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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사 Sep 23. 2019

유명해지고 싶지만 사람들이 날 몰랐으면 좋겠어

알아도 모른 척해주세요 제발


브런치에 첫 글을 쓴 지 햇수로 3년이 넘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라 ‘나를 위해 글을 쓰자 ‘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온라인 일기장처럼, 나의 일상과 나의 생각을 정리해 글로 남기고 싶었을 뿐이다. 생활 속에 글을 쓰는 습관을 들이고, 몸에 글 쓰는 근육을 늘리기 위한 연습을 해오고 있다. 브런치에 글을 쓴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에게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운이 좋았는지 여기저기 내 생각이 담긴 글이 공유되고 또 다양한 매체에 소개되었다. 덕분에 기대하지 않았던 많은 조회수와 생각지 못한 많은 구독자가 생겼다.


잠들기 전, 습관처럼 하루 동안 쌓인 구독자나 라이킷, 댓글 알림 기록을 확인할 때 깜짝깜짝 놀란 적이 있다. 알림 기록에서 아는 사람들의 이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오프라인에서도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브런치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놀라움 반, 나의 글에 구독과 라이킷을 눌렀다는 기쁨이 반이다. 물론 일 때문이긴 하지만 전화 통화를 하고 얼굴 마주하고 회의를 했던 사람들이다. 브런치 활동명을 실명으로 한 경우나 꼭 실명이 아니어도 프로필에 공개한 사진, 직종과 직업을 언급한 경우 대략 누구겠구나 추측이 갈만한 인물들이다. 일이 아닌 넓고 넓은 이 온라인 세상에 그것도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인 ‘브런치’에서 만났다는 것이 신기하고 또 놀라웠다.


내 브런치에 구독과 라이킷을 누른 주변 사람의 브런치에 들어가 한참, 그들이 써온 글을 읽어 본다. 오프라인에서 만났던 그들은 업계의 이름난 프로였다. 하지만 브런치의 글 속 그들은 훨씬 따뜻하고 섬세한 사람들이었다. 시간과 상황에 쫓겨 만나는 얼굴과 차분히 써 내려간 글은 큰 차이가 있었다. 생각의 깊이와 결, 감성의 색깔과 향이 실제로 만났을 때 보다 훨씬 진했다. 흩어지는 말이 아닌 정리된 글로 느껴지는 매력이 분명 더 컸다.


난 본명 대신 필명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내가 누구인지 모른 채 글만 보고 구독과 라이킷을 눌렀을 것이다. 내가 본명이 아닌 필명을 사용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좀 더 자유롭게 글을 쓰고 싶기 때문이다. 굳이 직업이나 구체적인 환경을 밝히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필명을 사용한다고 없는 일을 거짓으로 꾸며내 쓰진 않는다. 난 단순해서 거짓으로 돌려 막기 할 능력이 없다. 그저 누군가를 의식하면서 애써 재단하거나 거르지 않고, 머릿속의 생각을 자유롭게 글로 표현하고 싶을 뿐이다.


나는 절친들에게 ‘취미로 블로그에 글을 쓴다’ 정도만 알렸지 그곳이 브런치인지, 내가 어떤 글을 쓰는지, 또 어떤 이름으로 활동하는지 일체 정보를 주지 않았다. 덧붙여 혹시라도 내가 쓰는 글을 알게 되더라도 ‘모른 척해달라 ‘고 당부했다. 자극에 민감한 개복치형 인간의 특성상, 누군가 나를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난 머리가 얼어 버린다. 딱딱해진 머리로 쓰는 글은 분명 말랑한 감성으로 쓰던 이전의 글과 결이 달라질 것이 분명하다.


언젠가 해버지(해외축구의 아버지) 박지성 선수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축구는 잘하고 싶은데
유명해지고 싶진 않다


   
그의 말을 빌려 나의 바람을 적자면 다음과 같다.


글을 잘 써서 유명해지고 싶지만
사람들이 날 몰랐으면 좋겠어


브런치에서 존재를 확인한 주변 사람들을 온라인에서 만난다고 해도, 난 굳이 그들의 글을 봤다고 인사를 전하진 않을 것이다. 그저 브런치에서 라이킷을 눌러 조용하지만 뜨거운 응원을 전할 뿐이다. 그들도 나처럼 상대의 존재를 알아도 모른 척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야 지금까지 그래 온 것처럼 누군가의 눈도 의식하지 않고 꾸미지도, 포장하지도 않은 내 생각을 오롯이 글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서로의 존재에 대해 조용히 눈을 감고,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오래도록 ‘글 쓰는 기쁨‘을 만끽하길 바란다. 나와 당신을 위해,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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