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 쿵 쿵 드르르 쾅’
스르르 막 잠이 들려던 자정, 윗집 입주민은 퇴근 알렸다. 은아는 정말이지 윗집의 존재를 모르고 싶다. 저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직접 남의 집을 찾아가면 무슨 법에 걸린다기에 경비아저씨께 도움을 청했지만 70은 되어 보이시는 경비아저씨께선 겁먹은 목소리로 내게 그의 말을 전하셨다.
“인터폰 하니까 이 아파트에 또라이가 사나 보다고 소리를 버럭 지르면서 자기 집은 아니라고 하대”
윗집의 직업이 뭔지는 몰라도 일반적인 밤낮이 바뀐 사람들에다 말투로 봐서 점잖은 사람이 아닌 건 확실하다. 꽃잎도 사뿐히 즈려 밟겠다는 어떤 화자도 있는 마당에 발은 왜 그렇게 쿵쿵대며 도대체 문을 왜 저리도 열었다 닫았다 하는 것일까. 여기는 구축 열 평대의 아파트라 여닫이문인데 문을 여닫을 때마다 천장이 진동한다는 사실을 입주 전까지는 몰랐다. 그래, 열고 닫는 소리는 그렇다 치자. 왜 매번 ‘쾅!’하고 닫는 것일까. 그리고 세탁기는 왜 9시가 넘어야 돌기 시작하는가.
은아의 취침 준비는 열 시 이전에 시작된다. 피부 건강을 위해 밤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꼭 잠을 자야 한다는 원칙을 삼십 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새삼스레 지키려는 의도가 아니다. 위층의 소음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무의식의 세계로 빠져버리려는, 그야말로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새벽까지 정신력으로 깨어있던 고등학교 시절을 제외하고 그녀는 일생을 규칙적으로 살았다. 본성이 원래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일찍이 공무원이 된 탓에 나인 투 식스를 바탕으로 한 쳇바퀴 라이프 스타일이 디폴트가 된 것인지 알 수는 없다. 그런데 바야흐로 6개월. 전보다 넓고 깨끗한 보금자리로 이사를 온 지 5일째 밤부터 그녀는 층간소음으로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쉼 없이 밤을 지새웠고 마침내 그녀의 머릿속은 헝클어졌다. 삼십 년을 고이 다듬어온 신경세포의 한 가닥 한 가닥이 깨어나 이제는 바람 소리에도 안녕을 전하는 초예민자가 되어 버렸다. 오늘도 그녀는 고육지책으로 큰맘 먹고 산 노이즈캔슬링용 고가의 헤드폰을 끼고 누워 유튜브에서 수면 음악을 재생시켰다. 머리에 채워둔 족쇄 탓에 베개에 닿는 목의 위치도 자유롭지 못하는 고로 그녀는 잠자는 모습도 평소 삶의 원칙을 지키는 것 마냥 일자로 반듯하다. 그러나, 그녀의 노력은 이 밤에도 퇴짜를 맞았다. 수면의 세계에 입성하기도 전에 그들이 침입해 버린 것이다.
공동주택에서 이 정도 불편함은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보시라. 은아는 4년 전 남아공 케이프타운 여행 중 도미토리 숙소를 이용했는데 인도계로 보이는 20대 초반의 여자가 체크인을 했고 은아의 옆 침대를 차지했다. 자려고 누운 시각, 그 여성은 웃으면서 큰 소리로 계속 전화를 했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얘기를 해서 그녀가 요하네스버그 출신이라는 걸 ‘강제로’ 알게 되었다- 은아는 목소리를 줄여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조용히 있고 싶으면 개인실로 가지 왜 다인실로 왔냐’며 적반하장이었다. 은아도 지지 않고 목소리를 키웠다. 둘은 서로 소리를 질러댔다. 은아는 자신과 며칠째 같은 방을 쓰고 있는 옆 침대의 프랑스와 독일 여행자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게 용납된다고? 은아는 그 공간의 유일한 아시아 국적으로 자신보다 십 년은 어려 보이는 남아공 국적의 상대와 –그 와중에 ‘따다다다’ 제 분을 표현할 만큼 영어가 늘었다는 것에 은아는 뿌듯했다- 싸웠다.
‘다인실이니까 소음을 낼 수 있다’ VS ’ 다인실이니까 소음을 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 둘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불편함을 못 느끼는 사람이 –나도 대가리가 꽃밭이면 좋겠다- 이긴다. 논리나 ‘정도껏’이란 건 없다. 개가 달려들면 피해야 한다. 은아는 침묵하는 공범들까지 모조리 불편해져 리셉션에 하소연을 한 뒤 결국 방을 바꿨다. 층간소음도 마찬가지다. 매일 밤 은아는 층간소음에 대해 검색하고 유튜브를 뒤지다가 온라인 카페에 가입했다. 피해자들은 다들 살인충동과 독기가 가득했고 이를 키보드에 풀었다. 집안에 울리는 진동소리는 사람의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시킨다고 한다. 예수와 부처와 알라와 공자까지 모든 성인의 힘을 빌어 낮엔 어떻게든 참아보겠다고 하자. 그런데 잠을 못 자는 것은 생존권의 문제이므로 사람들은 처절히 절규했고 이는 ‘우퍼를 설치했다, 경찰을 불렀다, 맞짱을 떴다, 민사를 걸었다’ 등 무용담도 흔했다. 그러나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아래층 본인이 그냥 이사를 나가는 것이었다. 다시 복비와 이사비용과 시간과 고민이 소요되겠지만 우선은 잠을 잘 수 있는 환경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은아는 입주 2주 만에 부동산을 다시 찾았고, 한 달 만에 다시 가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며 울음을 참지 못했다. 사실 부동산 사장님은 복비만 받으면 되는 것이니 은아를 말릴 이유가 없었지만 이거 너무 억울한 일이니 조금만 더 참아보자고 위로하며 진짜 안 될 때는 집 상태 별로여도 탑층으로 바로 옮기자고 하셔서 은아는 자신의 굳은 마음을 다시금 누그러뜨렸다. 이 동네 전체가 구축인데 K의 새집은 보통 집주인들이 해주는 올수리보다 더 잘 되어있었고 리모델링 후 첫 입주여서 서울에서 이만한 전세금으로 이만한 컨디션의 아파트를 찾기는 어려웠다. 소위 말하는 로얄층에, 햇빛 잘 드는 남향에, 깨끗한 화이트톤에, 위층이 퇴근하기 전까진 고요하기에 은아도 이대로 떠나기엔 억울하기 그지없었다. 부동산에서 돌아온 은아는 상대에게 전하고픈 결투 신청서를 결국 애걸복걸하는 편지로 형식을 바꿔 과일선물세트와 함께 그 집 앞에 몰래 가져다 놓았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