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생존기 29.
16년 동안 어둑한 터널을 걷는 듯한 인생을 살았다. 내게 보이는 세상은 일그러진 가정 속에서 보이는 것이 전부였다. 꿈도 없었다. 어찌저찌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취업이나 하는 것이 전부 같았다.
그런데 내 인생에 있어 1차 전환기가 뜻밖에 찾아왔다. 폭력으로 점철돼 있던 가정사는 그대로였지만 내면이 강해지고, 세상을 향해 첫 발을 내딛는 계기가 생겼다. 중3 때 종합학원을 다니게 되면서 변화가 생긴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친구가 있다. 자주 보지도 않았고 중학교도 다른 학교에 배정이 됐지만 '버디버디'를 통해 조금씩 대화는 하고 있었다.
그 친구는 어느날 내게 자기가 집 근처 종합학원을 다니는데 분위기가 좋으니 학원을 다녀보라고 권유했다. 처음에는 별 생각 없었는데 '한 번 다녀볼까?' 하는 마음에 등록을 했다.
세련된 학원은 아니었다. 시장통에 있는 엘리베이터도 없는 4층 소재 학원이었다. 바닥은 장판이 깔려 있었고, 칸막이는 판넬이었다. 마치 우리집 사정과 비슷해 보이는 학원에 금방 정이 들었다.
선생님들은 대학교 휴학생들 같았다. 그래서 우리들과 나이차가 크게 나지 않았다. 원장 부부도 특이하면서 좋았다. 남자 원장님은 영어도 겸임했는데 항상 욕을 달고 다녔지만 정이 많은 욕쟁이였다. 여자 원장님은 초등부를 가르쳤는데 천상 여자였다.
학생들도 면면이 착했던 것 같다. 중2는 거의 인근 중학교 여학생들이었고, 중3은 거의 남학생이었다. 이상한 구조였지만 오히려 이런 상황이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남, 녀 중학생들에게는 끌리는 구조였을 것이다.
처음에는 적응을 하지 못했다. 겉만 돌았다. 모든 학생들이 거의 초등학교 때부터 쭉 다녀왔던 터라 다 같이 친했다. 나만 고슴도치였던 것 같다. 그렇지만 난 독한 사람이었다. 금방 그들의 리그로 스며 들어갔다.
차츰 시간이 지나갈수록 학원에 가는 시간만 기다렸다. 중학교 생활도 활력이 돌았다. 공부도 열심히 했다. 고만고만 하위권을 전전했던 성적도 눈에 띄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쭉쭉쭉 성적이 올라서 중3 마지막에는 담임 선생님이 친구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내 이름을 부르며 이번에도 시험을 잘 봤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그만큼 학원 하나로 인해 인생의 가치관이 송두리째 바뀌는 변화를 느꼈다.
친구들과의 교우관계도 단단해졌다. 거의 가족같았다. 주 5일 4시간씩 매일 만나는 사이였다. 학원 전, 후에는 지하 1층 오락실에 가서 신나게 철권도 하고 펌프도 했다. 200원 짜리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몰래 소주를 사서 놀이터에서 새우깡에 마시기도 했다. 그런 생활이 너무 즐거웠다.
어쩌다 연애도 시작했다.
중2 여학생 중 한 명과 사귀게 됐다. 첫 뽀뽀도 해봤다. 소설 '소나기' 처럼 강한 설렘도 느껴봤다. 느껴볼 수 있는 긍정적인 감정은 모두 느껴본 듯 하다.
그런데 그 행복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가면을 쓰고 살았다. 어떤 친구도, 여자친구도 우리 집에 와본적이 없었다. 심지어 근처도 와본적이 없다. 부모님 이야기는 일절 꺼내지 않았다. 그저 학원에서의 내 모습, 이 모습만이 내가 보여주고 싶은 전부였다. 그래서 가면을 쓰는 선택을 했고, 하고 싶은 말은 절반만 하고 살았다. 말이 많아지면 꼭 상대방이 궁금해 하는 말을 하게 되니까.
이런 이중적인 삶이 바깥으로 새지 않도록 어떻게든 틀어 막았지만 들킬 뻔한 순간들이 많았다. 아니, 다들 어느 정도 알았지만 모른 척 했을 것이다.
시험기간에는 학원에 오래 남았다. 그때는 핸드폰이 없으니까 집과 연락이 닿으려면 학원 일반전화를 해야 했다. 시험기간이던 어느날, 자습을 하고 있는데 여자 원장님이 나를 찾았다.
"집에 전화 왔더라. 엄마가 다급히 전화 좀 주라고 하시던데? 무슨 일 있니?"
"아니요. 제가 전화해볼게요. 잠시 자리 좀."
나는 곧바로 무슨 일인지 눈치 챘지만 짐짓 아무일도 없는 것처럼 표정연기를 했다. 집으로 전화를 했다. 역시나 아빠는 술 마시고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통제가 되지 않으니 엄마와 누나는 아무래도 집 밖으로 도망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학원이 끝나면 집으로 가지 않고, 집 근처로 가야했다. 시험공부를 해야 하는 중3의 머리에는 이미 복잡한 사정이 인풋됐다.
나는 자습이 모두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나는 그런 성격이었다. 자습이 끝난 후 태연하게 집 근처 공터로 갔다. 엄마와 누나는 2시간 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남의 집에 가서 얹혀 잤다. 이런 게 기본적인 삶이었다.
연애도 불안정했다. 사춘기 중학생이 처음 여학생을 사귀어 보는데 얼마나 잘했겠나. 잘해도 보통일텐데, 전혀 잘해주지 못했다. 따로 만나서 캔모아도 못갔다. 돈도 없고 시간도 없었다. 특히나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어느날은 오락실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시간은 저녁이 되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에 전화를 해보았다. 누나가 곧장 받았다.
"집으로 바로 와주면 안돼? 집에 누나밖에 없어. 아빠 술 마셨어."
나는 곧바로 침전했다. 들떠서 설레던 마음은 금새 식어버렸고 집에 가긴 해야하지만 여자친구와 함께 더 있고 싶은 마음이 나를 힘들게 했다. 하지만 난 누나를 선택했다. 10분 정도 더 있다가 집으로 뛰어갔다. 버스 3정거장 쯤 되는 직선 거리를 쉼 없이 뛰었다. 악도 지르고 싶었지만 조용한 주택가를 뛰어가는 나로써는 속으로 삼킬 뿐이었다.
학원을 다니면서 내게 긍정적인 변화가 많았다. 외적으로 성적도 많이 올라 실업계를 생각했던 나는 인문계로 진학했다. 학원에서 처음으로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배웠다. 가난과 동기부여가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밑거름이 됐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도 배웠다. 애틋함도 배웠다. 비록 완성되진 못했지만 나한테도 그런 감정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듬직한 어른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바로 남자 원장선생님. 내 사정을 알면서도 모른척 해주셨고, 항상 신뢰로 대해주셨다. 그 전까지 내 주변에 어른은 하나같이 허풍쟁이였다. '으하하하하.' 어색한 임꺽정 웃음만 하던 아빠친구들. 지금은 모두 술로 돌아가신 분들.
그렇게 어둡던 터널 속에서 그나마 숨쉴 수 있게 만들어준 공간, 지금은 없어진 시장통 속의 학원, 나는 여전히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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