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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아버지

by 해피가드너
『행복한 가드너씨』
뉴욕에서 은퇴 후 새롭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쓴 글의 일부를 재수정한 글도 포함됐습니다.



나이가 들며 묘한 일을 겪곤 한다. 가까운 기억은 흐릿해지는데 오래전 일은 선명하게 떠오른다. 지인은 우스갯소리로 치매 초기라고 하고, 친구는 나와 비슷하다며 공감한다. 아마도 오래된 기억일수록 뿌리가 깊기 때문일 것이다. 그중 글을 쓰며 더 또렷하게 떠오르는 기억, 그 흔적의 한가운데 아버지가 있다.


21화

대학교 4학년 여름방학 때다. 졸업을 앞두고 진로와 졸업 연주회로 정신없이 바쁘던 시절. 사이사이 학생들 레슨에 청춘사업까지 하느라 일생에서 가장 즐겁게 지내고 있었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긴 하루를 보내고 서교동 집골목을 들어섰다.


그런데 왠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저녁 7시면 항상 집 앞에 서 있던 검은색 승용차가 보이지 않아서다. '아버지가 아직 집에 안 들어오셨나' 하면서 초인종을 눌렀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당시에는 핸드폰도 없던 80년대라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한참을 기다리니 집안일을 도와주던 언니가 사색이 되어 문을 열어주었다.


"사장님이 갑자기 쓰러지셔서 대학병원으로 가셨어."

늘 규칙적인 생활에 술과 담배도 안 하시는데 왜? 떨리는 마음으로 S 대학병원으로 달려갔다. 아침에만 해도 멀쩡하시던 아버지가 환자복을 입고, 중환자처럼 누워계셨다. 며칠간의 정밀 검사 결과는 급성 간암이었다. 겨우 2주 동안 가족들의 병간호를 받으시고, 지독히도 더웠던 그날 우리 곁을 떠나셨다.


2주라는 짧은 시간 동안, 아버지는 고통 속에서도 우리를 걱정하셨다. 엄마에게는 두 손을 꼭 잡고 "고생만 시켜 미안하다"며 눈가에 맺히던 눈물. 혼기를 앞둔 나에게는 결혼식장에 함께 못 들어가 미안하다면서 "착한 사람과 결혼해라."를 당부하셨다. 그 와중에 착한 사람이라니. 진로를 고민하던 막냇동생에게는 "가업을 이어 약대에 진학해라", 대학 1학년인 동생에게는 변호사가 되어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라고 하셨다. 힘없었지만 또렷하던 목소리가 지금까지도 귓가에 맴돈다.


그렇게 갑자기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한동안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하늘만 바라보아도 눈물이 났다. 세월이 가며 간간이 생각이 났지만, 애써 무심해하곤 했다. 다시 슬퍼질까봐. 글을 쓰며 비로소 아버지가 어떤 분이셨는지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아버지는 서울로 오시기 전, 지방의 소도시에서 약국을 운영하셨다. 작은 가업을 물려받으셨는데 아버지가 맡으면서 눈부시게 번창했다. 수익의 일부를 지역사회 장학사업에 기부하며 많은 의약계 학생을 도왔다. 시간이 흐르며 도매상과 소매상을 겸하던 약국은 더 확장되었다. 부모님 모두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쉴 틈 없이 일하셨고, 가게와 연결된 집은 늘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잘나가던 약국을 갑자기 그만한다고 폭탄선언을 하셨다. 가족과 함께 밥 먹고, 아이들을 좀 더 환경이 좋은 곳에서 공부시키며,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싶다는 단 하나의 이유였다. 많은 사람이 아깝다고 만류했지만, 아버지는 가족과 지내는 것이 더 소중하다며 서울행을 택했다.


엄마도 약국을 정리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어두침침하고 쓰러져가는 가게를 반듯한 사업체로 발전시켰으니 포기하기가 쉽지 않았을 듯하다. 하지만 아버지는 달랐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자리를 내려놓으셨고, 기꺼이 '평범한 삶' 속으로 들어가셨다.


서울로 오신 후, 아버지는 바라던 대로 그동안 하지 못한 일상의 즐거움을 누리셨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생선을 사 오고, 동네 시장에서 장을 보기를 즐겨 하셨다. 엄마가 식사를 준비하시는 동안, 식탁에 둘러앉아 나와 동생들의 하루를 물으셨다. 평범한 대화였지만,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을 듯하다.


저녁 식사가 끝나면, 엄마와 동네 한 바퀴를 돌며 산책하시는 게 일과였다. 조금 떨어져 두 분이 걷는 뒷모습은 조금 어색하지만 다정했다. 체격이 크신 아버지와 좀 마른 엄마. 우리가 중고등학교를 다니자, 사회와 경제 돌아가는 것을 알려주고, 꿈을 갖도록 응원을 해주셨다. 그때 알려주신 경제 상식이 평생을 통해 큰 가르침이 되곤 했었다. 책과 글을 가까이하던 아버지는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기셨다.


가끔 궁금했었다. 아버지는 왜 그런 선택을 하셨을까. 한창 잘될 때, 그 일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거 같아서다.


세월이 흘러 글을 쓰면서, 나는 그해 여름의 아버지를 다시 만났다. 그리고 그 궁금증이 조금 풀렸다. 아버지는 삶의 가장 소중한 가치를 잘 선택했고, 충만하게 누리다 가셨음을 깨닫게 되었다. 불필요한 욕심을 내려놓은 진정 용기 있는 이셨다. 잘 나가던 약국보다 가족과의 행복을 택한 아버지는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행동으로 일깨워주셨다. 수많은 일화 중 아버지와 함께했던 기억이 유독 많이 떠오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듯 글을 쓰고, 소박한 정원을 가꾸는 나이 든 나를 보시면, 참 좋아하실 거 같다. 어쩌면 아버지가 원했던 모습 같기도 해서 뭉클하기도 한다. 오래전 우리 곁을 떠나신 아버지가 시간의 꽃으로 다시 피어나기라도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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