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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화. 일상 단면

by 한 율


한강변에서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도록 달린 뒤, 잠시 숨을 고른다. 가쁜 호흡을 들이쉬다 보면 겨울이 느껴지는 한기가 코에 감돈다. 매연 냄새가 섞여 알싸한 맛이 입가에 맺히는 듯하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 멈춰 서 주변 풍경을 돌아본다. 생각보다 짧아진 해는 주홍빛 여명만을 남겨두고 수평선 너머로 저 뒤였다.


한강변에서 마주한 어느 평범한 저녁. 문득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자문을 고하던 날. 무거운 고민은 발걸음을 느려지기 만든다. 생각의 무게가 무거워지는 것과 별개로 주위를 둘러싼 세상은 언제나 한결같이 흐른다. 잔잔한 강의 물살이 한 방향으로 흘러가듯이 말이다. 생각을 멈추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한다.



계단 앞에서


로 내려가는 회색 계단 앞에 서다. 한 줄기의 햇살이 계단 가운데를 가로지르며 무늬를 만든다. 삐뚤빼뚤 중간에 끊겼지만, 나름의 질서를 갖추고 있는 듯한 모양새. 어린아이가 된 듯 밝은 무늬를 따라 계단을 내려가 본다. '세상이 호기심이 들지 않는 순간, 어른이 된다.'라는 구절을 어디에선가 보았던 기억이 있다.



검은 고양이 네로


마치 공이 된 것처럼 있는 몸을 둥글게 말은 고양이. 무언가에 집중한 듯 허공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선 주위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온몸이 까맣던 고양이. 고양이의 연두색 눈은 '검은 고양이 네로'를 떠오르게 하였다. 글에만 골몰하여 문장을 써 내려가다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글 자체를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힘을 빼고, 삶의 단면을 있는 그대로 읊조려 본다.


사화.

2025년 11월 6일

한 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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