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리뷰]수학 '개념'은 사치다. 분수가 어려운 이유

먹고살기 힘든 이에게 여행은 사치인 것처럼. 지금 당장이 중요하다.

by Oh haoh 오하오

우리 아이가 분수를 어려워하는 진짜 이유


분수는 초등학교 수학의 첫 번째 고비다.


3학년 교실에 슬그머니 등장해 덧셈부터 곱셈, 나눗셈까지 아이들을 괴롭히더니, 초등학교 끝판 대장이라 할 수 있는 비와 비율, 비례식과 비례배분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나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한다.


수학 교육을 연구하는 논문들은 분수가 어려운 이유로 흔히 이것을 꼽는다. "개념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고 문제 풀이 중심의 학습을 하기 때문"이라고.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그게 과연 분수만의 문제일까?


할당량을 처리하는 아이들


선행학습이 일상이 된 교실에서, 아이들은 매일 엄청난 양의 숙제와 문제지를 마주한다.

이 아이들에게 수학 학습의 목적은 '이해'가 아니다. 오늘 해야 할 할당량을 처리하는 것이 목적이다.


당장 먹고살기 힘든 사람에게 "여행을 다녀오세요", "책을 읽으세요", "문화생활을 즐기세요" 하고 말하는 건 사치다. 그것이 삶의 질을 높이고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걸 알면서도, 지금 당장의 현실이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개념을 이해하며 천천히 배우는 것이 훨씬 낫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오늘 풀어야 할 문제가 열 장이라면, 이해보다는 속도가 먼저다.


분수가 특히 어려운 이유

물론 수많은 개념 중에서도 분수가 유독 어려운 건 사실이다.

분수는 쓰임새가 너무 다양하다. 전체에 대한 부분을 나타내기도 하고, 측정의 단위가 되기도 하며, 비율이나 나눗셈의 몫으로도 쓰인다. 하나의 기호 안에 여러 개의 의미가 겹쳐 있는 셈이다. 게다가 분수는 두 개의 자연수가 위아래로 쌓여 있는 형태라 직관적으로 그 크기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자연수처럼 한눈에 읽히지 않는다.

논문 결론 일부

경험이 이해를 만든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조작활동을 권한다. 같은 크기의 색종이 여러 장을 나누어 주고, 각각 2등분, 3등분, 4등분으로 접어보게 한다. 직접 손으로 접고 비교하면서 "아, 똑같은 크기인데 더 많이 나누면 한 조각이 더 작아지는구나"를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색종이가 없다면 공책에 같은 크기의 사각형을 그리고 직접 나누어 보는 것도 좋다.


이런 경험과 그 경험에 쏟은 시간이 이해를 만든다.


우리는 글로 읽은 것보다 직접 가본 여행을, 체험학습에서 만진 것을 더 오래 기억한다. 오감을 통해 느낀 것은 기억에 깊이 새겨지기 때문이다. 수학에서 말하는 '경험'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알고리즘만 알면 풀 수 있지만


문제는 따로 있다.

단위분수의 크기 비교에서, "분모가 크면 더 작은 수"라는 규칙만 외우면 초등학교 1학년도, 어쩌면 다섯 살 아이도 정답을 맞힐 수 있다. 시험 문제는 맞는다. 하지만 그 아이는 나중에 수직선에 분수를 표시하거나, 분수끼리 더하고 빼야 할 때 벽에 부딪힌다. 개념 없이 외운 규칙은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학은 점점 '암호'가 된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고, 그냥 외우면 되는 것들의 집합. 이해할 수 없는 기호들의 나열.

단위 분수 조작 활동

수학도 결국 경험이다


과학은 실험을 한다. 사회는 조사학습을 한다. 직접 해보고, 찾아보고, 느끼면서 더 오래 기억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수학도 다르지 않다. 다만 수학은 어느 순간부터 외우고 푸는 것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분수를 비롯한 수많은 개념이 아이들에게 이해의 대상이 아닌 암기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삶을 배우는 가장 오래되고 확실한 방법은 직접 경험하는 것이다.

수학도 마찬가지다. 손으로 접고, 눈으로 비교하고, 몸으로 느끼는 시간. 그 시간이 분수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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