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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삐삐 May 30. 2023

인간은 언어의 동물

조카 보며 자아성찰 3

우리나라 사람들은 '친구'를

'같은 해에 태어난 사람'으로 깔끔히 규정 지어버리지만

사실 'friend'는 숫자가 아닌 말이 통하는지에 달려있다.

나이가 들수록 그게 더 느껴지는데

일례로 내가 가정주부가 아니고 육아를 하는 입장이 아니기에

또래의 그런 삶이 공감되지 않고

오히려 현재 나와 같은 목표를 추구하는 한참 아래의 후배와의 대화에

더 재미와 진정성을 느끼게 된다.

즉, 프렌드쉽의 정의에 더 유연해질 필요를 느끼는 것이다.


혼자 나갔다 오려고 몰래 현관문을 열었는데

그새 소리를 듣고 안방에서 뛰쳐나온 아이.

그런데 너무 짠했다.

자기도 데려가라고 자기 가슴을 두 번이나 치면서 "으-" 하는 거다.

하지만 지금 밖은 너무 춥고 더구나, 내복차림인 넌 나와 같이 갈 수 없어.

말을 못 할 뿐 모든 감각이 살아있기에

아이는 온몸으로 의사를 표현했고

그 간절함은 그대로 전해져

 엄마결국 아이의 외출 준비를 도왔다.

아이는 그랬겠지,

야호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나 봐.


아이는 보통의 남아처럼 자동차를 좋아하고

특히 파란색 용달에 꽂혀있다.

니 원대로 실컷 보라고 횡단보도에 유모차를 세워뒀더니

아이는 손짓까지 해가며 본격적으로 재잘대기 시작했다.

버스, 구급차, 승용차, 오토바이 등이 예고 없이 나타났다 지나갔고

신호등에 선 차들을 향해 무언가 신나게 말했다.


제가 말이 안 터져서 그렇지

저도 할 말 많아요.

다 보이고 다 느껴지고 알만큼은 다 안다고요.

여러분이 내 말을 못 알아들을 뿐이에요.

제가 말귀 다 알아듣는 거 아시잖아요.

보이는 대로 바라보고, 느껴지는 대로 표현하고, 알고 있는 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요.

내가 온몸과 맘으로 뿜어내는 게 느껴지나요?

제가 언어로 빚어낼 수 있을 때까지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아직 시간이 필요해요.

저도 그 언어의 농도에 다다르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고요.

우리 그때 제대로 같이 이야기해요.  


한국인끼리 서로 한국말을 하는 게 언어의 1차원적 동일성이라면

사람들이 진정 어려움을 느끼는 건

그 너머 리적 동일성의 부재에서 오는 것 같다.

한국 할머니와 미국 할머니는 바디랭귀지를 동원해서라도 소통을 시도하겠지만

대와 꼰대가 아닌 자는 영원히 한 배를 탈 수가 없는 거다.

나도 차라리 영어로 외국인과 말하는 게 더 편할 때가 있다.

어가 모자랄지언정 왠지 모를 사고의 자유를 느끼기 때문이다.

언어는 생각의 범주를 그대로 드러내고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을 언어로 표현한다.  

우리는 자신과 교집합을 크게 이루는 이를 만나고 싶고

대화하고 싶다.


나는 오늘 누구와 '통'하였나.

내 친구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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