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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디어 Sep 10. 2024

딸에게 알려주기 싫은 인생의 비밀

(강아지의 실종으로 알게 된 사실)

딸에게 알려주기 싫은 인생의 비밀

    (강아지의 실종으로 알게 된 사실)     



딸, 우리 집에는 후추가 있지. 1년 전 데려온 인절미색 포메라니안. 

후추와 너는 좋은 친구가 되어 일상을 함께하고 있지. 매일 후추를 데리고 밖을 나가 산책을 하는 네가 대견하다. 겨울엔 쌓인 눈을 뽀드득 밟으며 껴안고 뒹굴기도 하는 그 모습들이 참 귀엽다. 후추가 온 이후 까르르 웃는 일이 많아진 가족 모두의 모습에 어느 새 강아지를 받아들인 나의 모습에 스스로 놀라기도 한다.  너의 등쌀에 못이겨 데려오긴 했는데 사실 키우지 않으려고 끝까지 반대했던 이유가 있었다. 



어린 시절 내게 상처로 남았던 기억. 지금 우리 후추처럼 작고 총명한 강아지 뽀삐. 골목 끝에 위치한 집이라 아직 한참을 걸어야 하는데도 뽀삐는 100m 밖 내 발소리만 듣고도 반갑다고 왈왈왈. 집마당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나를 향해 엉덩이 춤을 추며 꼬리를 흔들고, 작은 입으로 소리높여 노래하듯 짖어가며 반가움을 표현한다.      



시고르자브종 특유의 귀여운 강아지였지만 사납게 짖어대는 모습이 무섭고 사납게 느껴져 뽀삐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 아마 뽀삐도 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을거라 예상한다. 왜? 나는 늘 반갑다고 꼬리 흔드는 귀여운 강아지를 무시하며 집 안으로 시크하게 들어가곤 했으니까. 그도 그럴게 나는 이미 사춘기에 접어들었고, 사춘기란 것은 자고로 아무리 귀여운 것이 있더라도 무심하게 지나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시크병에 걸린 초등학교 고학년 언니였다.          



영민한 뽀삐는 차 소리만 듣고도 짖어대며 아빠의 귀가를 알렸다. 어둠이 내려 앉은 저녁, 집에 침입한 도둑의 움직임을 쫒아가며 사납게 짖어대 도둑을 쫒아내기도 했다. 동생이 저 멀리서 부르면, 자신의 몸보다도 더 작은 개구멍을 겨우겨우 통과해 달려나가기도 했다. 동네에선 사납기로 소문난 뽀삐지만 가족에겐 더없이 사랑스럽고 소중했던 존재였다.          



어느 날 하굣길이 묘했다. 골목에 들어섰는데 당연히 들려야 할 뽀삐의 인사가 들리지 않았다. 이상한 기분이 들어 평소와 달리 집을 향해 뛰었다. 집에 가까이 다가가는데도..들리지 않는다. 지금 내 귀가 들리지 않는 건가 의심하며 집에 들어서는데 온 집안을 울리는 동생의 통곡 소리는 선명하다. 엄마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안그래도 몸 약한 남동생은 이미 반실신 상태. 그나저나 뽀삐는 어디간거지? 뽀삐야? 뽀삐??



앞집 현주 아주머니 말로는 개장수 차가 지나간 뒤로 보이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낡은 트럭 뒤에 부식된 철장을 가지고 다니며 동네 개들을 몰고 떠난다는, 소문 속 무서운 망태 할아버지가 우리 강아지도 데려간 것이 틀림 없다고.     



처음이었던 것 같다. 눈과 코가 매워질 때까지 그렇게 까무러쳐 울었던 것은. 평소 사이가 좋지 않은 남매였지만 그 날만은 온몸으로 형재애를 느끼며 부둥켜안고 울었다. 동생은 너무 울다가 몸져 누웠고, 나는 그날 평소 같지 않게 저녁 간식과 식사 모두를 건너 뛰어 엄마를 두 번 놀라게 했다. 정이 들었던 작은 존재가 나에게 기별도 없이 인사도 없이 증발해 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큰 상처로 남았다. 누군가 이 존재를 가져갔을거라는 분노보다 가족의 소중한 존재가 ‘어느날 갑자기 휙’ 하고 없어져 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너무 생경하고 아팠다.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달려나간 뽀삐의 집 앞엔 밥그릇과 물그릇만 덩그러니 있었다. 나는 학교 갈 준비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다. 정말 없어졌다. 내가 아는 척을 하지 않은 게 서운해서 잠시 집을 나간 거라면 이해해주려고 했는데 하룻밤 지나서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진짜 이별이었다. 우리 남매는 그 주 주말까지 내리 몸살을 크게 앓아야만 했다. 그 뒤로 더 이상 우리집에 제 2의 뽀삐는 없었다. 나도 남동생도 집안의 그 누구도 두 번 다시 뽀삐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고, 심지어 화장실 휴지 브랜드도 ‘뽀삐’로 샀던 엄마는 바로 다른 브랜드로 변경하셨다.      



어렸을 때의 내 상처 때문에 강아지 키우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너무 편협한 것 같아 마지못해 허락하는 척했다. 사실 나도 강아지를 다시 키우게 된다면 어렸을 때 내가 했던 것처럼 무심하지 않고, 더 많이 예뻐하고 싶었다. 내게 꼬리 흔드는 강아지에게 칭찬도 더 많이 하고, 간식도 건네주고 뽀삐에게 못다한 애정을 주고 싶었다. 어느 날 갑자기 없어지더라도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 없도록. 물론 후회는 남겠지만 이번엔 조금 더 잘해보고 싶었달까.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너에게 소중한 무엇인가가 어느 날 갑자기 없어질 수도 있다는 것만은 그것만은 아직 알려주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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