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주방 식탁, 희미한 불빛 아래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데, 잠에서 깬 다섯살 아이가 내 옆으로 온다.
"엄마, 같이 자러 가자."
노트북을 덮고 아이를 방으로 데려가 재운다.
곤히 잠든 쌍둥이의 등을 토닥이며 생각한다.
'4시간만 자고 일어나서
수출 교육 들으러 가야 하는데…'
안정적인 직장 생활에서 불안정한 미래를 선택한
이 시점, 나는 창업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일을 재미있어하는 사람이었다.
데드라인을 맞췄을 때의 짜릿함,
내 이름이 찍힌 성과물, 청중의 표정이 바뀌는 순간.
스물여섯부터 서른 중반까지,
나는 일하면서 살아 있음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업무가 쏟아져도, 주말이 사라져도
“근데 이거 재밌는데?"라고 말하던 사람.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곧 ‘나’였고,
회사에서의 성장이 곧 ‘내 삶’이었다.
서른여섯에 결혼했고, 쌍둥이를 낳았다.
'쌍둥이'라는 단어가 내 인생에 들어온 순간,
모든 숫자가 두 배가 되었다.
기쁨도 2배, 책임도 2배, 눈물도 2배.
한 명 재우면 한 명이 울고,
한 명 먹이면 한 명이 토하고,
한 명 안으면 한 명이 보챈다.
두 살 쌍둥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복직한 첫날.
혼자 자리에서 커피를 마시는 일이 꽤 어색했다.
어른의 언어를 쓰는 것도,
회사에서 내 이름을 마주하는 것도.
하지만 일에 치이고 육아에 부대끼는 날들이 반복되자
모든 걸 내려놓고 싶어졌다.
아침에는 지각할까 봐 아이들 신발을 억지로 신기고,
낮에는 회의 중에 어린이집 전화가 올까봐 휴대폰을 쥐고, 밤에는 밀린 업무 때문에 책 한 권도 못 읽어주던
시간들.
세 개의 공을 저글링 하는데,
한 개는 늘 바닥에 있었다.
나는 공을 떨어뜨리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2024년 어느 날,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조금만 쉬자. 아이들 좀 크면 다시 시작하면 돼."
전업맘이 되고 몇 달간은 행복했다.
낯설었지만 여유로웠고, 충분히 쉬고, 아이들과 원 없이 놀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이들에게 화내는 날이 많아졌다. 하루 종일 청소만 하고, 저녁이 되면 내가 뭘 했는지기억나지 않았다.
"나… 뭘 잘했던 사람이었지?"
그때 알았다.
엄마이기 이전에,
나는 여전히 나를 찾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걸.
그래서 다시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단, 이번에는 다르게.
조직에서 버티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만들 수 있는 일을 찾기로.
지인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요즘 같은 때 창업해? 다들 폐업하는데?"
나는 오히려 되물었다.
"그럼 언제가 좋은 때인데?"
창업에 적기는 없다.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그날이 시작일 뿐이다.
이 연재는 '해냈습니다'가 아니라
‘해보겠습니다'의 기록이다.
쌍둥이 육아와 창업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사람의,
정제되지 않은 현재진행형.
실패하면 그것도 쓸 것이다.
창업을 위해 무엇이 중요한지.
그 과정도 누군가에겐 필요하니까.
다음 회 예고
원래 꿈은 '강의하는 할머니'였다.
일흔이 되어도 청중 앞에 서는 사람.
그런데 지금 나는 중국 공장에 메일을 쓰고,
아마존 사이트를 뒤지고 있다.
사십 대에 온라인 셀링을 시작한 이유,
다음 화에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