두 한꺼번에 쏟아지듯 우리에게 던져졌고, 취소와 수습을 반복하면서 하나씩 일을 해나가며 그 일들이 마무리 지어갈 무렵이었다. 무대를 철거하고 있던 내게 갑자기 그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를 보고 온 지 보름이 조금 넘었을 무렵이었고, 바쁜 와중에도 마음 한 구석엔 그에 대한 걱정이 자리하고 있던 터였기에 나는 전화를 반갑게 받았다.
그의 목소리는 흥분한 듯 느껴졌으며,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어서 들려주고 싶어 했다. 전화로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그는 아주 오랜만에 꿈을 꾸었다고 한다. 당시에 그는 매우 흥분해 있었고, 나 또한 현장의 정신없음 속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기에 확실치 않은 부분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그의 단식 일지를 보고 확실하게 알게 되었고, 그가 내게 했던 꿈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평소와 같이 그는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다 잠이 들었고 이내 자신이 알 수 없는 바위산에 서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내려다보니 수많은 혼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는 자유롭게 비행을 할 수 있었고, 산 아래로 내려가니 그곳엔 인간의 영혼들만 가득했다. 그리고 골짜기의 한 계곡으로 넘어가자 그곳엔 인간의 혼들이 모인 엄청나게 거대한 로고스 덩어리가 있었다. 그는 그 로고스의 덩어리에 합류했고, 이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었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보니 엄청난 크기의 빛나는 독수리가 있었고, 사람들의 혼은 반쯤은 잠에든 듯 반쯤은 깨어있는 듯 날아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또한 자신의 의지로 독수리의 품으로 향하였다. 그 많은 인간의 혼이 독수리의 발톱에도 못 미칠 만큼 작게 보였다고 한다. 순간 그는 그의 얼굴을 만져 보았다 그리고 너무나도 선명하게 느껴지는 종양이 만져졌다. 그 순간 저 독수리의 품으로 들어가면 통째로 독수리에게 자신이 집어삼켜 지리라는 것을 자각하고, 그는 대열에서 빠져나와 쉬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리고 옆에 휴게소가 있어 들어가 라면을 주문했다. 라면의 냄새는 너무나 사실적이었고, 냄새가 좋았다. 그리고 그는 라면을 한입 넣자 맛이 너무 진하며 종양 때문에 라면을 삼킬 수 없음을 알게 되고, 이것이 독수리가 자신에게 친 간계이며 이대로 있었다면 그 또한 독수리 품에 안긴 로고스 덩어리의 일부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는 깨어났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의 심장은 거의 뛰지 않았고, 호흡 또한 매우 약해져 있었다고 한다. 진짜로 죽을 뻔한 것이다. 그렇게 통화를 하고 또 한 번의 이런 경험 속에서 살아남는다면 이야기해주겠다면서 그와 나는 통화를 마쳤다. 마치 카스타네다의 책과 같은 신비로운 이야기였다. 그러나 이것이 내가 들은 그의 마지막 목소리였다. 마치 죽음에서도 살아날것만 같았던 그렇게 강했던 그는 10월 31일 눈을 감았고, 훗날 그의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눠본 바로는 몇 번의 신비한 경험을 더 했다고 한다. 그때마다 그의 꿈에 등장한 어떤 존재들은 그에게 함께 가자고 유혹을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모두 마다하고 종양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육신에 갇혀있는 현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어떠한 꿈도 꾸지 않게 되었을 때, 그는 죽기 마지막 일주일 동안을 매우 큰 고통 속에서 보냈고 결국 눈을 감았다고 한다.
가족들은 그의 존재가 참 이상하다고 이야기했다. 어떤 것도 가져가지 않고 남기기만 하고 죽었다고 한다. 몇 년에 걸쳐 완성한 집, 그리고 글과 레시피들, 한대의 차와 노트, 몇 컷의 사진들과 책들…. 이것이 그가 남긴 것들이다. 그리고 이것들 중 대다수가 누군가에게 전해주기 위한 확실한 목적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그는 죽음을 앞두고 어떠한 유혹 앞에서도 무릎을 꿇지 않은 체 죽음 그 자체를 사실로써 받아들였다. 어떠한 것에도 굴복하지 않았고, 또 이겨냈다.
그는 조금 독특한 사람이었다. 어쩌면 현대라는 세계가 수용할 수 없는 종류의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엄청난 속도로 책을 읽고 책의 문장이나 인물들의 이름과 줄거리들을 정확하게 기억해냈고, 언제든 그것을 끄집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또한 손재주가 매우 비상하여 무엇이든 쉽게 만들어내고 그것의 만듦새가 전혀 조잡해 보이지가 않았다. 어린 시절 내가 그를 동경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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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세상을 떠나고 한 달 정도 지나서 나는 다시 그의 집을 찾아갔다. 그가 누워있던 2층엔 그가 생전에 쓴 원고들과 읽던 책(월트 휘트먼 시선이었다), 그리고 묘비명 등이 적혀 있는 분향소가 차려져 있었다. 아주 낡은 공책을 들어 그가 써나간 일기들과 메모들을 하나하나 보다가 우연히 그가 나에게 쓴 편지를 보게 된다. 두 페이지에 걸쳐 쓰인 그 편지는 언젠가 내가 볼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듯이 정성스럽게 쓰였고 어떠한 문학적 수사의 꾸밈은 없었다. 그냥 동생에게 남기는 어떤 그리움의 편지인 듯했다. 내용은 나에게 직접 말로 했던 그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이런 문장으로 마무리되어 있었다.
너에게 이제까지 해주지 못했던 앞으로 해주지 못할 수많은 포옹을 보낸다 재미있고 유쾌한 생을 보내고 나 대신 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보고 와라 나는 그냥 조금 아주 조금 먼저 떠날 뿐이다 안녕
이 노트에 쓰인 편지가 언제 쓰인 것인지 나는 모른다. 나를 만나기 위한 준비였을지, 아니면 나로부터 떠나가기 위한 준비였는지는 알 수가 없다. 나는 노트를 덮고 영정 사진 속에서 빛나게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미리부터 많은 것을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그는 나에게 이메일로 110mb짜리 미완성의 원고 뭉치들을 남기고 떠나갔다. 나는 아직도 이 글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그의 소중한 유산을 이어받은 사람이라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삶의 천재이자 이 세상 그 누구와도 닮지 않는 독창적인 영혼이었던 그를 기억한다. 그렇게 우리들의 가슴에 드리운 녹슨 닻에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한다. 그리고 나는 우리 사이에 이어져 있던 그 닻의 무게를 이제야 느낄 수가 있다. 나는 그의 이름을 기억한다. 그의 이름은 해강이다. 그리고 나는 그와 함께 했던 영원히 빛나는 젊은 날들을 기억한다. 그렇게 당신은 여기 지금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