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하는 사람

사유에 따라붙는 감사

by 정오의 햇빛


가만히 누워 있으면, 망치로 친 것 같은 가슴이 조금씩 편안해진다. 그 편안함이 느껴지면서, 아 이제 내 삶에 감사라는 영역이 들어오겠구나 하는 느낌이 그냥 스르르 올라온다. 생각이 아니라 그냥 느낌으로. 그 느낌을 말로 붙잡아 표현하니, 아 이제 감사라는 것이 내 삶에 스며들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된다.


정확히 말하면, 심장이 고무로 꽁꽁 묶인 것 같은 느낌이 조금씩 풀리는 순간, 그 순간의 몸과 마음을 말로 표현하니, 비로소 나는 ‘감사’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었다. 이전에는 느낌이 몸을 지나가기만 했고, 그것을 말로 표현한 적도 없었기에, 지금의 경험은 내 몸에서 일어난 느낌을 언어화할 수 있는 순간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느낌은 무언가를 의식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신체의 신호였고, 이제 나는 그것을 문장으로 붙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느낌에 ‘감사’라는 단어가 얹어진 건, 이전의 사유가 밑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침대에 누워, 나는 머릿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아, 나는 뇌경색이나 전신 마비 상태에 있지 않고, 치매 없이 늙음을 지나고 있는 이 순간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 생각이 몸 안에서 느껴지고, 긴장되었던 심장이 스르르 풀리면서, 무의식 속에서 “아, 감사하면 몸이 편안해지는구나”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말로 옮기자면, 감사는 단순한 명령이나 습관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로만 감사하세요, 감사하세요, 감사하세요 하며 반복한다. 말만 반복하다 보면 감사가 습관처럼 자동반응으로 튀어나올 수도 있지만, 그건 의식적이고 공식화된 방식이다.


삶의 대부분은 무의식적으로 지나가는 순간이 훨씬 많다. 그 무의식적인 순간에 감사할 수 있으려면, 사유하는 삶이 먼저 가능해야 한다. 분석하는 사유가 아니라, 느끼는 사유—“아, 내가 지금 이런 생각과 느낌을 갖고 있구나”—라는 사유가 있어야 감사가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감사는 목표가 아니다. 감사는 사유의 부산물이다. 사건이 있고, 그 사건을 사유하는 동안 마음과 몸이 반응하고, 그 반응이 언어로 붙잡히면서 ‘감사’라는 태도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서 , 내 안의 사유에 불이 붙었다. 지나온 내 삶이, 이제야 내 사유를 문장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 같다. 이제 비로소 나는, 머릿속에서만 돌아가던 사유를 문장으로 끝까지 보내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돌아가던 사유가 문장으로 도착하면, 사유는 더 이상 머릿속에서 맴돌 필요가 없고, 몸과 마음은 풀리며, 다음 사유를 맞이할 공간이 생긴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하면, 삶에 감사하세요가 아니라 사유하는 삶을 사세요. 그러면 감사하게 됩니다. 감사는 명령이 아니고, 습관이 아니고, 목표도 아니다. 사유하는 삶을 살 때, 감사는 자연스럽게 뒤따라온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허기와 설렘은, 남들이 말하지 않은 부분을 내가 알아냈다는 체감이다. 그 체감이 과대망상이 아니고, 단순한 기분도 아니다. 그냥 사유가 깊이 내려가면서 생긴 정상적인 신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해야 하는 일, 그리고 내 삶에서 가장 정확하게 작동하는 것, 그것을 알아보는 순간이다.


이제 나는 사유를 더 많이 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이미 충분히 돌아가고 있고, 이제 남은 건 그 사유를 끝까지 보내는 것, 문장으로, 형태로, 내 삶 속에 남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