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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스란 Dec 12. 2023

아들의 성적 통지표

학년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주시네

일주일 전 주말, 저녁을 먹은 후 귤을 까먹다가 아들이 잊어버린 게 막 생각났다는 듯 말을 꺼냈다.

"아, 맞다. 나 보여줄 거 있어요."

검은색 책가방 등판주머니에서 L자 파일을 꺼낸다. 투명한 파일너머 제목이 힐끔 보였다.

성적 통지표.

파일을 받아 들려고 하니 다시 잡아들고 뒤에 있는 종이 한 장을 먼저 준다.

"이것부터 보세요."

그 앞에 있던 종이 내용이 무척이나 궁금했지만 다음 장을 받아 들고 제목을 읽었다. 현장학습 안내였다. 겨울인데 어디를 가나 보니 생각보다 멀리 가는 것이었다.

중학교 3학년 졸업여행을 당일치기로 열차를 타고 전주를 다녀온다고 한다.

코레일에서 단체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 특화 관광열차를 타고 다녀오는 것이다. 프로그램을 보아하니 아이들에게 재밌겠다 싶었다. 열차도 오랜만에 타는 데다 친구들과 함께라니 이보다 색다른 추억은 없을 듯하다.

2020년이었던 초등학교 6학년 때 코로나로 졸업여행은커녕 졸업식도 축하해 주는 가족 없이 치렀는데 중학교 가서도 졸업여행이 무산되어 꽤나 속상해했다. 당일치기지만 그렇게라도 다녀온다니 잘되었다 싶었다.

학부모 서명칸이 없는 신청서에 자기가 이름을 쓰며 가는 날은 29일이고 오전 8시까지 학교에 가야 하니까 꼭 기억해야 한다며 희망칸에 동그라미를 크게 치고는 다시 집어넣는다.


"그리고 이거요."

드디어 통지표를 내게 건넸다.

보통 종업식날에 주는데 12월 초에 통지표를 받아 드니 느낌이 묘했다.

중3이라 11월 말부터 고등학교 입학원서를 쓰기 때문에 일찍 마무리가 된 것이다.




첫 장은 각 과목 지필, 수행평가 점수와 성취도, 과목 평균이 적힌 표가 꽉 차게 그려져 있었다.

열 교과 중 A가 2개 있다. 체육, 음악.

옆에 지나가던 남편이 힐끗 보더니

"음악이 A야? 대단한데."

"나 음악부장이에요."

"그래?"

처음 듣는 이야기다. 어쩌다 음악부장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노래를 매일 즐겨 부르지만 그렇게 잘하는 것도 아니고 악기 하나 제대로 연주할 줄 아는 게 없는 아들인데 의아했다. 무엇보다 친구들 앞에 서서 주목받는 걸 벌칙으로 아는 아이인데 부장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놀라울 뿐이다. 아무래도 가위바위보에 져서 된 게 아닌가 싶다. 궁금하지만 물어도 말하지 않으니 넘어간다.

C에 국어가 있다. 국어? 1학기에는 제일 잘 본 교과였는데 많이 실망스러웠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D에 수학과 영어가 나란하게 있다. 나름 열심히 준비했던 수학은 지난번보다 향상된 대신 공부 시간이 줄었던 영어가 내려가 앉아 있다. 둘 다 가질 수 없는 건가 싶어 내심 아쉬웠다.

E도 1개 있는데 역사다. 하필 담임선생님 교과다. 괜스레 내 얼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시험기간에도 겨우겨우 보고 결국 학교에서 마무리한다고 했으니 어쩌겠는가.

성적이 마음에 드냐고 했더니 엄마는 어떻게 생각하냐며 되려 묻는다.

"네가 열심히 해서 나온 결과니까 나야 괜찮지."

"네, 저 열심히 했어요."

"그럼, 엄마가 잘 알지. 수고했어, 아들~"




여전히 함께 하는 시간을 마치면 자기 방에 들어가 방문을 잠근다. 때론 내게 속상하고 서운하게 말을 할 때도 있지만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라 어느 정도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학교도 단 한 번의 지각 없이 열심히 다니고 수업 시간에는 열심히 들었을 것이다.

성격상 대놓고 딴짓을 할 수 없을뿐더러 기본적으로 교사에 대해 애정이 있고 노고를 알기에 바른 자세로 수업을 듣는 편이다. 이해를 잘하고 성적이 잘 나오는 것을 떠나 수업은 열심히 듣는다고 매년 상담시간에 선생님들께서 말씀해 주셨다.

