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다음 달에는 뭐 하지?
새해가 시작하면 늘 뭔가를 계획하고, 결심하고, 실천하겠다고 의지를 활활 불태운다. 외국어 공부, 다이어트, 재테크, 다이어리 쓰기 등 결심의 열기는 3일을 넘기지 못하고 차갑게 식었다. 4N 년째 그렇게 살았으니 지겨울 법도 한데 올해 초 또 결심했다. 그런데 이번은 뭔가 기세가 달랐다. 이 나이쯤 되면 내가 뭘 잘하고, 못하는지를 잘 안다. 그러니 성공 가능성이 높은 느슨한 계획을 세우는 짬이 찼다.
< 난생처음 프로젝트 : 2024년 한 달에 한 가지씩 평생 안 해봤던 일 해보기>가 그렇게 시작됐다. 변화, 시작, 낯선 사람, 도전 따위의 단어에 알레르기가 있는 내향형 안정주의자는 이런 결심을 했다는 자체가 스스로 대견했다. 매번 하던 일을 하고, 먹던 음식을 먹고, 만나던 사람을 만나고, 가던 곳을 가는 게 편했다. 하지만 거기서 얻을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 스스로 벽을 쌓고 그 안에서 우물 안 개구리를 자처하는 일은 나를 조금씩 갉아먹었다. 남이 시켜서 하는 것보다 스스로 하고 싶어서 할 때의 기쁨이 더 크니 이보다 좋은 선택이 없다. 아직 두 달이 남았지만 지난 열 달 동안 나는 무엇을 했을까?
한물 아니 물이 빠질 대로 빠진 SNS, 인스타그램. 일 때문에 아이디를 만들기는 했지만 굳이 들어가 보진 않았다.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개미지옥 같은 중독성이 무서웠다. 게다가 텍스트에 비해 비주얼에 약한 내가 그곳에서 살아남을 리 없을 거로 생각했다. 책을 출간하면서 주위에서 ‘너도 퍼스널 브랜딩 좀 하라’며 부추겼지만 날고 기는 사람들이 넘쳐나는데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인형 같은 외모도, 번쩍번쩍한 명품도, 인테리어 잡지에 나온 것 같은 집도, 전문가 뺨치는 요리 솜씨도, 사랑스러운 아이도, 하다못해 귀여운 반려동물도 없으니, 승산 없어 보였다. 그래도 그냥 시작했다. 브런치에는 쓰지 않는 호흡 짧은 글을 자료 보관하듯 인스타에 올린다. 1일 1 포스팅하며 작고 귀여운 조회수와 구독자 수가 있을 뿐이지만 내 장점,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꾸준히 뭘 한다는 행위를 이어갈 뿐이다.
관심은 받고 싶지만 주목받기는 싫어하는 내향형 인간이 내 손으로 네이버 인물 정보를 등록했다. 쉽게 말해 네이버 검색창에 호사라는 이름을 치면 내 인물 정보가 나온다는 뜻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룬 한강 작가님 같은 이름난 작가도 아니고 소속사도 없는 인생은 셀프인 나는 낯부끄럽게 내가 등록했다. 신청란에 필요 항목을 적고, 인증할 자료를 첨부해 심사가 끝나기를 며칠 기다렸다. 얼마 후 무사히 등록됐다는 메일을 받았다. 등록을 위해 후기들을 살펴봤을 때 반려됐다는 사례가 많아 오돌뼈(오도독뼈)를 씹으며 오돌오돌 떨었는데 별 무리 없이 등록이 완료됐다. 과연 몇 명이나 이걸 검색할까 싶지만 ‘없는 것보다 나으니까.’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1월 인스타 시작 이후 텍스트 위주로 업로드하다가 3월부터는 릴스를 시작했다. 영상 업계에 몸담고 있지만 나는 편집이 아닌 기획, 구성을 하고 대본 쓰는 일을 한다. 그러니 내 손으로 영상 편집을 할 일이 없다. 전문가들이 다 알아서 하고, 시사 때 흐름이 어색하거나 추가했으면 좋을 부분을 체크하거나 제안할 뿐이다. 그게 일이었는데도 내 손으로 영상 편집하는 건 쉬운 게 아니었다. 그냥 ‘아는 것’과 직접 ‘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하지만 이과생들의 은혜로 나 같은 편집 무식자도 그럴싸한 영상을 만들 수 있는 영상 제작 도구가 널렸다. 그렇다고 복잡한 편집을 하는 건 아니다. 소스 영상을 고르고, 글에 맞게 길이를 자르고, 자막을 넣고, 효과를 넣어 짧은 영상을 만든다.
