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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이야기
By 모레알 . Jun 15. 2017

엄마는 무면허 약사


외국에 나와 살면서 특히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정말 아프지 말고 건강해야 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에선 집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아파트 상가에 소아과부터 치과, 한의원까지 한 곳에 다 몰려 있기에, 원하는 대로 '어느 병원이 깨끗하고 잘할까’ 하며 입맛대로 골라서 다녔던 것 같다. 동네병원은 예약을 하지 않아도 아무 때나 필요할 때마다 찾아가 진료를 받을 수 있었고, 의사가 마치 무슨 상담원인 양, 아픈 증상들을 온갖 수식어를 더해 설명을 하면서 아픈 증상을 완벽하게 전달했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그런 것이 얼마나 편하고 좋은 것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이곳은 Family Doctor(가정의)라는 시스템이 있다. 내가 직접 가정의를 찾아서 등록해야 하고, 일단 가정의가 정해지면 그곳만 다닐 수 있다. 하지만 가정의도 예약을 하지 않고서는 진찰을 받을 수가 없다. 갑자기 아파서 급하게 전화를 해도 의사가 시간이 없으면 만날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어깨가 아프다고, 피부에 문제가 생겼다고, 정형외과나 피부과를 직접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일단 가정의를 만나 '가정의 소견서'를 가지고, 가정의가 지정해주는 전문의를 찾아가서 다시 진료를 받는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처럼 내 맘대로 병원을 골라서 찾아갈 수 없는 것이다. 환자를 새로 받을 여력이 있는 가정의를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어서 가정의가 없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럴 경우에는 예약을 받지 않고 오는 순서대로 진료하는 보건소(클리닉) 같은 곳에서 몇 시간씩 기다리며 치료를 받는다.


이렇게 병원 한번 가는 것이 큰일이다 보니, 이곳에 온 이후로 병원을 간 횟수가 아이들 예방주사를 포함해도 채 몇 번 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감기가 걸리면 한국에 있었을 때처럼 습관적으로 병원을 찾아갔었다. 어설픈 영어로 땀 흘리며 겨우 힘들게 예약하고 갔더니만, 매번 주사는커녕 약도 한알 안 주고 돌려보내는 것을 경험한 뒤론, 웬만한 감기에는 다시는 병원에 가지 않게 되었다. 이곳 의사들은 정말 약을 잘 주질 않는다. 심하다 싶은 감기몸살에도 그저 ‘물이나 오렌지주스 많이 마시고, 그래도 많이 아프면 타이레롤 먹어라’ 이렇게만 말해준다. 





이곳은 코스트코나 월마트 같은 곳에서 약을 살 수 있고, Pharmaprix, Jean coutu라는 슈퍼마켓에서도 살 수 있다. 그 안에는 약사가 있는 전문 약국이 있어서 의사 처방전 약을 살 수 있고, 진열대에는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여러 가지 약들도 놓여 있다. 약 종류도 무척이나 많고 세분화되어 있어서, 저 많은 약들 중에서 어느 것이 ‘약발’이 잘 받을까 하며 찾아보기도 하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약사한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다. 주변에서 보면 한국에서 약을 공수해 와서 드시는 분들도 많은데, '신토불이, 우리 몸엔 우리 약이 좋은 것이여'라는 마음도 있겠지만, 병원에 가는 것이 너무나 복잡한 이곳 현실에 대한 대비책일 것이다. 




이런 슈퍼에는 화장품이나 샴푸, 카드, 휴지 등의 공산품 등 신선 제품을 제외하곤 거의 다 구비되어 있다.




지인네 아이가 농구를 하다가 손목을 삐끗했다고 했다. 정형외과 간다고 가정의를 만나서 알아보는 것도 귀찮고, 침을 맞는다고 시간을 맞춰 찾아가는 것도 번거롭고 하여, 궁리 끝에 생각해 낸 것은...... 사골을 사다가 곰탕을 끓여 먹이는 것이었다. 뼈 국물을 먹으면 뼈에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얘기를 들으며 얼마나 웃었던지 모른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이 얘기를 해드렸더니, '선진국 캐나다에 살면서 약 구하기 힘들었던 옛날 촌사람처럼 살고 있다’며 병원에 가기 힘든 이곳 시스템을 안타까워 하셨더랬다.

 

아들 녀석이 친구 집에서 놀다가 계단에서 미끄러지면서 발가락을 삐끗했던 적이 있다. 아프다고 걷지도 못해서 학교도 못 갔었다. 남편은 당장 병원에 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했지만, 무면허 약사인 나는 ‘부러졌으면 저렇게 있지도 못할 것이고, 금이 갔으면 퉁퉁 부었을 텐데, 저 정도인 것 보니까 그냥 살짝 삐끗한 것 같다’며 얼음찜질만 해주면서 기다렸다. 그러자 옆에서 보다 못한 남편이 답답해서 한마디 한다.


"아니, 당신은 병원도 안 데려가려면 사골뼈라도 사서 곰탕이라도 좀 끓여먹이지, 그냥 그러고 있는 거야?"


난 그 말을 들으며 얼마나 웃었던지 모른다. 그런  종류의(?) 말은 주로 내가 하는 것이지, 남편과는 전혀 어울리는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나무랄 사람이 오히려 저런 말을 하다니, 정말 세월 따라 환경따라 많이 변했다. 그리하여 곧 사골을 사다가 푹 고아 먹였는데, 그래서 나은 것인지 나을 때가 되어서 나은 것인지, 금방 괜찮아졌다. 아마도 ‘뒷걸음질에 쥐 잡은 격’ 일 것 같다. 


다행히 진짜 약사 면허를 가진 친구가 있어서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면서 도움을 받고 있다. 내가  "이러저러한데 이거 저거 먹어도 괜찮아?" 하고 물어보면, "그래, 맞아. 별걸 다 알고 있네. 자기가 약사 해도 되겠다" 하거나, "아유~ 이 아줌마 겁도 없어요. 그거 낮에 먹음 안돼. 밤에만 먹어" 하기도 한다. 




얼마 전 아들이 사랑니 네 개를 한꺼번에 뽑았다. 이곳에선 사랑니가 몇 개가 되었건 보통 한 번에 모두 다 뽑는다. 생각보다 덜 아팠다고 해서 다행이었는데, 처방받아 온 약은 고작 진통제와 소독약 밖에 없었다. 난 당연히 항생제 처방도 같이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항생제 처방을 안해준 의사를 원망했다.


"아니! 사랑니를 네 개나 뺐는데, 덧나면 어떡하려고 항생제를 안 줘! 미리 먹어야 탈이 안 나지~~!!!"

"엄마~~ 항생제 그렇게 함부로 먹는 거 아니에요. 만약 문제가 생기면 그때 처방받으면 돼요."


이제는 더 이상 '엄마는 무면허 약사'라고 말도 못 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배운 지식을 앞세워 엄마의 말에 조목조목 반박을 하고 있다. 예전에는 엄마가 주는 약도 의심 없이 잘 먹고 그랬는데, 이제는 아무리 몸에 좋다고 먹으라고 들이 밀어도 거부한다. 저희들 몸 생각해서 챙겨주는 것인데, 엄마 마음도 모르고 그저 얄팍한 지식으로만 밀어내니 섭섭한 마음만 한가득이다. 


그래, 이 녀석들아!

앞으로는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이제 엄마는 무면허 약사 그만 둘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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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캐나다 이야기
캐나다와 한국을 오가며 살고 있습니다. 
살면서 느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나 둘씩 꺼내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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