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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블리 Oct 30. 2020

엄마, 우리에게도 봄이 왔나 봐

프롤로그 : 웬수에서 사랑으로

태어나자마자 엄마와 관계가 엉망인 사람이 있을까?



아마 있다면 그건 바로 나일거라고 생각했다. 한때는 엄마가 너무도 미웠고, 엄마는 나를 괴롭히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했었다. 오랜 우울증과 무기력증의 원인이 엄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엄마를 미워했었다. 그리고 이젠 누구보다 엄마를 사랑한다. 그리고 한때는 가족의 사랑을 모르고 살았지만 이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내가 이렇게 말 할 수 있는 이유는 정말 지독한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 글에 가족 때문에 힘들고, 가족이 원수 같고, 가족 때문에 살기 싫은 사람이 있다면 작은 위로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는다. 무조건 가족이니까 사랑하고, 무조건 가족이니까 이해하라는 진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이야기는 나도 싫어하기 때문이다.



"엄마한테 어떻게 그래?"

"그래도 널 낳아준 사람이야."

"자식이 부모한테 그러면 안되지."



이런 소리를 세상에서 제일 싫어했다. 왜 '엄마'라는 단어를 미화해 자식을 숨막히게 만드는 것인지 세상에 불만이 참 많았다. 그래서 한동안 엄마의 아픔을 외면한채 살았다. 엄마가 마음이 아프든 몸이 아프든 자업자득이라고 생했다.




자식을 그리 괴롭히니 벌을 받는 거지




엄마와 나의 관계는 딱 그랬다. 엄마는 내가 죽길 바랐고, 나는 엄마가 벌을 받길 바랐다. 그래서 나를 망가트렸다. 누구 좋으라고 지금 죽으라는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죽어 마땅한 인간이라면 철저하게 망가진 다음 엄마의 괴로운 모습을 보겠다는 생각을 했던 때도 있었다.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이렇듯 우리 모녀는 앙숙 중에 앙숙이었다.







그렇지만 지독한 우울증에서 빠져나와 사람답게 살겠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깨달았다. 처음부터 사랑만을 깨달은 것은 아니다. 내가 싶은 우울증과 무기력에 시달리며 내 자신을 너무 몰라주고 아껴주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나를 사랑하기 시작하니, 엄마도 결국 나와 비슷한 아픔을 갖고 오랜 세월을 살아오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엄마도 너무 어리고,
상처 많은 평범한 여자였다




나는 그것 너무 몰랐고, 엄마를 그저 '엄마'로만 바라봤었다. 그렇지만 엄마가 아닌 한 개인으로 엄마를 마주하자 그간 엄마가 나를 닥달하고 힘들게 했던 엄마의 내적 상처와 트라우마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책은 그런 엄마를 이해하고 난 후에 내가 미처 모르고 지나쳤던 평범한 삶 속에서 깨달은 사랑들을 담았다.



지독한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이한 엄마와 나의 관계 속 깨달음이 담겨있는 것이다. 가족이 웬수 같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있는 누군가에게 내 글이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 미처 몰랐던 당신의 아픔과 사랑을 조금씩 알아가며 자신이 놓친 행복이 무엇인가를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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