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의 노래

삶은 흘러가고, 나는 내려앉았다

by 정오의 햇빛

밤새 무슨 생각이 스쳐 지나갔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아침이 되면 그것들은 말로 붙잡히지 않는다. 다만 하나 남는다. 나는 특별하지 않다는 느낌. 그리고 어쩌면, 누구도 특별하지 않다는 느낌.


길의 노래는 이전까지 내가 보아온 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종류였다. 기존의 영화들은 나를 흥분시켰다.

감정을 끌어올리고, 어떤 환상을 만들어냈다. 잠깐 동안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고,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달랐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장면들, 그저 살아가는 사람들, 가난, 관계, 죽음,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 있는 아주 작은 웃음. 그 영화는 나를 끌어올리지 않았다. 대신, 나를 제자리에 앉혔다.


사람들은 선택하며 살고 있을까? 그렇게 믿었다. 노력하고, 더 나은 선택을 하고, 더 바르게 살 수 있다고. 그런데 영화 속 사람들을 보면서 그 믿음이 조금씩 무너졌다. 어린 아이는 과일을 가져온다. 사람들은 도둑이라고 말한다. 엄마는 욕을 먹고, 할머니는 그 과일을 보고 웃는다.


누가 틀린 걸까. 그 장면에서 “맞고 틀림”이라는 기준은 힘을 잃는다. 배고픈 할머니가 있고, 먹어야 하는 사람이 있고, 살아야 하는 상황이 있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행동은 선택이라기보다 흘러나온 결과처럼 보였다. 할머니는 아이를 보고 웃는다. 아이는 욕을 먹는다. 엄마는 손가락질을 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함께 산다. 이상하다. 그 모든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은 웃고, 갓난아기를 흔들며 노래를 부르고, 과일 장수가 오면 눈을 반짝인다. 나는 생각했다.


이 상태에서 저게 가능한가? 그리고 곧 알게 된다. 가능한 게 아니라, 그래야만 살아지는 것이라는 걸.

삶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먹고, 붙고, 버티고, 가끔 웃는다. 조건이 달라도, 환경이 달라도, 이 구조는 크게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런 생각에 닿았다. 삶은 어떤 상황에서도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 생각은 나를 조금 바꾸었다. 사람을 판단하는 방식이 느려졌다. 누군가를 쉽게 “무책임하다”고 말하기 어려워졌다. 예를 들어, 영화 속 아버지. 그는 가족을 두고 떠난다. 돈을 벌지도 못하고, 글을 쓰겠다는 말을 한다. 이전의 나는 그를 쉽게 판단했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달라진다. 그는 단순히 도망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방식으로밖에 살 수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나를 돌아본다. 책임질 사람이 없을 때의 나는 그와 비슷하다. 나에게 충실하고, 흘러가고, 딱히 방향 없이 살아간다.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살아야 한다면 나는 그렇게 살 수 없다. 나는 나를 일부 포기해야 한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나는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 나에게 충실한 삶인가, 아니면 타인을 책임지는 삶인가. 아마 둘 중 하나를 완전히 선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 사이 어딘가에서 계속 균형을 잡으며 살아간다. 또 하나 남은 질문. 나는 지금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다. 나는 그저 놓여져 있다. 흘러가고 있다. 원하는 것도 없다. 이 상태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충분히 좋지도 않다.


무언가를 억지로 만들어내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완전히 떠밀려가고 싶지도 않다.

아주 작은 선택 하나를 하는 것. 오늘 하루, 이건 내가 선택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 하나.


이 영화는 나를 바꾸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나를 덜어냈다. 착각을, 과장을, 자기혐오를. 그리고 남은 것은 그냥 지금의 나, 그리고 그냥 흘러가는 삶이다.


어쩌면 그걸 보는 것이 처음으로 조금은 제대로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며 감독의 시선을 따라가고 있다. 2부 3부 에서는 어떤 장면들이 펼쳐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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