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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삐삐 Sep 19. 2021

오, 마이 달리(Dali)

스페인 - 피게레스(Figueres)


저는 창의적인 사람들을 동경해요.

대부분 예술가들이시죠.

그 자유로운 사고의 원천이 궁금하고,

무에서 유를 빚어내는 재능이 부러울 따름입니다.

'노력형 천재'라는 말도 있지만 사실

열심히만 한다고, 누굴 따라 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영감에 사로잡힐 때 반짝하고 탄생되는 그런 거 있잖아요.

'그분'이 오셔야 발휘되는 그런 거요.


저는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를 가장 좋아해요.

다른 훌륭한 화가들도 많지만

그 기발한 예술세계가 꽤나 직관적이라

배경지식이 없는 저 같은 이도

캬, 와, 하, 이야 하며 감탄사를 남발하게 되거든요.

이 영감은 대체 어디서 온 걸까, 진짜 궁금해요.

그 상상을 실현해내는 것도 대단하고요.

저는 스페인에 프라도 미술관보다 달리 뮤지엄이 더 기대됐어요. 

실제로도 더 인상 깊었고요.


저는 바르셀로나에서 기차 피게레스(Figueres) 당일 왕복했어요.

오직 달리를 보는데 하루를 할애했죠.

그런데 그 많던 한국 여행객이, 아니 동양인 자체가 그날 거기엔 한 명도 없더라고요.

달리의 고향 마을에서 저는 새삼 알게 됐죠.

아, 내 취향이 확고하구나.


기억의 지속(The persistence of Memory,1931)으로 달리에 입문했는데요,

흘러내리는 시계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 작가 누구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모네와 고흐의 풍경, 르누아르의 인물화만 보던 사람이었거든요.

아름답잖아요.

어떤 선배가 자신은 드라마를 안 본다며

'내 삶도 피곤한데 허구까지 보면서 정신을 피곤하게 싶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딱 그 느낌으로다가

밝은 그림을 보며 밝은 생각을 하고 싶었거든요.

사실 초현실주의라는 말자체도 와닿지 않았어요.

현실(realism)을 초월해(sur-)?

네, 저는 판타지 영화에도 흥미가 안 생겨요.

그러던 제가 달리를 알게 되었답니다.


달리 뮤지엄은 외관부터 '달리'에요.

누가 이런 디자인을 생각해내겠어요?

내부의 건물구조부터 작품 하나하나가 감동입니다.

이 아이디어를 온전히 흡수해가고 싶었어요.

실상 그 기억은 오래가지 않았지만요.

그 순간은 정말 가슴 벅찼어요, 정말로.


제 직업도 창의성이 필요한데요,

단순노동의 비중도 만만찮아요.

밖에서 보면 모르겠지만 실상은 그래요.

시대가 달라졌어도 구식의 것은 사라지지 않고

시대가 달라졌다고 새로운 걸 시도하기 힘들죠.

그래서 직장일에 치일 때면

멍텅구리가 되어가는 듯한 위기감도 찾아와요.

신규직원의 합격성적은 고공행진이나

진입과 동시에 발전이 정지된다는 업계의 자평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어 유감이네요.

그래도 통통 튀는 후배들에게 배울 게 많아요.


저는 유연한 고를 바라요.

이토록 다채로운 세상에서 몇 가지만 고집하며 산다는 게 아깝잖아요.

그렇다고 지식이나 예술을 소비만 하던 사람이 갑자기 생산해내는 수준이 되진 않겠지만,

내 영역에서 현명한 소비자가 되면 되는 거겠죠.

늙음을 최대한 지연시키기 위한 전제조건이기도 할걸요?

혈액순환이 막히면 우선 쓸 수 있는 약이라도 있지,

생각이 막히면 자기만 옳다고 우기니 방법이 없잖아요.

보톡스를 맞고 염색을 하고 옷을 젊게 입는다고

고루한 생각까지 가려지는 건 아니니까요.


인생이 더 재미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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