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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디어 Aug 22. 2024

수국 진 자리에 파고드는 너와 나의 연결고리

추억이 몽글몽글 수국을 보며.

수국 진 자리에 파고드는 너와 나의 연결고리

추억이 몽글몽글 여름을 보내며.


창 밖을 보니 얼마 전까지 탐스럽게 피어있던 파란 수국이 다 져 갈색으로 변해있다.

보기 싫은 맘에 가위를 들고 뛰쳐나갔다. 청보랏빛으로 보일 정도로 진한 파랑색이던 오동통한 수국이 불과 일주일 만에 까맣게 말라 죽은 걸 보니 괜히 울적해졌다. 한 뿌리에 무려 5개나 피어있던 멋진 나무였는데. 

이웃 주민 모두가 예쁘다고 칭찬하던 수국이었기에 더 아깝기도 했다.


요즘 정신 없다는 핑계로 키우던 식물들에 무심한 나머지 여러 개를 보내고 나니 더 스스로를 자책하게 된다. ‘나는 왜 이리 무심한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지난 주말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그 전부터 나는 수국에게 물 주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던거다. 평소라면 가위를 들고 말라버린 수국의 줄기를 바로 잘라냈겠지만 왠지 모를 아쉬움과 미안함에 수국의 마른 잎을 일일이 떼어내며 사과를 했다. 

‘수국아. 나에게 와서 고생이다. 만약 울엄마가 널 키웠다면 넌 아직 생생하게 살아있었겠지. 널 더 오래도록 가꾸어 줬을 거야’


그러고 보니 나의 엄마.

유난히 꽃과 식물을 좋아하는 엄마는 나와는 달리 살아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참 잘 키운다. 

단독주택에 살았던 나는 엄마 덕분에 계절따라 피어나는 꽃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봄에는 앵두와 보리수, 여름에는 매실과 무화과, 가을에는 감과 밤 같은 과일을 먹을 수 있었다. 집 마당에서 매 계절을 대표하는 열매들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내 어린시절의 풍요로움 이었다. 동네 친구들을 다 데려와서 따먹어도 다 못먹을 정도였으니 그 보다 더 든든한 간식창고가 또 어디 있었을까? 


엄마는 계절이 변할 때마다 나와 동생을 예쁘게 꾸며 입혔다. 봄에는 꽃 구경, 여름에는 산과 들, 가을엔 도시락을 싸서 붉게 물든 내장산에 데리고 다녔다. 사실 난 식물이 좋아서 따라다닌 것은 아니다. 그저 나들이를 하기 위해 산 나의 최애과자 칸쵸와 도착지에서 사먹게 될 각종 간식들이 나를 두근거리게 만든 원인이었지 계절의 변화나 피어나는 꽃 등은 어린 나의 관심사가 전혀 아니었다.

어린 시절의 나와 남동생이 피고 지고 또 피는 계절의 싸이클을 알 리 없지만, 엄마는 매년 바뀌는 계절마다 자연이 옷을 갈아입는 풍경을 우리 남매에게 최대한 많이 보여주려고 애쓰셨다.


그 당시 나의 눈에 비친 봄, 여름, 가을의 풍경은 볼 때마다 모두 같은 것만 같았는데 

몇 십년의 계절이 쌓인 지금의 나는, 그 곳들엔 어느 것 하나 같은 게 단 하나도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매년 다른 옷을 입고, 다른 신발을 신고 방문했던 것처럼 그 곳의 모든 것들 역시 다 새로운 모습으로 나를 반기고 있었다는 것. 그래서 그 찰나를 소중히 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된 덕분에 지금 내 곁에 머무르고 있는 것들 하나하나가 소중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이 깨달음이 바로 내가 매년 봄, 여름, 가을에 딸을 데리고 여기저기 축제를 찾아다니는 이유가 되었다.  딸은 어렸을 때의 나처럼 아무 감흥 없는 눈으로 주위를 휙 둘러 본다. 어쩌면 지금 손에 들고 있는 태블릿이 더 딸을 즐겁게 해주는 것 같지만 난 계속 딸과 함께 다니려고 한다. 그렇게 눈으로 마음으로 담은 것들이 딸의 기억에 하나씩 쌓이길 바라면서 말이다. 꽃에 관심도 없는 딸에게 내가 아는 식물과 나무의 이름을 알려주면서 아이의 계절들이 점점 풍요로워 지기를 바라본다.


“엄마와 이랬었지, 저랬었지” 하며 딸이 나를 추억할 수 있는 것들을 더 많이 만들어 주고 싶다. 이 수국을 보낸 그 자리에 또 더 멋진 수국을 채워 심어 둬야겠다.

그리고 이번 가을엔 딸과 함께 내장산에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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