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사 Jun 08. 2017

엄마와 여행하며 알게 된 것들

내 마음 속 1순위 여행 파트너


52년 생. 지금의 내 나이에 벌써 애가 넷이었던 여자.

가난과 전쟁으로 다른 형제들을 잃고 7살 위의 언니와 단 둘이 친척집을 전전했던 여자.

외로웠던 유년 시절의 기억 때문에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아이를 넷이나 낳았던 여자.

평생을 가난과 싸우느라 화장품 냄새보다 땀 냄새가 익숙했던 여자.  

그 여자가 바로 우리 엄마다.


엄마가 환갑을 맞던 해, 처음으로 둘이 해외여행을 떠났다.

두 여자의 목적지는 후쿠오카. 온천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겠다는 단 두 가지의 목표 뿐이었다.  

2년을 꼬박 모은 돈으로 친구분들과 떠난 3박 4일 중국 단체 여행을 제외하고 첫 해외 자유 여행이었다.

무엇보다 딸과 단둘이 떠나는 최초의 여행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엄마는 매일 집에서 보던 엄마와는 확연히 달랐다.


음식에 대한 도전 정신이 뛰어나다

평소 엄마의 식습관은 그랬다. 치킨 같은 튀김 음식, 자장면 같은 기름진 밀가루 음식, 족발 같은 향이 강한 음식을 즐기지 않으셨다. 그저 김치나 나물 반찬에 잡곡밥이면 충분했고, 군것질 따위는 하지 않으셨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중년 여성의 입맛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국 땅의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시면 어쩌나 걱정을 했다. 일본 음식이 동남아나 구라파에 비해 향신료 공격이 약하지만 그래도 익숙지 않은 음식이라는 사실은 분명했기 때문이다. 딸의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엄마는 현지 음식에 특별한 거부감이 없었다. 낫또나 오크라도 맛있게 드셨다. 회는 없어서 못 드실 정도였고, 여행의 마지막 식사였던 치카에(稚加榮)의 화정식(和定食)을 먹은 후에는 명란 튜브까지 잔뜩 사 오셨다. 후에 함께 떠난 여행에서 난 근처에 가지 못했던 대만의 취두부, 베트남의 두리안, 짜까라봉(민물고기를 양념에 재워 각종 허브, 채소와 볶은 베트남 하노이의 생선 요리) 등을 엄마는 맛있게 드셨다. 그 모습을 보니 엄마는 세계 어디를 가든 굶고 다니지는 않으시겠구나 싶어 안심이 됐다.


엄마는 기분이 좋으면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집에 있을 때도, 청소를 할 때나 김치 거리를 다듬을 때, 가요무대를 볼 때는 엄마가 노래를 부르신다. 가사도, 음정도 교묘하게 틀리지만 입 밖으로 내지르는 그것은 분명 노래다. 그것은 엄마의 노동요이자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기분이 좋다기보다는 그저 지루한 시간을 보내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그런데 엄마가 정말 기분이 좋으면 조용히 입 안으로 흥얼흥얼거리거나 허밍을 한다. 야나가와 성을 둘러싼 크고 작은 수로를 따라 뱃놀이를 할 때와 유후인의 설산을 보며 노천 온천을 할 때. 그리고 석양이 물드는 모모치 해변을 걸을 때까지... 크지 않은 소리로 순간의 기쁨과 즐거움을 콧노래로 표현하셨다. 어느 순간부터, 엄마의 콧노래가 감지되면, 100점짜리 시험지를 받은 초등학생처럼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엄마가 좋으면 딸도 좋다.    


카페에 가는 걸 어색해하지 않는다

내가 끌고 가기 전까지, 엄마는 백화점 문턱을 밟아 보지 않은 사람이다. 대신 평생 동네 시장을 다녔고, 1만 원짜리 바지를 사고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런 엄마를 이끌고 여행을 갈 때면 늘 하는 소리가 “돈 많이 들 텐데…”다. 4남매 먹이고 키우느라 몸에 밴 알뜰함은 엄마의 생각과 행동을 돈 안에 가둬 버렸다. 태어나서 지금껏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적이 한 번도 없었던 엄마. 팍팍했던 엄마의 삶은 여행의 즐거움을 알게 된 후부터 조금씩 달라졌다. 커피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달콤한 디저트를 맛보며 에너지를 충전한다. 딸들에겐 흔한 일상이 엄마에겐 여행을 와서나 할 수 있는 고급진(?) 일탈이다. 작은 여유, 소박한 행복의 기쁨을 알게 된 엄마는 이제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말한다. “딸, 오늘 날도 좋은데 커피나 한잔 하러 갈까?” 하며 나를 맥도널드로 데리고 가 천 원짜리 커피를 사 주신다. 남들이 보면 그게 뭔가 싶겠지만 우리 엄마에겐 어쩌면 큰 사치다. 그 소소한 변화가 나를 기쁘게 한다. 돈에 치여, 일상에 지쳐 살던 엄마의 변화가 여행의 큰 수확이다.   


가족과 여행을 하면 좋은 점 중에 하나는 여행지에서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늘 보던 집에서의 모습이 아니라 낯선 환경에 처했을 때 나타나는 가족의 새로운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다. 환경이 바뀌니 대화의 주제도 달라지고, 또 감흥도 다르다. 엄마의 새로운 보습을 발견하는 즐거움 때문에 자꾸 엄마와의 여행을 떠나게 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