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1등’을 강요받는다. 1등을 하면 남들보다 더 많은 부를 얻을 수 있고, 높은 사회적 지위를 차지할 기회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1등을 한 사람이 반드시 탄탄대로를 걷는 건 아니다. 학교에서는 수석으로 졸업했음에도, 사회 혹은 직장에서는 적응에 어려움을 겪어 다른 경쟁자들보다 뒤처지는 사례는 많다.
축구계도 마찬가지이다. 독일 축구감독 도메니코 테데스코는 독일 축구 지도자 최고 과정에서 당당하게 1등을 차지했다. 하지만 1등의 기운은 프로까지 바로 이어가지 못했다.
수석의 몰락
샬케04 감독 시절 도메니코 테데스코 출처 : http://trainertalk.net/bbs/board.php?bo_table=foreign&wr_id=489
테데스코의 출발은 앞서 언급한 대로 산뜻했다. 테데스코는 2016년 독일 축구 최고지도자를 육성하는 ‘헤네스 바이스바일러 아카데미’에서 수석으로 수료 과정을 마쳤다. 테데스코에 밀려 차석을 차지한 이는 그 유명한 율리안 나겔스만이다.
이후 테데스코는 만 31세에 독일 최고 명문 중 하나인 샬케04 감독 지휘봉을 잡았다. 만 28살에 독일 분데스리가 클럽 호펜하임 감독이 된 나겔스만이 너무 돋보여서 그렇지 갓 30살을 넘은 사람이 샬케04 감독에 임명된 것도 놀라운 일이다.
테데스코의 샬케04는 처음에 좋은 모습을 보였다. 2017~2018 시즌 샬케04는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2위를 했다. 일부 팬들은 테데스코의 수비적인 경기 운영에 비판했다. 그럼에도 많은 팬들은 부임 첫 시즌 2위라는 성과를 낸 테데스코를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다.
긍정적인 시선이 부정적으로 바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테데스코 부임 2년 차인 2018~2019 시즌 샬케04는 리그 14위까지 추락했다. 여기에다가 챔피언스리스 16강 2차전에서는 맨체스터 시티에 0대 7로 대패했다. 연이은 부진으로 테데스코는 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감독 자리에서 물러났다.
수석의 반등
RB 라이프치히에서 반등의 기회를 잡은 도메니코 테데스코 감독.
살케04 감독에 물러난 이후 테데스코는 한동안 많은 사람에게 잊혀졌다.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적게 받는 러시아 프리미어리그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테데스코는 러시아 리그에서 명문 스파르타크 모스크바를 이끌었다. 성과는 나쁘지 않았다. 2020~2021 시즌 테데스코의 스파르타크 모스크바는 리그에서 2위를 달성했다. 하지만 신흥 명문 RB 라이프치히를 거쳐 바이에른 감독이 된 나겔스만, 나겔스만 이전 뮌헨을 지휘하면서 6관왕을 차지한 한지 플릭 등 다른 독일 명장들과 비교했을 때 그의 업적은 한없이 초라했다.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2021~2022 시즌 분데스리가에서 부진을 거듭했던 RB 라이프치히는 소방수로 테데스코를 선택했다.
테데스코 부임 이전 RB 라이프치히는 2009년 창단 이후 역대급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레드불 그룹 축구단에서 성장한 제시 마치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음에도, RB 라이프치히는 분데스리가에서 8위까지 하락했다.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같은 조에 속한 맨체스터 시티, 파리 생제르맹에 밀려 16강 진출에 실패했다.(레드불 그룹 축구단은 대형 음료 회사 레드불이 보유한 축구팀을 말한다. 독일 RB 라이프치히, 오스트리아 FC 레드불 잘츠부르크, 미국 뉴욕 레드 불스 등이 대표적이다.)
테데스코 부임 이후 RB 라이프치히는 완전히 달라졌다. 4백을 즐겨 쓰던 마치 감독과 달리 3백을 주로 사용하면서 수비 안정감을 더했다. 전방 압박 강도는 더욱 높였다. 그 결과 RB라이프치히는 분데스리가(5월 3일 기준)에서 5위까지 상승, 레버쿠젠과 프라이부르크 등과 챔피언스리그 티켓 경쟁을 펼치고 있다.
컵 대회에서의 성적은 더욱 눈부시다. RB 라이프치히는 UEFA 유로파 리그에서 4강까지 진출했다.(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에서 3위를 기록해 UEFA 유로파 리그로 행했다.) 더욱이 레인저스 FC와의 4강 1차전에서 1대 0 승리를 거둬 결승 진출에 한 발짝 다가섰다. 독일 FA컵인 DFB 포칼에는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수석은 진정한 명장이 될까
RB 라이프치히가 UEFA 유로파 리그 혹은 DFB 포칼 우승컵을 들어 올린다면, 2021~2022 시즌은 RB 라이프치히에게 기념비적인 시즌이 된다. 클럽 창단 이후 제대로 된 트로피를 처음 들어 올려서다. 테데스코는 자연스레 RB 라이프치히 클럽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게 된다.
그런데 우승을 한다고 해서 테데스코가 완전히 부활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흔히 축구계에는 ‘감독 교체’ 효과가 있다. 부진을 거듭하던 팀이 감독 교체 이후 승승장구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감독이 바뀌고 난 후 선수들의 정신력은 올라가고, 상대팀이 새 감독 전술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데 따른 결과다. 현재 RB 라이프치히는 어쩌면 ‘감독 교체’ 효과를 제대로 누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테데스코의 성공 여부는 2022~2023 시즌이 돼서야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 상대팀이 테데스코 전술을 파악함에도 RB 라이프치히가 승승장구한다면, 테데스코는 독일을 대표하는 명장 반열에 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