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엽편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랑한삐삐 Nov 07. 2023

새소년

 “니가 MZ야?”

 “범 MZ인데요?”

 주민번호 앞자리가 8이라 사전적으로는 M이니 틀린 말은 아니다. 물론 어디 가서 절대 그 알파벳 따위는 꺼내지 않는 분별 있는 인물이니 걱정은 마시라.    

 “이걸요?” 

 “제가요?” 

 “왜요?”

 막 나가는 회사 생활로 속 편히 살아가는 선배 하나에게 그렇게도 교육받은 이 3종 세트를 K는 오늘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자아가 도대체 얼마나 강한 건지 선배의 꾸준한 노하우 전수에도 K는 전혀 가스라이팅이 되지 않았다. 오늘도 오로지 본인의 꿋꿋한 신념으로 부장과 입씨름을 했고, 아예 백기를 든 건 아니지만 찝찝함은 남았다. 미운털도 하나 더 추가됐겠지? 그러거나 말거나.

 바야흐로 AI가 실시간으로 느껴지는 시절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이천 년대 초반까지 먹히던 방법으로 조직을 움직이려 하다니. 코로나를 거치며 사회가 전 지구적으로 급변했고 강산의 변화 주기도 십 년이 아닌 지 오래인데 여전히 무조건적인 상명하달과 면피용 허례허식, 무방비적 책임전가를 조금도 버리지 못한 곳에 자신이 내내 갇혀 있다는 사실이 K는 너무도 자존심이 상한다. 레파토리가 좀 너무하지만 ‘내가 20년 뒤에 여기 이러고 있으려고 수능 점수를 그렇게 많이 받았던가’하는 어처구니없는 회상에 빠질 정도라면 그 고뇌를 웬만큼은 짐작하시려나. 

 소위 ‘관행’이란 것에 대해 정정을 요구할 줄 알고 자신의 권리를 내세울 줄 아는 이들을 ‘밀레니얼’과 ‘제트’라는 이름으로 묶어 힐난조로 부담 없이 언급하고 반사회적 행태에 마구 갖다 붙이는 것이 K는 아이러니다. 뭐, 기어이 나이로 구분 지으려 한다면 –열 살 아래의 그 친구들이 기분 나빠하지만 않는다면- 나도 슬쩍 그들에게 손을 보태리. 고인물 보다는 어떻게든 흐르는 샘이 되고 싶으니까.          

 부장 L은 대한민국의 대표적 꼰대다. 본인이 선량한 리더라고 스스로 과대평가하는 유형이라 그와의 대화는 웬만해선 성과가 없다. 그가 K를 비난하는 첫 구절은 항상 ‘어째서 20대 젊은 애들 같은 생각을 하냐’이다. 논리적으로나 규정으로나 대놓고 면박을 주진 못해도 –사내에서 갑질신고를 목격한 고로- 대신 L은 명백한 실수를 발견하거나 과거 자신이 윗사람을 허리 굽혀 모시던 시절이 떠오를 때면 부장과 사원의 평등을 바라는 이 버르장머리 없는 세대가 괘씸하다. K는 그가 단전에서부터 끌어모아 뱉은 고함을 하나 녹음해 두었고, 퇴사만을 꿈꾸며 살아가기에 이 부당과 부조리를 한 번은 갚아줘야겠다며 기회를 노리고 있다.

 끝내 발산 못한 반박 거리들로 뒷목이 조여 오는 기분 나쁜 상태로 K는 제 책상으로 돌아갔다. 옆자리에 앉은 사원 P는 진짜 Z로서 직장 생활이 평탄해 –스트레스가 없겠냐마는- 보인다. 그래서 부럽다. 아이팟을 끼어야 일의 능률이 올라간다는데 그 진실이야 모르겠지만 일하러 모인 곳에서 무례하지 않게 효율적으로 제 일을 한다면 눈코입에 무얼 한들 뭐가 중요할까.  

 K는 회사 로비를 지나며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둘은 고등학생 때부터 친구이고 같은 직업을 가진 터라 나이가 들면서 더 잘 통하게 됐다. 양쪽 다 내향인인데 차이라면 K는 말이 많고 그녀는 주로 듣는 쪽이라는 것이다. 오늘도 부장과 한바탕 배틀을 했다고 늘어놓는 K에게 수화기 너머에선 ‘그러려니 해’라며 언제나처럼 똑같은 위로가 들려왔다. 그래, 내가 잃을 게 완전히 없어질 때까진 참아보리. 순한 양 같은 그 친구는 윗사람이 악을 쓰고 물건까지 던지려 했다는데 K는 그걸 듣는 것만으로도 분통이 터졌다. 

 “그걸 왜 봐줘?”

 “미친 인간은 상대하는 게 아냐”

 K는 그 친구가 목소리는 작아도 자신보다 훨씬 강한 존재라고 느꼈다. 나는 그를 기꺼이 상대하려 들다 기운이 빠졌고 그녀는 그를 간단히 무시함으로써 자신을 지켰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친구의 에피소드들을 들으며 분노한 것은 K 자신이었고 정작 그녀는 담담했다. 타인의 심리적 지지를 딱히 필요로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녀의 마음은 정말 단단했다. 

 K는 퇴근길에 상담센터에 들렀다. 오늘 회사에서 있었던 일과 상담실로 들어오기 직전에 친구와 나눈 이야기를 상담사에게 전했고, 지난주에 작성한 심리검사 결과로 상담은 시작되었다.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가다 우연히 교차로에서 마주쳐 같은 도로 위에 잠시 머무는 중일뿐 거쳐온 배경이 다르고 생각의 척도가 다르며 살아갈 수준이 다른 존재들이란다. 그리고 내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 남에게 슬픔을 줄 수 있고 나도 누군가에게는 환희를, 한편으론 그 반대를 선사하기도 함을 염두에 두란다. 상담사님이 그러셨다. 그럴 것 같긴 하다. 자존감 높은 K는 자신도 누군가에겐 상꼰대가 될 수 있겠다는 한 줄 느낌으로 오늘의 이슈를 타협했다. 

 유행이 반복되는 것처럼 인간관계도 건너 건너 다 얽혀있고 돌고 돌아 자기 자신이 되는 것 같다. 그래도 인생사가 도로아미타불은 아닐 거야. K는 좌절인지 희망인지 모를 안도감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밤은 11시를 향했고 곧 내일이 오고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