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신변잡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호사 Aug 22. 2019

호칭, 그 불편함에 대하여

선을 넘지 마세요



얼마 전, 어느 푹푹 찌는 여름날 저녁이었다. 이 찜통 같은 집에서 밥하는 게 귀찮으셨는지 엄마가 외식을 제안하셨다. 우리의 목적지는 정해져 있다. 집에서 7분 거리의 동네 돼지갈빗집. 돼지갈비를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라 여기는 아빠가 절대 No를 외칠 수 없게 만든 계획적인 선택이었다.


야구 모자를 눌러쓰고 슬리퍼를 직직 끌고 돼지갈비 식당으로 향했다. 한낮에 비해 열기는 한풀 꺾였지만 여전히 공기는 뜨겁고, 하루 종일 해에 달궈진 땅에서는 열기가 올라왔다. 몇 걸음 걷지 않아도 인중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저녁이었다. 후다닥 식당 안으로 들어가 에어컨 바람이 가장 잘 닿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아직 본격 피크시간 전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돼지갈비 3인분과 맥주 한 병. 직원 분께서 빛의 속도로 밑반찬들을 테이블 가득 내려놓는다. 그리고 잠시 후, 시뻘건 숯불과 함께 들려온 그 한 마디에 내 얼굴도 숯불만큼 빨갛게 달아올랐다.


어머님 잠시만요~


어머님?! “엄마 조심해~ 숯불 들어오나 봐 “라고 말하는 찰나. 숯불은 엄마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이 테이블에 앉은 사람은 아빠. 엄마. 나. ‘어머님’이 엄마를 향한 호칭이 아니었다면, 남은 사람은 한 명뿐이다. 등골에 식은땀이 주욱 흘렀다. 숯불은 분명 내 등 뒤에서 넘어오고 있었다. 직원 분께서 칭한 어머님은 ‘우리 엄마‘가 아니라 ‘나’를 향한 호칭이었다. 아이도 없는데 졸지에 ‘어머님’이 되었다.


동네라고 너무 추레하게 하고 와서 그런 걸 거야... 야구 모자 쓰고, 선크림만 발라서 그런 걸 거야... 그런 걸 거야... 그런 걸 거야... 오늘 나의 차림을 되짚으며 ‘어머님’이라 불릴 이유들을 찾고 또 찾았다. 강렬하게 부정하고 싶은 나의 마음과 달리 현실은 현실이었다.


사실, 일찍 결혼한 친구는 벌써 딸이 한창 사춘기고, 보통은 유아기, 아동기 자녀 한 둘 쯤은 당연한 나이다. 그러니 직원분은 그저, 친정 부모님 모시고 저녁 식사하러 온 성인 여성을 향해 ‘손님’ 보다는 친근하게 대하고자 ‘어머님’이라 불렀을 것이다.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는 분의 입장에서 나름 생각해서 따뜻하면서도 정중한 표현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택한 호칭이었을 것이다.  
 
많은 싱글들이 어머님을 비롯해, 아주머니, 아줌마, 새댁, 사모님 등등의 호칭으로 불렸을 때의 그 아찔함을 한 번쯤 경험했을 것이다. 생각해봤다. 결혼하지 않은, 그리고 아이도 없는 사람에게 어떤 호칭이 적당할까?

대안은 많지 않았다. 내가 뭐 대단하다고 ‘고객님‘이라고 까진 불리고 싶지도 않다. 손님으로 밥 먹으러 왔으면 그냥 ‘손님’이라고 불러줘도 좋았을 텐데... 대가를 지불하고 서비스를 받는 손님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점원. 딱 그 군더더기 없이 수평적이고 거리감 있는 관계면 충분했다. 양념이 타지 않도록 돼지갈비 고기를 계속 뒤집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굳이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까다롭고 예민한 사람이 되기 싫어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언젠가부터 식당에 가면 ‘이모’라고 부르지 않게 된 것도 이런 호칭에 대한 ‘불편함’을 인지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식당이나 미용실, 옷가게 등에서 만난 생판 처음 보는 남조 차도 언니, 이모로 부른다. 가족에게 사용하는 호칭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부르는 게 이상했다. 사실, 몇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말까인 여든에 가까운 이모께 물 달라, 공깃밥 달라고 하진 않으니까. 단지 서비스를 주고받는 단순한 관계일 뿐인데 너무도 쉽게 혈연관계로 확장시켰다.


사회가 만들었지만 어쨌든 혈연관계라고 생각해서인지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선을 넘는 불편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외모에 대해, 습관에 대해, 상황에 대해 엄마도 안 하는 지적과 충고를 늘어놓았다. 서비스의 달인 특유의 친근함과 애정의 표현이라기엔 우리는 분명 초면이었다. 없는 자식도 만들어 내고, 없는 이모, 언니, 동생도 만드는 호칭의 마법. 진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다면 혈연 호칭은 정중히 사양하고 싶다. 지금 있는 진짜 가족 챙기기도 난 벅차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야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