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할 대상을 만난다는 것에 대하여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은 축복이다. 선생님은 취미생활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새로운 것을 접하면 첫 경험에 따라 좋은지 싫은지, 계속 배울지 말지가 정해진다. 사람의 첫인상이 3초 만에 결정된다는데, 경험도 비슷한 셈이다. 이때 선생님은 안내자 역할을 한다.
무언가를 본격적으로 배우면서 선생님의 존재가 한층 더 커졌다. 기본기를 다지는 단계에서는 집중이 필요한데, 그때는 가르치는 사람의 테크닉뿐만 아니라, 가치관, 관점, 태도를 모조리 흡수했다. 선생님이 곧 하나의 우주였다. 이때 만나는 선생님에 따라 취미의 수준이나 유효기간이 결정될 때가 많았다.
입시나 자격증 공부를 할 때 선생님을 찾는 방법은 정해져 있었다. 스펙이라고 불리는 선생님 출신학교, 시험성적 그리고 부수적으로 후기나 수강료를 참고했다. 물론 백발백중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만난 선생님들은 예상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일반적인 스펙이 적용하지 않는 분야에서는 선생님을 찾기 어려웠다. 춤을 배울 때는 선생님의 학벌을 알기도 어렵거니와, 학벌이 큰 의미가 없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공연 영상을 보고 찾아가거나 수상경력이나 소문을 참고했다. 나중에 깨달았지만, 공연을 잘하는 능력과 잘 가르치는 능력은 달랐다. 처음에는 퍼포먼스가 훌륭한 선생님에게 끌렸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 더 좋았다.
요가 선생님을 찾을 때는 난이도가 한 단계 더 올라갔다. 요가 세계에서는 수상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이렇다 할 기준이 없으니 초보자였던 나는 선생님의 수준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객관적 숫자인 경력을 보고 오래된 선생님을 찾았지만, 정답은 아니었다. 시간의 힘을 받아서 깊이 있는 선생님도 있고,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틀에 갇힌 분도 있었다. 요가의 종류는 너무나도 다양한데 선생님마다 추구하는 스타일이 달랐다. 다양한 선생님들을 경험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을 스스로 찾아가야 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분명해지기 전까지 마음에 와 닿는 선생님을 만나기 어려웠다. 내가 중심이 없으면 좋은 선생님을 만나도 그 가치를 알지 못했다.
명상을 본격적으로 배우면서 스승 찾기는 정점을 찍었다. 명상의 깊이는 수행의 시간과 비례하지 않았다. 게다가 타인의 명상 수준은 내가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유명한 선생님을 찾아가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찾았다. 하지만 요가와 마찬가지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좋은 선생님이 나에겐 아닌 경우가 많았다. 나쁜 선생님은 객관화될 수 있었지만, 좋은 선생님은 지극히 주관적이었다.
선생님과의 관계에서 힘들었던 것은 어제까지 좋던 선생님이 오늘 좋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한 스승에게 오래 배우면 지루해지지만, 그것만이 선생님을 떠나는 이유는 아니었다. 때론 내가, 때론 선생님의 방향성이 바뀌거나 어느 한쪽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관계가 좁혀지거나 벌어졌다. 때론 무조건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내 눈높이에 맞는 선생님은 계속 변했다.
스승과의 관계가 깊을수록 이별은 어려웠다. 잘 지내던 선생님에게 회의감이나 의구심이 생기거나, 함께한 선생님과 이별할 때에는 죄책감과 두려움이 몰려왔다. 헤어지는 순간 노골적으로 화를 내는 선생님들도 있었고, 직접적으로 말은 하지 않지만 섭섭해하거나 미워하는 선생님들도 있었다. 새로운 선생님을 찾아 나서는 일이 전 선생님을 배신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많은 선생님을 거친 후에야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승은 앞서 가는 자였다. 먼저 닦아놓은 길을 보여주는 이정표이자 길잡이였다. 하지만 그것은 선생님의 길이었다. 사람마다 출발지가 다르기에, 배움의 과정이 비슷할 순 있어도 똑같을 순 없었다. 내가 선생님의 길을 따라 걷는 동안 내 것은 없었다. 나는 내 길을 찾아야 했다. 세상의 비밀은 혼자 걸어가면서 부딪혀야만 진정으로 내 것이 되었다.
선생님 아래에서 기본을 다져놓고 나면, 그 이후에는 상황에 따라 범위를 넓힐지, 방향을 바꿀지, 더 파고들지를 정할 수 있다. 그 길에는 드문드문 또 새로운 선생님들이 등장하고, 또다시 만나고 이별하고 방황하면서 중심을 잡는다. 스승은 끊임없이 배움을 찾아 헤매는 것은 모든 이가 만나는 한 줄기 빛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