머리가 복잡할 때 낮이라면 등산이나 산책을 하고, 밤이라면 빵 만드는 영상을 본다. 왜 그런지 반죽을 하고, 성형 후 데코를 하고, 오븐에 넣어 빵이 부푸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편해졌다. 그렇게 보기만 하던 빵 만들기를 5월에는 직접 해봤다. 초심자가 해보기에도 좋고, 내가 좋아하기도 하니 스콘을 배우러 원데이 클래스가 있는 망원동에 갔다. 푸근한 사장님의 지도하에 처음 보는 분과 짝을 이뤄 수다를 떨며 스콘을 만들었다. 재료 계량도 다 되어 있어 반죽을 하는 것뿐인 단출한 체험이지만 밀가루가 스콘이 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변수를 예측하고, 대응하는 게 흥미로웠다. 마치 삐치기 대장 5살 어린이 같은 스콘 반죽은 조금만 레시피에서 벗어나면 딱딱하거나, 푸석하거나, 시커멓거나, 축축한 스콘이 되고 말았다. 그날 이후 카페나 빵집에 가면 그 무수한 함정에 빠지지 않고 무사히 완성된 빵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 빵을 만들기 위해 새벽이슬을 맞고 출근했을 제빵사들이 고마워 전에 없는 큰 목소리로 “빵 잘 먹겠다”라고 인사를 하고 나온다.
4월에 스콘 만들기에 이어 빵에 대한 흥미는 5월 대한민국 빵의 성지, 대전 성심당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대외적으로는 대전 외곽에 잠들어 계신 외할머니 산소에 간다는 그럴싸한 명분을 만들었지만 태어나 한 번도 안 가본 성심당에 직접 가보고 싶은 욕심에 1박 2일 대전 여행을 계획했다. 숙소마저 성심당이 바로 보이는 곳에 묵으며 1박 2일 여행 동안 성심당을 4번이나 가는 기염을 토했다. 매일 빵축제가 벌어지는 것 같은 도시, 대전에서 성심당 빵 봉지를 든 사람을 만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디서도 맛보지 못한 탁월한 빵 맛 때문에 성심당에 가는 게 아니다. 미친 가성비와 빵으로 만든 놀이동산에 온 듯 설레는 분위기가 밋밋한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어 줬다. 오직 성심당에 가기 위해 퀵턴 여행(원하는 물품을 사기 위한 당일치기 여행)하는 사람들이 의아했는데 다녀오고 나니 이해가 갔다.
20~30대 시절에는 유명하다고 하면 묻고 따지지도 않고 가보고, 먹어 보고 해 봐야 직성이 풀렸다. 하지만 내가 따라잡기에는 금전적, 체력적, 심리적 한계가 많았다. 그렇게 하나둘 놓고 살다 보니 10대 조카들에게 그것도 모르냐는 핀잔을 듣는 상태가 됐다. 이번 달에는 뭘 해볼까? 고민하다가 문뜩 눈에 들어온 단골 스콘 가게의 신메뉴 – 두바이 초콜릿 출시 소식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SNS를 점령한 핫한 디저트라고 하지만 굳이 그 가격에 이걸? 이란 생각이 먹기 전까지 머릿속에 가득했다. 손가락만 한 초콜릿이 스콘보다 비싸다니... 맨 정신(?)이라면 택하지 않을 두바이 초콜릿을 <2024 난생처음 프로젝트>를 핑계 삼아 덜컥 샀다. 초콜릿 안에 고소한 피스타치오 페이스트에 버무린 바삭한 카다이프면이 시각, 청각, 촉각, 미각을 모두 자극했다. 비주얼과 맛, 트렌드 모든 걸 잡고 싶어 하는 요즘 사람들이 열광할 이유가 충분했다. 무엇을 만들던 한 가지가 아니라 다각도의 즐거움을 만들어야 살아남는 시대라고 입안의 두바이 초콜릿은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하와이에 작업실 차리고 싶어.” 7월 무더위가 시작되자 그 말이 떠올랐다. 첫 책을 낸 후 책 대박 나면 뭐 하고 싶냐는 친구의 질문에 별생각 없이 답했던 말이다. 첫 책도, 두 번째 책도, 세 번째 책까지 냈지만 하와이는커녕 경기도 어느 귀퉁이 어디에도 작업실을 차릴 여유가 없는 여전히 무명작가다. ’ 하와이에 작업실은 못 차려도 하와이 훌라는 출 수 있지 않을까?’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훌라를 배우러 갔다. 바람, 바다, 산 등 자연의 모든 것을 몸짓으로 표현하는 훌라. 마치 몸으로 시를 쓰고,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았다. 