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트럴 스타벅스 빙샷! 사라지는 그 자리에 나만의 추억을 남기다.
나는 아직도 홍콩의 영화나 음악들이 좋다.
한때 아시아 전역을 풍미했던 홍콩의 영화가 지금은 그만큼의 빛을 발하고 있지는 못해 개인적으로 아쉬운 마음이 크지만 그러함에도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이 제작된 이 홍콩에 있음에 다시금 행복의 너울이 넘실거린다.
홍콩에서 6년 가까이 살고 있는 한국인 친구가 한 번은 내게 이런 조언을 해 주더라.
"무간도 같은 영화를 다시 한번 봐 보세요.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 영화에 나온 장소들의 역사 흐름을 같은 공간에서 경험할 수 있는 곳이 이곳 홍콩이죠. 새로운 느낌이 들 거예요."
내게는 홍콩의 영화 중 손에 꼽히는 명작들이 있는데 그중 한 작품이 무간도 영화였음에 그날 밤 나는 다시 무간도 1(2002년 작품)을 보았더랬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중후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멋스러운 홍콩의 누아르 영화였다.
신기한 것이 19년이 지났음에도 영화 속에 나오는 홍콩의 건물들 정취들이 오늘의 홍콩 모습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홍콩은 그러한 곳이었다. 오래됨과 새로움이 함께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공존해 있는 금융도시.
레트로 감성을 좋아하는 이에겐 홍콩은 더할 나위 없이 여행하기 좋은 것들이 즐비해 있는 곳이기도 하며.
오묘한 조화를 이룬 낡고 오래된 건물들이 하나의 숲처럼 보이는 홍콩의 도시. 중경삼림 영화에서도 홍콩의 이러한 감성을 참으로 아름답게 표현했었지.
요즘 친구들은 모를 영화이겠지만 유덕화, 오천련 주인공의 천장지구 영화에서 나왔던 장소로 유명한 곳이 있다. 바로 센트럴에 있는 스타벅스 빙샷(Bing Sutt) 지점 옆의 가스등이 있는 계단이다.
한국인들에게 특히 유명한 관광명소라고 익히 들은 바 있어서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는 그 어느 늦은 여름 9월에 방문을 하게 되었다. 날씨도 쾌청한 아주 멋진 그런 날이었다. 익히 들었던 명소의 느낌과는 다르게 소박함이 있는 장소였지만 1883년에 만들어진 오래된 가스등을 보니 감회가 새롭더라.
130년은 훨씬 넘은 역사의 잔존이 현대 시대에 당당히 함께 하는 것을 보니 옛것에 대하여 소중하게 여기고 지키고자 하는 홍콩인들의 멋진 정신을 엿볼 수가 있었다.
바로 옆 스타벅스는 전통 찻집 콘셉트로 만들어진 빙샷(Bing Sutt) 지점이었다.
워낙 핫플레이스로 알려진 곳이라 사람들이 줄지어 기다리는 곳이며, 갈 때마다 만석인 곳으로 유명한 스타벅스 지점이라 들었는데, 막상 내가 간 그날은 여유롭게 자리를 잡고 나만의 시간을 한껏 누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스타벅스 입구도 무엇인가 이전의 오래된 유럽 건물의 양식 스타일로 지어져 있어 이국적인 멋을 느낄 수가 있었다.
빙샷(Bing Sutt)은 1950년~1960년대에 중국 광저우에서 시작하여 홍콩으로 퍼진 일종의 전통 찬 술 집이라 한다. 전통 찻 집의 콘셉트 자체가 원래 작은 타일 바닥, 매달린 선풍기, 접이식 의자 등과 같은 오래된 가구와 설정이 특징이다. 이곳에서는 가벼운 식사와 찬 음료 같은 것들을 제공했다고 한다.
더불어 빙샷은 한국의 김밥천국 같은 음식점인 현대판 식당 차찬텡(Cha chaan teng)으로 바뀐 유래가 있기도 하다고 한다. (홍콩에는 홍콩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많은 차찬텡 식당이 곳곳에 즐비해 있다.)
센트럴 스타벅스 빙샷 지점의 내부는 충실히 옛날 찻 집 이미지로 꾸며 놓고 있었다.
서양식 인테리어에 익숙한 스타벅스만 경험하다가 이렇게 중국 전통 찻 집 느낌의 스타벅스를 보니 무엇인가 내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홍콩의 1950년대로 돌아간 느낌이 들기도 했다.
금융도시인 홍콩이지만 주요 수입 요소 중 하나가 해외 관광객이기도 하여, 이는 외국 관광객을 타깃으로 잘 짜인 마케팅 전략 같았다. 어찌 됐든 이렇게 자신들의 전통을 신문물과 잘 융합하여 하나의 세일즈 포인트로 잘 잡은 것 자체가 인상적이었지 싶다.
그러나...
이 유명한 관광명소도 그 소비층이 꾸준히 방문하지 않으면 현존하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었으리라.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해외유입을 철저하게 관리하며 막고 있는 홍콩 정부의 지침에 따라 그 정책이 2년 가까이 되니 철저한 이익을 따라 움직이는 스타벅스도 어쩔 수가 없었나 보다.
2022년 올 초반에 이 지점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다른 새로운 프랑스 레스토랑으로 대체됐다.
꽤 오랜 역사가 있는 명소가 한순간 기업의 이윤 추구를 위해 없어지는 것을 보면서 무엇인가 씁쓸한 마음이 스며들었다. 한 편으로는 마치 마지막 기회가 주어져 이곳에 왔었다는 것에 안도의 기쁨도 함께 느끼며.
센트럴 스타벅스 빙샹 지점에서 행복해했던 그때의 정취를 이제는 나만의 기억 속에서만 꺼내어 추억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하며 감사하다.
어쩌면 다행이지 싶다. 더욱 고귀한 경험을 추억할 수 있는 여행이었고 그 끝자락에 내가 있었다는 것은 무엇인가 나만의 특별함을 만든 것 같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