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매니아 Jul 01. 2023

불이야!

초콜릿은 어려워


    2차 실기시험이 임박하면서 가장 어렵고 힘들다 느낀 부분이 바로 초콜릿 데코레이션이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같이 어프헝티로 일하는 동료들 모두, 특히 CAP 상위과정인 Mention 과정을 밟고 있는 윌리암은 초콜릿 때문에 시험에 떨어질 거라며 말할 정도였다. 일하면서 초콜릿은 많이 다루지만 그저 브라우니나 초코 커스터드 크림을 만드는데 그치다 보니, 제과학교 실습시간에 겨우 접해보는 초콜릿 데코레이션만으로는 부족하기 그지없었다. 초콜릿 데코레이션은 케이크를 초콜릿으로 예쁘게 장식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초콜릿으로 예쁘게 글을 쓰는 cornet écriture부터 시작해, 초콜릿의 정해진 온도에 맞춰 녹였다 온도를 다시 올려주는 tempering, 그리고 crystallisation 된 초콜릿으로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드는 것까지를 모두 포함하는 과정이다. 초콜릿의 온도를 맞추는 게 정말 중요한데, 주로 tablage, encememcement, bain-marie 방법을 사용한다. 초보자인 나에겐 tablage만으로도 30분 이상이 소요될 만큼 어렵고 까다로운 과정인지라 시험에 대비해서라도 연습은 필수였다. 


    주방 시설이 열약한 집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열심히 초콜릿 글쓰기를 연습하는 것뿐이었다. 매번 치약으로만 연습하다 시험이 가까워지자 뉴텔라나 전자레인지에 살짝 초콜릿을 녹여 사용해보기도 했다. 다크초콜릿으로도 해보았다가 밀크초콜릿으로도, 화이트 초콜릿으로도 해보았는데, 초콜릿마다 느낌이 다 다른 것도 신기했다. 여러 번 그림을 그리듯 글씨를 써보다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나오면, 여러 번이고 연습해 내 것으로 만들려 노력했다.     

불어 철자는 복잡하기만 한데, 또 예쁘게 쓰려니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집에서는 그 이상 연습하기엔 한계가 있어 셰프 아따나스에게 어프헝티들만 남아 초콜릿을 연습할 수 있게 해 달라 요청했다. 다행히 필요한 재료는 마음껏 쓰라며 허락해 주었다. 모두가 다 같이 나오는 하루를 날 잡아 집에서 가져올 수 있는 초콜릿 도구들은 다 가지고 왔다. 레이저 온도계에 밀대까지, 파티스리 주방이지만 그 흔한 조리용 온도계도 없는 우리 주방은 초콜릿을 연습하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다. 스테인리스 주방 상판은 열을 그대로 붙잡고 있고, 창문도 냉방시설도 없어 열기와 수분이 그대로 머물러 있는 찜통 같은 주방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후, 바닥 청소는 연습 후로 미루고 초콜릿 연습에 돌입했다. 하지만 35도에 달하는 주방 내부 온도에 28도까지 초콜릿 온도를 내리기란 쉽지 않았다. Tablage를 하다 포기하고 차가운 물을 냉동고에 넣었다 중탕으로 온도를 내려서야 겨우 온도를 잡았다. 이 와중에 화이트 초콜릿은 전자레인지에 넣었다가 깜빡할 사이 전자레인지에 불이 붙었다. 니콜라스가 주방에 불만 내지 말라며 신신당부하고 퇴근했는데, 안 그래도 낡은 전자레인지에 검게 그을음이 남았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 여러 가지 초콜릿 장식품을 만들었는데, 그마저도 마음에 들지 않아 오히려 초콜릿을 싫어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모두가 비밀로 해준 덕에 주방이 불탈뻔 했던 건 안비밀. 의리있고 고마운 윌리암과 저스틴.

    그다음 날 우리가 안쓰러웠는지 셰프 아타나스가 짬을 내어 초간단 초콜릿 장식 팁을 알려주었다. papier guitar 사이에 전자레인지로 녹인 초콜릿을 그대로 뿌려 냉장고에 넣어 굳히는, 초콜릿을 다루는 정식방법은 아니지만 정말 시간이 급할 때에 쓸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다. choc thermique 이라고 냉동 대리석판에 녹인 초콜릿을 작업해 굳히는 것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심지어 제과학교 교수님들도 급할 때는 이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고 시험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는 CAP 레벨에서는 추천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셰프의 초콜릿 야매 속성 과외 시간. 청소하기 직전이라 주방 내부가 참 지저분해보인다...

    휴무날 홀로 냉방시설, 아니 창문이 있어 그나마 조금 시원한 Saint-Saveur 주방에 가서 초콜릿 작업을 해보았다. 역시 정석대로 초콜릿을 녹이니 초콜릿 자체에서 윤기가 나고, 모양도 흡족하게 나왔다. 초콜릿은 정말 어렵지만, 정직하고, 참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마음을 얻어야 하는 듬직한 친구 같단 생각이 든다. 한번 그렇게 마음을 얻으면 오래도록, 어쩌면 평생의 파티셰 커리어 동안 든든한 동반자가 될 것만 같은 좋은 기술. 

    이틀 앞으로 다가온 마지막 관문. 2년을 기다린 이 날이지만 부족한 것 투성인 것 같아 마음이 불안하기만 하다.  

작가의 이전글 CAP 불어&역사 말하기 시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