훌라 초심자는 골반이 뻣뻣해 삐거덕댔지만 눈 감고 하와이 전통 음악에 맞춰 흔들흔들 훌라를 추고 있으니 내 발은 연남동 지하 댄스 연습실에 붙어 있지만, 기분은 하와이 호놀룰루 해변 모래사장 위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두통이 심해저 홧김(?)에 커피를 끊었다. 많이 마실 때는 하루에 서너 잔, 적어도 하루에 한 잔은 습관처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던 커피 애호가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여전히 커피가 주는 향과 여유를 사랑하지만 내 몸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똑같은 일상에 커피가 빠지니 두통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 텅 빈 몸과 마음을 채우기 위해 차를 배우러 갔다. 티소믈리에의 차분한 설명으로 다양한 차를 시음하고, 페어링 한 티 푸드도 맛봤다. 커피처럼 캄캄했던 밤이 지나고 맑고 차분한 새 아침 같은 차라는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다.
(삼척 시민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무식한 경기도민은) 솔직히 삼척이 어디 붙어 있는지 몰랐다. 여행지를 택할 때 강원도 하면 강릉이나 속초가 우선순위였다. 뚜벅이라 교통이 편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름도 낯선 삼척에 덜컥 가고 싶어졌다.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삼척이라는 이름에 꽂혀 숙소를 정하고, 루트를 짰다. 직접 가본 삼척은 강릉, 속초, 양양, 고성의 명성에는 가려져 있지만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다분한 관광지였다. 성수기를 피해 가서 그렇겠지만 조용하고, 한적하고, 투박한 분위기에 마음이 편했다. 바다가 보고 싶다면 강릉, 속초 말고 이제 떠올릴 곳이 생겼다.
사춘기도 훌쩍 지나 갱년기가 코앞인데 엄마와 싸우고 집에 있기 싫어 짐을 쌌다. 어디를 가야 할까 고민하다가 하늘이 계시를 내리듯 세 글자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설. 악. 산. 지금 이때를 놓치면 곧 눈이 내릴 테고, 내 귀여운 체력으로 살산을 오르긴 무리였다. 언젠가 가보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설악산. 이때를 놓치면 내년을 기약해야 한다는 사실에 조바심이 나서 냉큼 버스표를 예매했다. 장장 9시간 30분의 고행이었다. 악으로 깡으로 버틴 끝에 무사히 하산했지만 허벅지와 무릎은 한동안 너덜거렸고, 양 새끼발가락에 생긴 피멍은 몇 주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남아 있다. 생애 첫 설악산은 평소에 산 좀 탔다고 까불지 말고 겸손하게 산을 오르라고 호되게 타일렀다.
1월부터 10월까지 평생 해 본 적 없는 10가지 일을 했다. 가던 길만 가고, 먹던 것만 먹고, 하던 일만 했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새로운 세계가 시작됐다. 새로운 것 앞에서 늘 겁내고 주저했던 내가 한 뼘 정도는 더 대범해진 것 같다. 프로도전러들이 보기에는 비웃을 도전일지 모르지만 내 기준에는 엄청난 발전이다. 어쩌면 이 기세로 계속 도전하다 보면 내 평생 절대 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한 번지점프나 무대 위에 서기 같은 것도 하게 될지 모르겠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그 끝이 뭐가 될지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알게 된 열 달이었다. 2024년이 아직 두 달이 남았다. 그건 내가 평생 해보지 않은 두 가지 일에 더 도전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다음 달에는 뭐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