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타는 한국인들에게 한국 드라마 촬영지로 한국인들에게 알려져 있는 곳입니다.
도쿄 사는 일본인이 일본 어디 어디 가봤냐고 묻기에 여기도 말했거든요?
그런데 그 시골엔 뭐하러 갔냐며 웃더라고요.
제가 일본 여행을 좋아하긴 하지만
제가 무슨 일본 덕후도 아니고 촌동네 구석구석까지 찾아다닐 정도는 아니란 말이죠.
헌데.. 20대 초반인 상대방에게 "너 아이리스 알아?"라고 묻기엔 너무 옛날 드라마라
그쪽에 출장차 간 거였다는 팩트 한 줄만 말하고 서둘러 대화 주제를 바꿨습니다.
여기엔 일본에서 가장 깊은 칼데라 호수, 다자와코가 있어요.
왠지 전설이 하나쯤 있을 것 같지 않나요?
영원한 미와 젊음을 원했던 다츠코라는 여성은
호수에 찾아와 물을 마셨고
너무 많이 마셔서 용이 되었대요.
이를 비관해 호수로 뛰어들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지나친 욕심을 경계하고자
금빛 다츠코상을 세웠다고 합니다.
막판까지 양쪽을 저울질하다 주사위를 던졌는데
그 즉시 감이 올 때가 있어요.
망. 했. 다.
최근에도 선택과 동시에
역대급 똥볼임을 알아챈 적이 있죠.
제발 1초 전으로 돌아가길 얼마나 바랐던지요.
이게 아니네.
저거였어.
내가 왜 그랬을까.
저걸 했어야 했어.
내가 놓아버린 카드를 당당히 거머쥔 이의 환희에
속이 열 배는 더 쓰라려옵니다.
저는 갈림길에 섰을 때
최대한 구체적으로 시나리오를 써봐요.
겁이 많거든요.
벌어지지 않은 일이기에 장담할 순 없지만
상식의 범위란 게 있으니
내 계산이 맞아떨어졌을 땐 뿌듯한 거고,
빗나간 예측에 대해선 미래를 어찌 다 알겠냐며 스스로를 다독이면 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커피가루에 프림을 넣으면 블랙 본연의 것은 사라지지만
누런 믹스커피가 되면서 새 즐거움을 선사하죠.
하지만 마음에 끼얹은 욕심은
내 갈길을 잃게 해요.
양심이란 게 있으니 처음부터 마구 붓진 못하고요,
반 스푼이 한 스푼이 되고
그게 두세 스푼이 돼요.
종국엔 이도 저도 아닌 고통스러운 맛이 되어
하수구로 쏟아버릴 수밖에요.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다는 유행가 가사를
도피처 삼고 싶지만
솔직히 본인은 알잖아요,
일이 왜 이렇게 된 건지.
실패를 인지한 후에야
내가 진짜 뭘 원하는지,
내 원래 목표가 뭐였는지
돌아보게 되네요.
허영이 기대를 부풀려 내 맘대로 장밋빛 미래를 그렸음도
인정합니다.
긍정의 힘은 이렇게 아무 데나 쓰는 게 아닌데 말이죠.
말한다고, 생각한다고 다 그렇게 되는 건 아니니까요.
'초심'이란 게 클리셰 같았는데
변질된 마음으로 풍파를 겪어보니
그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다츠코도 대놓고 벌컥벌컥 마시기보단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홀짝거렸던 거 아닐까요?
설마 용까지 될 줄은 몰랐겠죠.
평생 아름답고 싶던 그녀의 욕망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렸습니다.
그림 같은 호숫가에 금빛 반짝이며 홀로 서있던 아가씨가
아련히 떠오르네요.
요행도 생의 묘미이고,
목적지가 없는 여행도 스릴 있죠.
그래도 내 손에 있는 걸 꽉 쥐고
노선을 분명히 하는 것도 좋겠네요.
세상엔 나를 흔들리게 할 만한 멋진 것들이
너무나 많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