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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Mar 21. 2021

가능성에 물 주기

배움과 성장은 우리의 본능이기에

  세상이 참 빠르다. 최근 강의를 듣다가 디지털 시대의 키워드로 ‘감시관’이라는 단어를 배웠다. 감시관은 감정 낭비, 시간 낭비, 관심 낭비의 약자인데, 디지털 전환과 함께 감시관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트렌드가 바뀐다고 한다. 사회가 점점 효율성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 같다. 


  회사생활에 권태기를 겪으면서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다. 난 회사 체질이 아닌 것 같았다. 잠시 쉬다가 다른 회사로 이직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원이 아닌 다른 직업을 갖고 싶었다. 다니고 있는 회사를 퇴직하는 것을 생각했지만, 대안이 없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막막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무작정 움직일 순 없었다.


  취미생활을 하면서 나와 결이 맞는 취미들을 발견했다. 취미로 직업을 바꾸고 싶었다. 회사에 다니면서 남는 시간을 활용하면 실력도 준비도 더디지만, 풀타임으로 집중하면 얼른 자리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얼른 회사를 나와서 장밋빛 꿈을 펼치고 싶었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이 하나같이 반대했다. 초기 투자비용, 예상치 못했던 위험요소,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간 등을 고려하면 처음부터 안전한 직장을 그만두는 것은 무모하다고 했다. 한 발짝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면 병행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긴 했다.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주위 사람들의 조언이 옳았다. 시간을 가지고 서서히 직업을 전환하기로 했다. 다른 하나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으면 결정할 생각이었다. 


  직장과 취미생활을 병행하면서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는 내 주위 사람들은 현명했다. 내가 그들을 지인으로 둔 건 엄청난 행운이었다. 막상 뛰어들고 보니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장애물은 많았고, 나는 부족했다. 당장 시간을 투자해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많았다. 나에겐 경험과 시행착오가 필요했다.


  더불어서 프리랜서 준비생에게 회사는 살아있는 사관학교였다. 회사의 구조와 운영방식에 대해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내가 강사로서 좌충우돌하며 겪는 문제를 회사는 시스템으로 관리하고 있었다. 회사의 방식을 조금만 카피하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일 때가 많았다. 


  자연스레 회사생활의 권태감은 고마움으로 바뀌었다. 회사의 운영방식과 시스템에 불만이 있으면서도 수용하던 예전과 달리, 보이지 않던 맥락이 보이면서 여러 가지 입장을 이해했다. 회사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예시를 보면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배웠다.


  가르치는 일이 늘면서 직업을 전환할 기회가 생겼다. 고민했지만 회사에 남았다. 아직까진 취미를 순수하게 그 자체로 즐기고 싶었고, 아직은 때가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회사가 막연하게 무작정 싫었던 예전과 달리 회사생활의 의미를 찾으면서 조급하게 선택할 이유가 없어졌다. 


  취미생활과 직업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었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공존할 때 삶의 시너지가 생겼다. 취미활동은 다른 취미를 배우는 데 도움이 되었고, 다양하고 폭넓은 경험은 회사 일을 하는데도 단단한 밑바탕이 되었다. 지금의 취미가 미래의 직업이 될 수도 있고, 지금의 직업이 나중엔 취미로 하는 일이 될 수도 있었다. 취미와 직업을 두고 저울질하던 시간은 내 결정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주었다. 내가 처음부터 한정 짓지 않는다면, 다양한 가능성은 열려있었다. 


  취미는 효율과 지향점이 다르다. 삶을 효율성으로 바라본다면 취미생활은 쓸데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눈앞의 현실에 집중하면서 전문성을 기르는 것은 효율을 극대화하지만, 다양한 경험을 통해 시야를 넓히는 것 역시 의미가 있다. 당장 이득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일은 나와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폭넓게 경험하다 보면 실타래처럼 엮이고 새로운 가능성이 자란다. 


  트렌드를 쫒다 보면 인생은 잘 닦인 직선 고속도로에서 무한 질주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어쩌면 방향성 없는 효율성이야말로 무서운 게 아닐지 생각해본다. 사실 인생은 생각보다 길고 긴 굽이진 길을 꾸준히 걸어가는 것과 같다. 시행착오 속에서 나의 가능성은 새싹처럼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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