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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보건교사 Nov 17. 2023

퇴직교사의 부고

학교와 인생사

10월의 어느날, 3월달에 정년퇴직한 체육교사의 부고장이 날아왔다.

작년까지 같이 일했던 동료교사가 이렇게 학교를 떠나자마자 돌아가셨다.

영혼이 자유로워셨던 체육교사는 나에게 퇴직전에 그런말씀을 하셨다.


"학교는 창살없는 감옥이야."


  술을 좋아하셨던 동료였는데, 교사에게 음주로 인한 사고는 아주 큰 징계감이기에 재직동안에는 조심하셨던 것 같다. 그런데 퇴직 후, 자유의 몸이 되지마자 술로 인한 사고로 생을 맞이하셨다고. 음주 후 귀가하는 길에 낙상하여 출혈이 발생했는데 늦게 발견되어서 돌아가셨단다.  감옥같던 학교를 떠나자마자 허망하게 죽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정말 인생은 한 치 앞을 알수가 없는 것구나.


  내가 신규일때는 원로교사들이 명퇴할때 솔직히 나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아마도 함께 근무했던 기간이 짧았고, 보건실에만 있다보니 교과선생님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지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학교에서 같이 늙어가는지라 5년정도 같이 근무하다보면은 겉으론 친하진 않지만 속정이 들기마련이다. 정말인지 학교 밖에서 동료교사를 마주치면 실상 친하지도 않은데, 친정식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다. 만약 같이 채용된 동기가 나보다 먼저 퇴직한다고하면 눈물이 날 것 같다.


  진로상담교사가 아직 정년까지 7년이나 남았는데, 명퇴를 신청하셨단다. 수학 여행때마다 룸메이트였던 동료였던터라 나는 아주 많이 서운했지만, 감히 동료교사의 명퇴를 막을수가 없었다. 1년만 자율연수휴직 신청해보시는건 어떤가요, 제안했지만 이제는 학교가 지겨워서 그만두고 싶다는 원로교사를 어떻게 붙잡을 수 있을까.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나와 정년을 함께할 동년배 교사들이 남아있고, 연장자인 동료교사는 인생의 선배라 육아로 허덕이는 나에게 호의적이다. 그리고 신기하게 육아가 공통관심사가 되어서 어색할 것 같은 남자교사들하고도 곧잘 말이 잘 통한다. 아이를 데리고 어디를 가면 좋더라, 어린이집에 다니니깐 감기에 걸려서 한동안 고생했었다 등등. 오히려 나보다 나이가 어린 후배교사들과 가깝게 지내기가 어렵다. 결혼이라는 강을 건너 육아로 인해 늘 피로한 나는 후배교사들과 정서적인 유대감을 나누긴엔 나의 정신적, 시간적 재원이 부족한 것 같다.


  일본어교사가 나에게 지금의 남편을 소개시켜줬다. 심지어 나는 그 동료교사를 약간 싫어했는데, 무료 소개팅이니 가볍게 나간 자리에서 이렇게 부부의 연을 맺였다. 소개를 맞고, 날마다 보건실에 찾아오셔서 나를 달달달 볶으셨다. 2번밖에 안 만났는데 얼른 결혼하라고. 시부모님은 모두 교장으로 재직중이였는데, 퇴직 전에 차남이라도 결혼시킬려고 얼마나 서두루셨는지 모른다.


  두 분은 학교가 지겨워서 얼른 퇴직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셨다. 지금은 퇴직한지 2년이 더 되어가는데, 가끔 두분을 보면 퇴직 후의 삶이 심심해보인다. 시어머님은 워낙 사교성이 좋으셔서, 현직때 어울렸던 교장들과 여전히 잘 놀려다시는것 같은데 시아버님은 근무하셨던 학교의 도서관장으로 급여도 없이 출근하신다.

아버님께는 급여가 중요한 게 아니라 매일 출근할 곳이 필요한 것 같다. 시부모님은 남편에게 늘 기술자 자격증을 취득해라, 해외파견을 준비해라 등등 남편의 포부에 비해 잔소리가 많은 편인데 왜 본인들은 퇴직후의 의 삶에 대해서 준비를 안 하셨는지 모르겠다.


  직장이 지겨워도 그래도 재직할때가 행복한 것 같다. 병원에서 정말 죽지못해 일했던 나는 학교가 단 한번도 지겨웠던 적이 없다.  친구같았던 제자들은 어느새 성장해서 나와 같이 교단에 서거나 간호사로 취직했다. 그리고 나만 나이가 먹어서, 친구같던 제자에서 자식만큼 나이차이가 생기고 나는 점점 꼰대가 되어간다. 

물론 어떨 때는 내가 너무 늙어서 학생들이 너무 싱그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퇴직하면 여행다녀야지, 그런건 퇴직을 안해봐서 그런다. 퇴직하면 아마도 다 재미없고 무료할텐데.

퇴직하면 전국여행 다니실거라던 아버님은 결국 그냥 집에 계시더라. 나는 뭐든지 퇴직후로 미루지 않고 지금 재직할 때 할란다. 그리고 30대인 지금부터 퇴직 후의 삶을 준비하련다. 파이어족을 꿈꾸는건 아니지만 내가 퇴직 후의 삶으로 무엇을 준비하는지는 앞으로의 글에서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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