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호사 Mar 05. 2019

홋카이도의 빨간 뾰족 지붕 집같은 마음으로 산다는 것

바람에 흩날리는 가벼운 눈도 쌓이면 집을 무너뜨린다


작년 딱 이맘때, 나는 홋카이도에 있었다. 그 존재를 알 게 된 후 늘 로망을 품었던 하코다테의 야경, 오타루의 운하, 청의 호수, 비에이의 설원을 실제로 보게 된 것이다. 하지만 뚜벅이 여행자에게 분명 한계가 있었다. 운전면허도 없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대중교통과 투어 버스였다. 도심을 제외고 후라노 & 비에이를 대중교통만으로 이동하긴 무리였다. 그래서 그곳들을 가기 위해 한국에서부터 투어 버스를 예약했다.

     

JR 삿포로역(JR札幌駅) 북쪽 출구 방면 <종의 광장> 앞에서 가이드와 미팅을 한 후 커다란 투어 버스에 올랐다. 복잡한 도심을 지나 눈이 쌓인 길을 헤치고 비에이쯤 다다랐을 때, 가이드는 마이크를 들었다.

     

저 집들의 지붕 보이시죠? 기존에 보던 것과 좀 다르지 않나요?

     

긴 이동에 잠들었던 사람들은 비몽사몽 눈을 떠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몇몇 보이는 일본어 간판을 빼면 이곳이 일본인지 모를 정도로 꽤나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늘어선 집들의 지붕에 시선이 꽂혔다. 눈의 흰색과 대비되는 빨간색 뾰족한 지붕이 눈에 들어왔다. 보통의 일본 집들과는 달리 이곳의 지붕은 유독 뾰족하다는 게 느껴졌다.

     

당시 그 집을 찍은 사진이 없어 홋카이도 대학 건물 사진으로 대체 함


가이드의 말을 들어보니 연평균 290cm의 눈이 쌓이는 지역적 특성상 생겨난 지붕의 모양이라고 했다. 수분기 많은 무거운 눈이 쌓이면 보통의 지붕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지붕에 눈이 쌓이지 않도록 경사가 가파르게 만들었다고 했다.

     

당일치기 버스 투어는 아직 남아 있는 일정이 많았기 때문에 버스 기사님은 속도를 냈다. 빨간색 뾰족 지붕들이 뒤로 뒤로 사라지는 차창을 멍하게 바라보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지난날, 힘들어하던 내가 떠올랐다. 마음이 넓은 척, 뭐든 머리와 어깨 위에 잔뜩 짊어지고 살았던 날들... 나는 내가 괜찮은 줄 알았다. 마음이 넓으니까 이 정도 무게의 시련이나 고난은 충분히 견뎌 내리라 믿었다. 그러다 (누군가 보기엔) 어느 날 갑자기 무릎이 꺾인 것처럼 몸도 마음도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사람들은 그 상태를 ‘번아웃‘이라 말했다. 눈으로 가득한 숲길을 달리는 차 안에서 생각했다.

     

그때, 내가 빨간 뾰족 지붕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마음이 뜨거웠을 때는 오롯이 뭐든 내 몫이고, 내 책임이고, 내가 안고 가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뭐든 흡수하는 스펀지 같은 마음 대신 빨간 뾰족 지붕처럼 스르륵 흘러내리게 하는 경사가 가파른 마음이었더라면? 아마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홀로 외롭게 괴로워하진 않았을 것이다. 비로소 지나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당시 내가 밤마다 울며 괴로워하던 일들의 해결책은 사실 간단했다. 흘러가게 내버려두기. 그거 하나면 충분했다. 내가 품을 필요도 없는 고민들을 끌어안고 끙끙거렸던 것이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은 다하되 결과는 나의 몫이 아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노력을 했다는 것이지만, 노력을 한다고 꼭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일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그렇게 좀 쌓아두지 말고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필요가 있다. 바람에 흩날리는 가벼운 눈도 쌓이면 집을 무너뜨린다. 눈의 무게를 무시했다가는 모든 걸 잃게 될 수도 있다. 머리가 무겁고 마음이 복잡할 때면 생각한다. 홋카이도에서 만난 빨간 뾰족 지붕 집을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왜 여행가서 똑같은 곳을 3번씩이나 가?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