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한식을 팔아본 군인 부부의 이야기
"인도애들이 진짜 한식을 사 먹을까?"
아내가 물었다. 간호학 박사인 아내는 늘 이런 식이다. 감정보다 근거를 먼저 따진다. 나도 군인이라 냉정한 편인데, 아내 앞에서는 내가 훨씬 감성적인 사람이 된다.
우리 부부는 인도 웰링턴에서 열리는 한 행사에서 한식을 팔아보기로 했다. 전문 요리사도 아니고, 경영을 배운 것도 아니다. 군인과 교수. 이력서 어디를 봐도 '요식업'이라는 단어는 없다. 그런 우리가 이국땅에서 음식 장사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행사 날짜가 다가올수록 마음이 복잡해졌다. 잘하고 싶은 마음과 가볍게 하자는 마음이 하루에도 열두 번씩 교차했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보자. 그렇게 마음을 잡았다.
메뉴를 정하는 것부터 전략이 필요했다. 인도에서 돼지고기와 소고기는 종교적 이유로 부적합하다. 닭고기를 써야 했다. 그리고 외국인이 처음 접해도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는 한식. 답은 하나였다. 양념통닭.
가격을 정하는 데서 내 직업병이 나왔다. 전략적으로 생각했다. 행사에 오는 인도인들은 중산층 이상이다. 이 사람들은 돈이 있다. 하지만 한식을 접해본 적은 거의 없다.
1000루피? 네 자릿수 가격은 심리적 저항이 생긴다.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먼저 들 것이다. 그렇다면 500루피. 인도에서 가장 큰 화폐 단위인 500루피짜리 지폐 한 장이면 된다. 지갑에서 꺼내는 동작이 한 번이다. 주변 식당에서 가장 비싼 메뉴 수준이지만, 그렇다고 엄두가 안 나는 가격은 아니다. 대신 양은 줄인다. 희소성을 만들어야 하니까.
당일 아침, 나는 긴장했다. 아내는 태연한 척했지만 소스 비율을 세 번이나 다시 확인하는 걸 보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때 우리 딸은 아직 돌도 지나지 않았다. 아기를 안고, 한 손으로 양념을 만들고, 다른 한 손으로 닭을 튀겼다. 돌이켜보면 무모했지만, 그 순간은 온 가족이 하나의 팀이었다.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호기심이었다. "Korean food? What is this?" 양념통닭 한 조각을 건넸다. 한 입 베어 물더니 눈이 커졌다. 그리고 500루피짜리 지폐를 꺼냈다. 그 다음 사람도, 그 다음 사람도.
줄이 생겼다. 한 시간 넘게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다. 인도에서 줄을 서서 기다린다는 건,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이 나라에서 '기다림'은 미덕이 아니라 고역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끝까지 기다렸다.
거스름돈을 안 받는 사람도 있었다. 너무 맛있다는 이유로.
우리가 아기와 함께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걸 본 인도인들은 따뜻했다. 기다리는 동안 딸을 안아주는 사람,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 부채질을 해주는 사람. 인도인들은 손님을 '신이 내려준 선물'이라 생각한다. 그날, 그 선물을 받은 건 오히려 우리 쪽이었다.
어떤 인도인이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서 먹었던 치킨보다 맛있어요."
과장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한마디가 주는 힘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행사가 끝나고 부스를 정리하면서 아내와 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딸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 아까까지의 소란이 거짓말 같은 고요함 속에서, 아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 이거 할 수 있겠는데?"
나는 웃었다. 근거를 먼저 따지는 사람이 근거 없이 던진 그 한마디가 그날 들은 어떤 칭찬보다 강했다.
인도에서 한식의 가능성을 발견한 날이었다. 하지만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 부부가 서로의 가능성을 다시 확인한 날이었다.
가끔 생각한다. 만약 그날 아내의 첫 질문에 "그러게, 안 되지 않을까?"라고 대답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도전은 언제나 이렇다. 시작하기 전에는 백 가지 이유로 안 될 것 같고, 끝나고 나면 왜 진작 안 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