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튼튼 맘 튼튼
혹. 혹시
왜 기분이 꿀꿀할까 염려하셨나요?
무슨 반찬일까 궁금하셨나요?
그냥요. 한참 지난 유행이지만 기분이 안 좋아서 빵을 샀다는 말에 왜 기분이 안 좋냐고 묻는 사람과 무슨 빵이냐고 묻는 사람으로 성향을 파악한다는 말이 생각나서 여쭤봤어요. 뭐면 어때요. 제 글을 지금 읽고 계시잖아요. 그럼 됐어요.
기분은 왜 꿀꿀하냐고요?
감사한 줄 모르고 작은 걸리적거림이 태산처럼 느껴져 숨이 막혔어요. 수술한 지 열흘밖에 안 됐으니 여기저기 불편한 건 아직 당연한 건데도 그냥 짜증이 폭풍처럼 밀려왔어요. 걷어차버리면 그만일 작은 돌멩이를 보고도 멈춰 서서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었어요. 어제처럼 햇빛을 쬐면 기분이 좋아지려나 싶어 집 앞 공원 산책을 나갔어요. 음악을 들으며 출렁이는 생각들을 정리하고 잠깐 벤치에 앉아 멍 때리다 집으로 돌아왔어요. 바람이 차가워졌어요. 밤에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더니 벌써 꾸물거리네요. 일교차가 심한 것이 꼭 요즘의 저 같아요.
마음을 다스리려면 몸을 좀 써야 하더라고요. 뭐라도 하면 기분이 나아질 거라 믿고 칼춤을 춰보자 생각했지요. 냉장고를 열어 이것저것 채소들을 몽땅 꺼내서 손질했어요. 일명 냉장고 털이를 하기로 했지요.
일단 대파를 한통 다져놓는 것으로 칼춤을 시작했어요. 대파 다질 때 그 칼질소리가 힐링되기도 하더라고요.
'찹찹 찹찹찹!' 무언가 타파하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져요. 그리고는 그냥 무작정 잡히는 대로 반찬을 만들었어요. 껍질을 벗고 각자의 색을 드러내면서 예쁜 모양으로 전처리 되어 채반에 놓여있는 알록달록 채소들이 예쁘더라고요. 지지고 볶고 사는 거 말고 지지고 볶고 먹는 일은 재미있네요.
다 만들어놓은 반찬들을 통에 담에 가지런히 식탁에 줄을 세워놓으니 기분이 좋아졌어요. 힘든데 뭐 하러 이걸 만들었냐고 타박하며 좋아할 남편 모습도 그려지고 맛있게 먹을 아이들도 생각하니 벌써 뿌듯해지네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보다는 주로 나물이라 마음에 들지 모르겠네요. 저도 어릴 때는 저 풀들은 왜 먹나 싶었는데 이제 나물, 버섯 이런 것만 찾아요. 120살까지 건강하게 살려면 채소반찬 많이 먹어야 하니까요.
다행히 반찬 만드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먹을만해요. 검증받을 길은 없으니 일단 음식에 재능 있는 거로 할게요. 그래도 나름 영양사 출신이에요. 사실 젊었던 그 시절엔 반찬 잘 못 만들었어요. 영양사 면허증보다는 엄마로서의 경력이 한 수 위인 것 같아요. 얼마나 맛있는지 사진으로 담을 수 없어서 아쉽다고 너스레도 떨어봅니다.
눈물바람 할 뻔했는데 칼춤을 잘 춰서 식탁도 마음도 풍성해졌네요.
수술 후 목 안쪽이 유착되지 않도록 스트레칭을 자주 해주라고 했는데 목보다 마음이 먼저 쪼그라들 뻔했어요. '하나, 둘, 하나, 둘' 몸도 마음도 가동범위가 넓어지도록 스트레칭을 열심히 해야겠어요. 마음이 튼튼해야 몸도 버티고 몸이 튼튼해야 마음도 안 아프니까요.
요즘 부쩍 많이 드는 생각이 있어요. 하고 싶은 일을 미루지 말자. '나중에, 다음에'라고 말하지 말자. 하고 싶어도 못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걸 잘 알거든요. 마음먹은 것들 미루지 말고 그때그때 해야 해요.
아. 그런 의미에서 미루지 말고 샤넬 매장을 가야 할까 봐요. 하하하. 빌드업이 그럴싸하죠?
그때그때 감사하며 하고 싶은 걸 하고 사세요. 감사거리가 없다 싶을 땐 몸을 써보세요. 내 몸을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 그게 얼마나 큰 감사의 이유가 되는지 칼춤 추고 깨달았어요. 내 손으로 가족들이 먹을 반찬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불과 일주일 전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행복해야 마땅한 거예요. 오늘도 나약해진 마음을 잘 일으켜 세운 나를 칭찬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