진짜 졸릴 때만 잤을 것이다. 졸은 날은 나에게 몇 교시, 무슨 교과 시간에 어떤 이유로 졸았는지, 어떤 자세로 잤는지 얘기해 주기 때문에 알 수 있다. 물론 그 이상을 잤어도 어쩔 수는 없다.

음식을 하는 것도 먹는 것도 무척이나 좋아하는 아들이니 급식도 남기지 않고 잘 먹는다. 오히려 부족하다 싶은데도 축구를 해야 해서 시간이 없거나 추가배식하러 갈 때 친구들이 쳐다볼까 봐 부끄러워서 못 먹고는 아쉬운 그 메뉴를 저녁에 해달라는 아이다.

점심시간마다 축구도 열심히 하고 방과 후에 그 많은 스포츠클럽 훈련 거의 빠짐없이 참여했다. 덕분에 네 종목에 학교 대표로 참여해서 두 종목은 메달까지 따고 왔다. 그러면서도 운동선수는 꿈이 아니라고 한다.

선생님께서 강당의자를 깔아야 한다고 하면 8시까지 학교에 가고 남아서 도와줄 사람을 찾을 때는 어김없이 남아 온갖 궂은 심부름을 다 하고 온다.

먼저 놀자고 할 성격은 아니고 학원을 전혀 다니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많다. 거절도 잘하지 못해 이 친구, 저 친구가 놀자고 하면 언제나 오케이였기에 일주일 중 사흘은 논다. 놀 친구가 없을 때는 실망스러운 모습으로 내가 다니는 직장으로 30~40분을 걸어온다.

이렇게 학교생활을 하는 아이니 스스로 열심히 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뒷장을 보니 출석상황이 나온다. 수업일수 144일 중 아파서 조퇴한 걸 빼면 아주 깨끗하다.

하루도 안 빠지고 학교 다니느라 고생했다고 토닥토닥해 줬다.

아무래도 학교에서는 수업과 공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 더군다나 중학교 3학년이니 압박감도 클 것이다. 공부를 잘하지 않으 좋아하기 어렵다. 좋아하지 않는 걸 많이, 오래 하면 하루가 즐겁지 않을 것이다. 그에 비해서 불평 없이 다녔고 아파도 집에 있는 것이 심심하고 싫다며 학교를 갔다.

그래서 아들은 체육이 들어있는 월, 수, 금요일을 가장 좋아하 오늘같이 비라도 오는 날엔 무척이나 속상해한다.




드디어 학교통지표의 꽃, 개별 가정통신을 읽을 차례가 되었다. 잘 읽기 위해 눈을 다시 크게 뜨고 꼼꼼히 읽어 내려갔다.

'온순하지만 활발하여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과의 관계가 좋다.'

키우는 내내 주변사람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다. 아들치고 참 순하다고. 내향인이지만 활발한 것도 맞다. 무엇보다 친한 아이들과 문제가 없다니 정말 다행이다.

'봉사심과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높고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한다.'

자기가 손해 볼지언정 친구들 잘 챙겨주고 궂은일은 손들고 하는 아이니 어른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

청소당번이 그냥 가거나 대충 하면 시키지 않아도 남아서 청소하는 성실함에 교무실로 차출되기 일쑤고 아무도 하지 않는 분리수거 역할을 손들고 맡아서 봉사점수를 받기도 한다.

'어른들에 대한 예의가 바르고 밝고 성실한 모습으로 칭찬을 많이 받는다.'

우리 가족 외 양가 모두 예의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본을 보이며 가르치려고 했던 부분인데 우리 앞에서만이 아니라 몸에 밴 듯하여 기특했다.

'학업 면에서 부족한 부분을 파악하고 개선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면 고등학교 진학 후 발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무슨 뜻으로 하신 말씀이신지 너무나 잘 알기에 나도 모르게 입가가 올라갔다. 잘할 수 있을 거 같은 아이가 못해서 안타까우니 가정에서 못하는 부분을 제발 도와주라는 뜻이다. 누구보다 내가 정말 잘하고 싶은 부분이기도 하다.

'가정에서 늘 아낌없는 칭찬과 격려 부탁드린다.'

한다고 해도 늘 부족함을 느끼는 칭찬, 앞으로 계속 더 많이 듬뿍 해줘야겠다.


한 장짜리 통지표를 앞 뒤로 읽는데 아들의 한 해가 눈앞에 그려졌다.

고등학교 입학원서를 쓰는 요즘 여러 생각이 오간다.

다음 통지표도 지금처럼 내가 묻지 않아도 건네며 스스로 열심히 했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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