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이의 마술
새학교, 새학년, 새학기, 첫날.
새로운 것은 늘 그렇듯 익숙하지 않아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 많다.
그래서 더더욱 정신없었던 오늘.
그 틈을 파고든 오늘의 귀한 이야기 하나.
"안녕, 만나서 반..."
미처 뒷말은 꺼내기도 전에 날아온 이단옆차기.
생각지도 못한 k와의 첫만남 액션부터 당황하고 있었다. 강당안을 가득메우고 있는 학생들과 교직원들 틈바구니에서 표정관리는 어려웠지만.
"하하. 선생님과 악수는 어떨까?"
내민 손이 무색하게 다시 또 이단옆차기.
긴코트덕에 아프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민망함의 연속이었다.
아홉살 꼬맹이의 공격은 그 후로도 두세번 계속되었고 저지하는 공익보조선생님(사회복무요원)을 피해 무대까지 도망가는 사태가 발생했으니 슬슬 긴장이 되었다. 강당은 우리의 첫만남의 장소로 좋지 않았다. 겨우 데려와 자리에 앉히려고하니 이번엔 바닥에 누워 버티기 및 다시 도망가기.
이미 시업식은 시작됐고 이대로라면 첫만남에서부터 우리는 힘들어진다. k가 잠시 얌전해진틈을 타서 얼른 손을 잡았다.
"00아, 만나서 반가워! 너 참 잘생겼다. 선생님 오늘 처음왔으니 잘 부탁해. 우리 잘해보자."
눈을 마주쳤고 손은 따뜻했고 k도 내 눈을 물끄러미 보았다. 반은 성공이다!
"우리 00는 선물을 받는다면 뭘 받고싶어?"
"팽이요! 00000 팽이"
선물이라는 말에 눈이 반짝인다.
이름도 어려운 팽이 이름. 하지만 그 순간 k가 무척이나 갖고 싶어하는 팽이임에는 틀림이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음. 그래? 팽이라...선생님이 그 팽이 00에게 선물로 줄까 하는데..."
"정말요?"
"그럼! 물론이지. 대신 칭찬스티커 30장 모으면!"
"에이. 전 스티커 못 모아요.."
금새 풀이 죽은 k. 자신이 칭찬받을만한 행동을 하기는 어렵다는 듯 포기하는 눈치다.
"아니! 선생님은 정말 스티커 잘 줘~
하루에 한개씩 줄건데?"
"진짜요?"
그러고는 아주 얌전히 말한다.
"그런데요, 선생님. 스물한 개만 모아도 사주면 안될까요?"
진지하고 절실한 k의 표정을 보며 못이기는 척
"그래, 좋아! 대신에 매일 선생님 말씀 잘 듣고 하룻동안 학교생활 잘하면 집에 가기전에 도움반 들를 때 줄거야. 알겠지?"
K는 정말 얌전히 예쁘게 내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교장선생님 말씀이 끝날때까지 학급줄을 이탈하지 않았고, 왼손 대신 오른손으로 바꿔가며 국기에 대한 경례를 했고, 애국가의 후렴구를 조금 따라 불렀고, 슬그머니 눈을 감고 묵념을 했다.
더 놀라운 것은 새교사 소개를 위해 자리를 뜨며
"선생님 인사하고 올게. 잘 서있을 수 있지?"
하고 소개를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 다시 손을 잡으며 하는 말이다.
"축하해요."
유창한 언어로 똑똑한 아이들이 하는 말보다 귀한 말. 이 아이가 느낀 감정이라는게 참 예쁘고 고맙다.
"고마워. 선생님도 널 만나 정말 기쁘다."
다시 손을 잡고 앞을 보는데 마음이 뭉클해진다.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 가슴속에서 따뜻한 무엇인가 아주 좋은 영양제를 먹은 듯 기운이 샘솟는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얼마나 나는 행복한 사람인가.
이렇게 예쁜 아이들과 올해도 또 멋진 추억을 만들며 잔잔하게 살아야지 다짐해 본다. 아끼고 보듬으며 우리 그렇게 행복하게 지내보자.
언제나 설레임 가득한 우리 나라 모든 학생들의 새출발, 3월 2일을 응원하며!
교육적 팁!
칭찬스티커 보상시 처음보상을 얻기까지의 시간은 길지 않는 것이 좋다. 아이가 쉽게 얻을 수 있는 갯수부터. 특히 처음 만난 사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꼭 지켜진다는 신뢰감을 위해 첫 관계의 첫 단추는 쉽게 끼워주자.
그리고 k의 제안처럼 그 아슬아슬한 선은 스물 한개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