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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Aug 16. 2019

다들 마음속에 ‘백종원 매직’ 하나쯤은 품고 살잖아요?

나도 혹시 '적당히 빌런'은 아닐까?

  

  
한 때, <골목식당>을 즐겨 봤다.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요식업계 흙수저들을 수렁에서 건져내는 개조시키는 ‘백종원 매직’은 가히 예술의 경지였다. 하지만 출연자는 바뀌어도 매번 똑같은 문제가 지적되고, 인생역전을 하듯 드라마틱하게 변신하는 패턴이 식상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골목식당>을 굳이 챙겨 보진 않게 되었다.
  
<골목식당>과의 ‘손절‘에 있어서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 일부‘ 평범한 자영업자들의 행태였다. ‘빌런’이라 불리는 자들이 개과천선, 해피엔딩을 바라는 시청자들의 뒤통수를 후려 칠 때부터였다. 난 더 이상 <골목식당>을 시청하지 않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롭다는 결론을 내렸다. 방송이기 때문에 분명 좀 더 자극적인 인물과 포장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방송적 재미와 장치라고 치부하기에는 그들의 논리와 패턴은 한결같았다. 소비자들은 대다수가 청결한 주방에서 신선한 재료로 정직하게 만드는 음식일 거라 믿는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먹고 있던 건 불결한 주방에서 폐기 직전의 식재료로 만드는 얕은 꼼수로 만든 음식이었다.
  
나는 내가 입맛이 변해서 그런 줄 알았다. 30대 초반까지는 체하는 느낌이 뭔지 모르고 살았던 나였다. 언제나 들끓던 식욕이 나이가 들면서 점점 사그라들어서 그런 줄 알았다. 모르는 게 약이었다. 철학은커녕 위생도, 맛도, 서비스도 어느 하나 갖춰지지 않는 어설픈 음식들이 내 주변에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불황이고, 상권이고, 인테리어고, 홍보 부족이고 다 떠나서 기본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문제적 식당들이 넘쳐났다. 뚝심으로 포장한 고집, 효율성으로 포장한 꼼수, 진정성을 가장한 눈속임들이 가득했다. 기본을 갖춘 요식업자를 만나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지뢰 같은 ‘빌런’ 들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이게 과연 일부 요식업계 자영업자들만의 마인드일까?


나는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물론 ‘빌런’이었을 것이다. 어떻게든 쉽고 빠른 길을 찾았고, 들통만 나지 않는다면 적당한 꼼수로 눈가림을 했다. 그게 요령 있게 사는 거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너만 그렇게 애쓴다고 누가 알아주냐며, 세상이 바뀌냐며 적당히 요령 있게 살라고 ‘인생 회초리‘를 휘둘렀다.
  
그 조언(?)을 계기로 적당히 살던 나에게 <골목식당> 속 백종원의 한마디에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 정신이 바짝 차려졌다. 그가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지적하는 말들은 인생이라는 골목에서 ‘나‘라는 가게를 운영하는 영세 자영업자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혔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머리와 마음에 묵은 때 하나 없이 반짝반짝 청결했는지?
패기와 이상뿐만 아니라 성실함과 현실감각도 있었는지?
유통기한이 지난 것들을 머리에 이고 지고 ‘걱정 맥시멀 리스트’로 살진 않았는지?
꼼수로 세상을 눈속임하지 않았는지?
  
이렇다 할 빽도 없고, 든든한 자금줄도 없는 '인생'이라는 후미진 골목의 영세 자영업자인 나. 희망의 빛 한 줄기 들지 않는 침침하고 쿰쿰한 반지하 같은 인생에 어느 날 갑자기 백종원이 문을 두드리고 들어와 이렇게 말하길 바라던 날들이 있었다.
  
“이봐유~ 자리 털고 일어나유. 그리고 내가 하자는 대로만 해유!”
  
그리곤 그가 내 멱살을 잡고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태워, 펜트 하우스에 내던져 주길 바랐다. 그런데 모두 알다시피 세상에 백종원이라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고, 그가 내 인생에 저벅저벅 걸어 들올 일은 결코 생기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좋은 점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내 인생이 천지개벽할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내가 그렇게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또한 인정하게 된다.
  
<골목식당>의 수많은 빌런들을 보며 우리는 알게 되었다. 기본이 안 갖춰진 사람은 아무리 요령을 가르쳐 줘도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간단하다. 최소한 빌런은 되지 말자. 더 바라지도 말고 기본만 하자. 기본에 충실하면 중간은 간다. 쓸데없는 고집부리지 말자. 내 인생에 ‘백종원 매직‘은 결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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